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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일 Dec 30. 2023

넌 다른 삶을 살아야 해

영화 '이민자' 리뷰

지하철이나 버스 한번 타고 가볍게 갈 수 있는 CGV, 롯데 시네마 등의 복합상영관은 흥행성이 없다는 이유로 작품성이 뛰어난 영화를 개봉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영화 '이민자'를 관람하기 위하여 버스를 타고 지하철로 바꿔 타면서 "돈만 벌려고 하지 말고 스벅처럼 문화 좀 팔면 좋지 않을까?" 라며 투덜거리지만 영화를 보고 나오면 수고가 아깝지 않았다는 생각에 흐뭇해하는 경우가 있다. 더군다나 이 영화는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이 훌쩍거릴 정도로 감동적인 부성애를 표현했기에 극장을 나오면서 군에서 뺑이치고 있는 아들 생각을 했다. 

(12년 전)


요즘은 문화 콘텐츠도 홍보 마케팅의 성공여부에 따라 흥행이 결정되기에 책이나 영화, 연극, 뮤지컬등도 홍보에 많은 돈을 쏟아붓는다. 때로는 마케팅에 속아 후회하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간혹 홍보도 흥행몰이도 없는 작품 가운데 옥석을 발견하는 경우가 있는데 관개들은 SNS를 통해 기쁨을 공유한다. 


이민자’는 입소문이 날 만한 영화였다. 이유는 이 영화로 2012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데미안 비쉬어 때문이다. 선하고 인자해 보이는 인상과 부드러운 목소리를 바탕으로 한 그의 연기는 왜? ‘데미안 비쉬어’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는지 알게 한다. 
 
미국 내 불법체류자는 1100만 명에 이르는데 멕시코 등 중남미 출신인 히스패닉이 80%에 달하고 그중에서도 국경을 마주 대하고 있는 멕시코가 62%를 차지하니까 이들은 미국정부에 골치 아픈 존재들이다. 일용직 노동자로 하루 벌어 살거나 좀 나으면 남부 전역의 정원을 관리하며 겨우 먹고사는 그들은 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 속에 처해있지만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로 법의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가끔 기사화되고 있는 불법체류자의 현실과 별 차이가 없다. 


영화는 어둡게 시작한다. 
카를로스(데미안 비쉬어)는 멕시코에서 건너온 불법체류자임에도 불구하고 정원사라는 직업에 만족하며 하루하루 성실한 삶을 살고 있다. 교회 종소리를 신호로 아침 일찍 일어나 일하러 가는 카를로스의 시선에 비친 도시는 아직 잠에서 덜 깬 듯 조용하고 여유롭다. 그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아들 갈린도는 TV로 페라리가 주차해 있고 수영장이 달린 LA의 고급 집들을 보며 태평스러운 시간을 보낸다. 아버지가 들어와도 본 척도 안 한다. 이제 15살인 갈린도는 고급스러운 집에 살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가 한심하고, 이런 환경 속에서 사는 것은 아버지 때문이란 생각에 불만으로 가득 차 있다. 아버지도 저런 모습의 아들을 보며 화가 단단히 나 있을 것 같지만 카를로스는 “가서 자라”는 한마디 후, 씻지도 않은 채 신발만 벗고 소파에 누워 잠을 청한다. 이렇게 카를로스는 미래가 전혀 보이지 않는 고단한 삶을 살고 있다. 그 이유는 아들 때문이다. 


‘넌 나와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해’


영화 포스터에 쓰여있는 이 문구가 영화의 주제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세상의 아버지가 씻지도 못하며 잠을 자는 이유는 아들만큼은 자신과 같은 삶을 살고 싶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은 아들에게 더 밝은 미래를 선물하고 싶어 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순순히 받아주지 않는다. 장면마다 아픔이 흐르기에 영화를 보면서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은 나도 그 아버지 중 하나이고, 나의 아버지도 저런 마음으로 자신을 키웠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기 때문이다. 자식은 언제나 아버지의 마음을 늦게 깨닫는다. 아버지가 세상에 계시지 않을 때, 아니면 자신이 아이를 낳아 기를 때 비로소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고 눈물을 흘린다.  아들 루이스는 아버지와 같이 바르고 정직한 삶을 살고 싶지 않기에 갈등이 있다. 그렇게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에 부당한 방법을 동원한다 할지라도 멋있게 살고 싶다. 아들은 공부에 관심이 없고 불량친구들과 어울리며 속된 말로 한방을 기다리며 곁길로 나간다. 그러나 카를로스는 아들이 바른 삶을 살 것이라고 믿기에 기다린다.  


