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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일 Aug 08. 2023

엔니오 당신 때문에 행복한 시간       

영화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 리뷰

무더운 여름 날씨엔 에어컨 빵빵한 영화관이 피서지론 최고다.

문제는 한낮 기온이 33도가 넘는 날씨에 피서지까지 가는 것이 고욕이다. 다행히 신도림 메가박스는 지하철과 연계되었기에 더위를 피할 수 있었지만, 영화관의 위치를 몰라 20분을 헤맸다. 아, 짜증!!

여하튼 땀 흘리며 입장할 수 있었는데 영화관은 40석 정도 되는 작은 규모다. 블록버스터 영화가 아니기에 많은 관객이 찾지는 않겠지만 마니아들에 의해 입소문을 타고 한 달 넘게 상영되고 있는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는 영화의 다양성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가를 알게 해 준다.

우선 인증 샷을 남기기 위해 극장 안의 모습을 찍었는데 관객이 나 외엔 없다.      



행복한 기분

“전세 낸 기분으로 보는 것 아니야!” 했지만 10명 정도의 관객이 입장했고 지루한 광고가 끝나며 영화가 시작된다. 이 영화에 대한 기본 정보를 이야기하면 엔니오는 자신의 삶을 기록으로 남긴다면 <시네마 천국>, <피아니스트의 전설>, <말레나> 등에서 함께 작업한 주세페 토르나토레가 적격이라며 그를 콕 찍었다고 한다. 무명이고 신인 감독이었던 주세페 토르나토레는 그 당시 거장의 반열에 오른 엔니오를 만나 <시네마 천국>을 완성하게 된다. 나이 차이가 큼에도 불구하고 30년 이상의 우정을 이어가며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라는 걸작을 만들었다. 이 영화는 엔니오 모리꼬네에게 헌정했다고 할 정도로 그와 함께 작업한 클린트 이스트우드, 쿠엔틴 타란티노, 왕가위 감독 등과 존 윌리엄스, 한스 짐머 등의 동시대 영화음악가, 퀸시 존스, 브루스 스프링스틴 등 팝계의 거물들도 이 영화에 출연해 엔니오 모리꼬네를 추억하는데 감독은 어떤 기교도 사용하지 않고 담백한 사실과 증언을 통해 엔니오의 모습을 조명한다. 아쉬운 것은 제작에 일본, 중국이 참여했는데 우리나라의 이름이 빠진 것이다.      


"엔니오 모리꼬네는 우리 인생의 사운드트랙이죠."     


이 카피 한 줄로 영화는 요약될 수 있다.


      

트럼펫 연주의 공연 수익으로 집안을 먹여 살렸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엔니오는 자연스럽게 트럼펫을 배우고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대신해 트럼펫을 불며 가장의 역할을 한다. 그의 인생이 결정된 것은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에 입학한 것인데 여기서 애증의 관계로 변한 스승 페트라시 교수를 만나게 된다. 엔니오는 스승을 만나 작곡을 배웠고 그로 인해 다른 장르의 음악을 만나며 작곡, 편곡의 역량을 키운다. 페트라시 교수는 클래식의 경계를 허물며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려고 했던 엔니오에겐 적대적이었지만 제자를 보호하며 다양하고 깊이 있는 클래식 음악의 세계를 눈뜨게 한다.   

  

단단한 클래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엔리오의 음악은 멜로디에 매력이 있다. 깊은 서정과 슬픔은 클래식 멜로디가 바탕을 이루고 있기에 음악은 기품 있고 고급스럽게 느껴진다. 영화 음악이라는 장르가 정착되기 전 이기에 그 당시 영화음악은 천대를 받았고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었다. 가족을 책임져야 할 엔니오는 가명을 써가면서 대중음악 편곡에 참여한다. 이 과정에서 인간적인 수모와 모욕적인 대우가 있었지만, 실력은 그 모든 것을 이겨내며 서서히 그의 이름이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가장 가까이서 엔니오를 아껴주었던 스승도 엔니오의 영화 음악을 매춘에 비교하며 매도한다.     

 

또 한 명의 애증의 관계는 <황야의 무법자> 시리즈를 만든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이다.

엔니오와 초등학교 같은 반에서 공부했지만,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는데 함께 영화작업을 하면서 두 사람은 각별한 관계로 변한다. 세르지오 레오네는 자신의 영화 음악을 엔니오에게만 맡기지만 영화에 대한 해석 차이로 갈등도 생긴다. 그 당시 명성을 가지고 있던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시계태엽 오렌지>의 영화 음악을 엔니오에게 맡기려고 했는데 세르지오가 그 친구 “바쁠걸”이라는 말에 다른 사람에게 음악을 맡긴다. 세르지오의 본심을 알 수 없지만 경력을 쌓아가려는 엔니오가 “난 편곡만 하고 있어 한가한데”라고 말한 것을 보면 섭섭했음이 틀림없다.     



