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리뷰
영화는 파리의 대표적인 명소를 롱테이크로 잡아 평화롭고 아름다운 파리의 모습을 느리게 보여주며 시작된다. 이때 오프닝곡으로 클라리넷 소리가 귀에 익숙한 Sidney Bechet의 'Si tu vois ma mère'가 흐르며 센 강에서 바라본 에펠탑, 몽마르트르 언덕, 물랭루주, 노트르담 사원, 개선문, 베르사유 궁전. 로댕 미술관, 샹젤리제 거리등 가본 적은 없지만 영화 속에서 많이 봐온 풍경이기에 친숙한 파리의 명소를 보며 탄성을 지른다.(가보고 싶다!)
삶에 지쳐 있을 때, 사는 것이 시들시들하다고 느껴질 때 사람은 한 번쯤 충동적으로 떠나고 싶을 때가 있는데 가장 먼저 떠오르는 도시가 파리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우디 알렌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에 영화에 대한 기대감은 크지 않았지만 ‘벨 에포크(La belle époque)’로 알려진 프랑스의 1920년대 문화, 예술의 전성기 시절이 배경이기에 자유롭고 낭만적인 프랑스를 볼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있었다.
우디 알렌 감독은 파리의 낭만을 더하기 위해 계속 비 내리는 도시를 보여준다. (생각해 보니까 우디 알렌 영화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비 내리는 장면이다). 파리의 대낮은 재즈의 흐느낌처럼 한적하고 여유롭다. 낮부터 시작된 비는 밤까지 이어지고 거리는 전구색의 가로등이 켜지고 상점들은 일제히 네온사인 불빛으로 손님을 유혹한다. 상상해 보라! 빗소리가 촉촉이 가슴을 두드릴 때 이 낯선 도시에서 사랑을 꿈꾸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길(오웬 웰즈)은 비 오는 파리의 낭만을 사랑하고 특히 1920년의 파리는 그가 그리는 가장 이상적인 곳인데 그가 만나고 싶은 화가와 문인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피츠제럴드, 장콕토, 어네스트 헤밍웨이, 피카소, 피카소의 연인인 아드리아나, 코코 샤넬, 모딜리아니, 살바도르 달리, TS 엘리엇, 앙리 마티스, 폴 고갱, 에드가르 드가 등과 함께 재즈 카페의 자욱한 담배 연기 속에서 술 한 잔을 앞에 놓고 예술을 말하며 밤을 새우는 것은 누구나 꿈꾸었을 인생의 아름다움이다. 그들은 구질구질한 밥벌이의 지겨움보다 밥은 굶어도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를 누리기 위해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길의 약혼녀 이네즈(레이첼 맥아담스)는 길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녀에게는 파리의 밤이 가지고 있는 환상과 낭만보다 낮이 가지고 있는 파리의 물질적인 풍요로움과 현실을 더 매력적으로 받아들인다. 정신과 물질, 어떤 것을 더 소중한 가치로 여기느냐에 따라 삶의 모습은 달라진다.
이때 길의 마음을 끄는 한 여인이 나타난다. 지금은 피카소의 연인인 아드리아나(마리옹 코띠아르)다. 코코 샤넬로부터 디자인을 배우려고 파리에 왔지만 퇴폐적인 영혼을 마력으로 가지고 있는 그녀는 화가 모딜리아니와 꿈같은 6개월의 동거를 끝내고 지금은 피카소(마르시알 디 폰조 보)와 동거하고 있는 마력의 여인이다. 그녀를 본 순간 길도 첫눈에 아드리아나에게 빠지고 사랑이 시작된다.
영화는 사랑하지만 생각이 다른 두 연인의 내적 갈등을 암시하며 전개된다.
"지금의 사랑이 갈등이 있을 때 새로운 사랑을 꿈꾸는 것이 잘못일까?
더군다나 파리라면 그 어떤 사랑도 다 용납이 되며 아름다움으로 포장되지 않을까?"
란 생각을 해본다.
신데렐라는 밤 12시가 되면 구두도 제대로 신지 못할 정도로 바쁘게 현실로 돌아오지만 길은 밤 12시가 되면 예술적인 가치를 찾아 모인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환상과 낭만이 있는 밤의 문화속으로 들어간다.
사람들은 누구나 삶의 회복을 위해 여행을 떠난다. 낯선 장소, 낯선 사람, 낯선 풍경을 보면서 마음의 위로를 얻는다. 그리고 그곳이 천국이라는 환상에 젖는다. 젊음 때부터 광화문을 수십 년 보며 자란 사람에게 경복궁은 역사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는 문화재에 불과하기에 광화문을 보며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지는 않는다. 파리의 개선문이나 에펠탑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파리지앵에게도 개선문은 자랑거리지만 그 문을 바라보면서 감동에 젖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익숙한 것과의 이별은 자신의 삶을 새롭게 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를 만든다. 그래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은 이미 낭만적이다. 그곳에 뭔가 놀라운 일이 자신을 기다릴 것이란 환상을 가지고 있기에 떠나고 싶은 것이다. 무엇이든 감동은 짧고 순간적이 되었을 때 소중한 추억이 된다. 헤밍웨이, 피카소, 달리를 만나 술을 마시고 예술을 논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괴팍한 성격과 방종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는 그들과 함께 사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괴로움이기에 그 자유함도 얼마 지나지 않아 싫증이 나고 말 것이다.
두 시간 가까이 계속된 로맨틱한 파리의 야행은 밤에는 늘 비가 내리고, 재즈 카페에서는 가슴을 흔드는 음악이 흐르고, 꿈꾸는 로맨틱한 사랑이 있기에 감성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그러나 길이 1920년대에 머물 수 없는 것처럼 자신도 영화가 끝나면서 현실로 돌아와 밥벌이의 지겨움을 인정하고 고단한 삶을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사는 방법이다.
‘미드나잇 인 파리’는 모처럼 자신의 눈과 귀에게 즐거움을 준 영화다. 가슴이 사막과 같이 메마르고 건조할 때 영화는 오아시스와 같은 역할을 할 때가 있다. 가끔 현실을 탈출해 새로운 것을 꿈꾸는 즐거움을 허락하기 때문이다.
판타지가 가득한 영화니까 이런 상상을 하며 웃었다.
마리옹 꼬띠아르, 레이첼 맥아담스와 삼각관계에 있다면 난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레이첼 맥아담스의 귀엽고 깜찍하고 톡톡 뛰는 그녀의 매력을 좋아했지만 이 영화의 매력은 단연 마리옹 꼬띠아르다. 늙다리 아저씨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ㅎㅎ
우디 알렌의 영화를 별로라고 했지만 이 영화를 계기로 몇 편의 작품을 보면서 노익장의 삶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지치지 않는 예술혼과 창작력은 배워야 할 삶의 모습이다. 물론 그의 사생활 때문에 감점이 되기는 하지만 ㅠ
지금 삭막한 가슴이라면 이 영화를 통해 추천하고 싶다. 1920년대 ‘벨 에포크' 시대의 낭만과 사랑, 그리고 예술을 만나고 파리에서의 사랑을 꿈꾸라. 그것이 진정으로 사는 방법이다.
배경음악은
Si Tu Vois Ma Mère - Midnight in Paris (2011)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