같이 일을 하고 있는 트럭의 주인 블라스코는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카를로스에게 자신의 트럭을 사라고 한다. 문제는 돈이다. 카를로스는 여동생을 통해 어렵게 자금을 마련하고 트럭을 구입한다. 이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카를로스는 얼마나 기뻤는지 아들에게 "이건 트럭을 산 게 아니고 아메리칸드림을 산 거야" 모처럼 부자는 소리 내어 웃으며 자신들의 삶에 찾아올 변화를 꿈꾼다. 희망이 생긴 것이다. 카를로스는 차를 구입한 첫날 부푼 가슴을 안고 인력시장에서 한 사람을 조수로 앉힌다. 눈망울이 선하게 생긴 산티아고다. 그는 절대로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치거나 범죄를 저지를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영화를 보면서 흥분이 되는 것은 카를로스가 불법체류자라는 신분을 극복하고 희망을 이룰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다. 
   


10미터가 넘는 큰 야자나무를 능숙하게 올라간 카를로스에게 도시의 풍경이 보인다. 그는 비로소 이 도시가 아름답고 말한다. 꿈을 가진 사람은 무엇이든지 아름답게 보인다. 어제까지 보이지 않았던 모든 사물들과 자신을 향해 등을 돌렸던 사람까지 포용할 수 있을 정도로 희망은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만든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믿었던 산티아고가 트럭을 가지고 도망을 친 것이다. 카를로스에게 어제보다 더 큰 절망이 찾아왔다. 불법체류자이기에 도난신고도 할 수 없다. 산티아고는 훔친 트럭을 작물로 넘겼기에 카를로스는 자신의 힘으로 트럭을 찾을 수밖에 없다. 영화는 그 유명한 빅토리아 데시카 감독의 ‘자전거 도둑’처럼 전개되기에 가슴을 졸인다.


선한 눈망울의 산티아고가 트럭을 훔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지금까지 누구보다 착하고 선한 삶을 살아온 카를로스가 양심을 속이고 자신의 트럭을 훔칠 수밖에 없는 사회적 현실이 무겁게 다가온다. 저들에게는 양심보다 생존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것보다 때로는 그 상황 자체를 이해하고 작은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이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가 아닐까?  


크리스 웨이츠 감독은 따뜻한 시선으로 카를로스를 바라보고 있다. 더 나아가 갈등 속에 있던 부자관계는 트럭을 함께 훔치면서 회복이 된다. 물질보다 더 소중한 것은 가족관계다.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합법적으로 또는 불법적으로 미국 땅에 도착하지만 미국은 그 꿈을 지켜주지 못하는 나라가 되었다. 영화 ‘파 앤드 어웨이’에서 감동적인 장면으로 기억나는 것은 서부는 누구에게나 기회의 땅이었다. 열심히 살려는 의지만 있다면 땅을 차지할 수 있고 부를 얻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늙은 미국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은 꿈을 이룰 수 없는 사회구조를 가지고 있다. 아무리 성실한 삶을 산다 할지라도 카를로스나 아들 갈린도는 그들이 보았던 LA의 멋진 집에서 살 수 없다. 이것이 현실이다. 그러기에 이 영화를 보고 나오면 마음이 무거운데 우리의 현실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웨이츠 감독은 구조화된 사회 속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영화의 원제목이 ‘A Better Life’인 것도 감독의 의도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현실이 아무리 힘들다 할지라도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희망이다. 우리의 삶이 어두울수록 희망은 소중하게 다가온다. 마치 사방이 꽉 막혀 있는 골방에 한줄기 빛만 있어도 어둠이 뚫리는 것처럼 삶은 희망을 갖고 있기에 살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보면 좋을 영화다. 아니 가족이 함께 보고 저녁을 먹는다면 식탁은 훨씬 풍성하고 이야기의 꽃을 피울 수 있을 만큼 공감대가 있다. 가끔 아버지의 아픈 모습을 자녀에게 보여주는 것이 교육적으로도 괜찮다는 생각을 한다.  


나를 울게 만든 

김진호의 '가족사진' [불후의 명곡 2]입니다. 

친구들도 이 노래를 들으며 부모님 생각하며 함께 울었으면 좋겠습니다. ㅠ


https://youtu.be/cS-IiArGmcU?si=vJBLdiLQOvI_UUp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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