이런 상황에서 엔니오는 자신의 천재성을 드러낸다.

내 나이 또래면 누구나 기억하고 있는 스파게티 웨스턴 영화가 있다. 존 웨인이 대표하던 정통 서부극과는 달리 이탈리아 영화 마카로니 웨스턴은 B급 영화로 취급받던 시절이었다. 별 볼 일 없었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이탈리아로 건너가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을 만나 찍은 영화가 <황야의 무법자>다. 망토를 걸친 채 시가를 씹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모습을 보며 그 당시 젊음은 환호했다. <황야의 무법자> <석양의 건맨> <석양의 무법자(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로 세르지오 레오네의 무법자 3부작이 완성되었는데 세르지오 레오네, 클린트 이스트우드, 엔니오 모리꼬네는 젊음을 극장 앞에 줄 서게 했다.

젊은 세대는 <황야의 무법자>는 보지 못했다 할지라도 경쾌한 멜로디와 함께 깊은 슬픔으로 다가오는 엔니오의 음악을 들으면 “아 그 영화” 할 정도로 심야방송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던 영화 음악중 한 곡이었다.      

그 뒤로도 세르지오 레오네와 함께 한 <옛날 옛적 서부에서> <석양의 갱들> <원스 어폰 어 타임인 아메리카>는 영화를 보지 않더라도 엔니오의 음악만으로도 행복한 시간이 될 수 있다. (유튜브에서 엔니오의 음악을 대부분 감상할 수 있으니 꼭 들었으면 좋겠다^^)


특히 ‘데보라의 테마’

슬픔을 폭포수처럼 쏟아내며 첫사랑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는 첼로와 콘트라베이스의 저음에 인간의 목소리가 가장 아름다운 악기라는 것을 증명하듯 허밍 코러스가 흐른다. 천사라 해도 믿을 정도로 청순했던 제니퍼 코널리의 모습이 오래도록 기억되는 기억되는 'Deborah's Theme’은 가장 좋아하는 곡 가운데 하나다.    



 이제 다 생략하고 영화 <미션>으로 가자

아내와 데이트하던 시절 지금은 사라진 서울 극장에서 <미션>을 봤다. 내 앞 좌석에 수녀님 4분이 앉아계셨는데 그렇게 우신다. 덩달아 나와 아내도 연신 눈물을 닦으며 봤기에 나를 울렸던 영화 가운데 1위라 할 수 있다. (아! 플래툰 보고도 많이 울었다.) 미션의 OST에 감동했기에 극장 안에서 팔고 있는 미션의 OST LP를 구매하고 집에서 듣고 또 들으며 감동했었는데 인생이 하강할 때 정리되어 지금 생각하면 아쉽다.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 이 영화의 감동은 음악에도 있지만 간간이 표현된 엔니오 모리꼬네의 삶을 교훈으로 얻는다. 영화의 첫 장면은 그의 음악이 아니라 전신 스트레칭을 하는 엔니오의 일상으로부터 시작된다. 그 장면을 통해 천재였지만 평생을 성실하게, 자신의 한계를 이기기 위해 노력하며 산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기에 숙연한 감동이 있다. 

      

“생각이 바로 곡이 되지 않아요. 그래서 괴로워요”     


정확한 통계는 아니겠지만 엔니오는 평생 500곡 정도의 음악을 작곡했다고 한다. 얼마나 괴로운 시간이었을까?


그 괴로움을 이기고 천대받던 영화 음악을, 영화감독이라는 구별된 장르로 만들어 엔딩에 오르도록 만든 진정한 마에스트로다.   

   

나의 젊음도 <황야의 무법자>에서 시작되어 <시실리안> <원스 어폰 어 타임인 아메리카> <미션> <시네마 천국> <러브 어페어> <피아니스트의 전설> <헤이트풀8> 의 영화 음악을 통해 엔니오 모리꼬네와 50년을 동행했다.  지금은 이 세상에 계시지 않은 분이

“양주동 박사의 강의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을 가장 행복한 시간으로 기억한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짠한 감동이 있었는데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을 들을 수 있던 것이 내 인생에서 행복한 시간이다

라고 말하고 싶다.      

상업영화가 아니기에 개봉관 수는 적지만 꼭 영화관에서 보기를 추천한다. 이유는 사운드 때문이다. 안락한 의자, 추울 정도로 완벽한 에어컨, 그리고 소수의 인원이 조용하게 영화에 몰두할 수 있는 것은 이 더운 여름에 영화관에서 누릴 수 있는 호사다. 


배경음악은


황야의 무법자 OST 중 '방랑의 휘파람'입니다.



https://youtu.be/gPv13tq_q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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