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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일 Dec 18. 2023

좋은 놈 나쁜 놈 추한 놈

영화 '서울의 봄' 리뷰

12.12 군사 반란을 주도한 전두환은 대한민국의 11~12대 대통령을 지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유명한 말처럼 대한민국 국민은 승자의 기록에 바탕을 둔 역사에 익숙해 있다. KBS 9시 뉴스는 땡 소리와 함께 대통령 찬가를 부르며 시작되었지만, 막강한 권력도 세월이 흐르며 무너지기 시작했고 1평이면 누울 수 있는 묘지도 전두환에게 허락되지 않고 있다.


12월 6일 동아일보 보도는 유족 측이 파주의 장산 전망대로 불리는 땅을 60억 원에 팔기로 가계약을 맺었다고 한다. (29만 원도 없다며 배 째라고 한 위인인데…. ㅠㅠ) 그러나 토지 소유주는 전 씨의 유해가 파주에 안장된다는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자, 부담감 때문에 팔지 않겠다고 했다. 그 때문에 그의 유골은 2년이 지난 지금도 연희동 자택에 머물고 있다.    

  

12.12 군사 반란이나 광주 민주화 운동은 철저히 강자에 의해 왜곡된 정보를 진실로 받아들였지만, 쿠데타의 주역이었던 전두환, 노태우의 죽음은 실제의 역사를 파헤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서울의 봄’을 탄생케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김성수 감독은 역사의 현장을 직접 보고 기록한 르포 기자처럼 12·12 사태를 다큐 형식으로 전개해 나간다. 감독은 이 사태에 얽히고 가담한 인물을 확실하게 3 부류로 구분한다.      

“좋은 놈, 나쁜 놈, 추한 놈”      



나쁜 놈

국군 보안사령관인 전두광은 10ㆍ26 사태가 일어난 후 가지고 있던 정보를 통해 군을 장악하게 된다. 그는 자신이 회장으로 있던 하나회를 통해 원로들과 함께 반란을 꾀하는데 논리는 간단했다.     

"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닙니까! “  

   

국가의 안위는 무시된 채 개인적 영달을 위해 정권을 잡는 것이 최종목적인 전두환은 11월 중순부터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제거할 계획을 세우고 '하나회'를 중심으로 동조 세력을 모으기 시작한다. 허화평, 허삼수, 이학봉, 장세동 등 젊은 후배를 등에 업고 12월 8일에 구체적인 반란 계획을 세운다.      

12월 12일 전두환은 박희도, 최세창, 장기오, 차규헌, 노태우, 황영시 등 규합한 세력을 통해 장세동이 있던 경복궁 내 수도경비사령부 단장실에서 모여 서울 시내를 장악한다. 이날 전두환은 오후 6시 최규하 대통령에게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체포 동의안에 대한 재가를 제안했으나 거절당한다. 이와 동시에 반란군은 총장실을 점거하며 총장 체포에 성공하는데 이때 무력 충돌이 발생해 김오랑 소령과 정선엽 병장이 살해된다.      


데타 성공 후 나쁜 놈들은 음주와 가무를 즐기며 희희낙락하는 모습이 화면 속에서 재현된다. 반대로 감옥에서 고문받으며 괴로워하는 장태완 소장, 정병주 사령관의 고통스러운 모습이 겹치며 지나간다.      

비열하고 추악한 연기를 하는 데는 황정민을 따라갈 배우가 없을 정도로 전두광역은 그의 필모그래피에 빛나는 한 페이지로 장식될 것 같다. 싱크로율도 100%에 가깝고... 전두광을 나쁜 놈으로 각인시킨 것은 황정민 배우의 연기력이다. 청룡이나 대종상 영화제에서 남우 주연상 받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당연히 그럴 가치가 있다는 생각.      



좋은 놈      

김성수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전두환과 대척점에서 서 있던 장태완 장군을 이순신 장군으로 묘사한다. 반란군과 진압군이 광화문에서 대치하고 있을 때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보이며 이태신(정의성) 장군의 표정이 중복된다. 그는 조선을 구한 이순신처럼 생명을 바쳐 이 나를 지킬 수 있는 의지를 가진 장군이었다. 장태완 장군은 자신이 군 생활할 때 우리 부대의 사단장이셨기에 가까이서 본 기억이 있는데 정우성 배우처럼 외모가 멋진 분은 아니다. ㅎㅎ

그러나 영화 속의 장 장군은 외모도 멋지고 불의 앞에 굴복하지 않는 참 군인상을 가슴에 새기기에 관객들은 그분을 흠모하게 될 것이다. (아니 정우성 배우를...ㅎ ㅎ)

아직 천만 배우의 반열에 오르지 못한 정우성 배우에게 서울의 봄은 천만 배우의 영광을 안겨줄 것처럼 흥행 속도가 로켓처럼 빠르다.


정승화 총장을 체포하기 위해 병력이 투입되며 육군참모총장 공관에서 무력 충돌이 발생했을 때 좋은 놈들은 육군 참모총장의 강제 연행이 부당하다며 원상 복귀를 주장한다.

3군 사령관 이건영 중장, 수도 경비 사령관 장태완 소장, 특전사령관 정병주 소장 등이 중심인물이다. 그러나 이미 전세는 나쁜 놈들에게 넘어갔기에 그들은 힘 한번 쓰지 못하고 반란군에게 체포당하고 만다.



이때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만든 것은 김오랑 소령(정해인 분)이 반란군이 쏜 6발의 총탄을 맞고 그 자리에서 전사하는 장면이다. 반란군은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회유하려다 실패하자 그를 체포하기로 한다. 낌새를 눈치챈 사령관은 모든 부하를 나가라며 혼자 싸울 계획을 세우지만 김 소령은 홀로 사령관을 지키는 참 군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더 가슴이 아린 것은 김 소령과 호형호제했던 박종규 중령이 그를 살해한 것이다. 이 장면을 신파라며 옥에 티라고 말하는 관객도 있지만 난 이 신파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이 영화를 관람하기 전까지 좋은 사람들의 개인사에 대한 아픔을 알지 못했다. 자신만 그런 것이 아니라 대부분 관객이 그랬을 것 같다. 영화가 흥행하면서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이들의 삶에 관심을 두고 인터넷을 검색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장태완 수경사령관은 12ㆍ12 쿠데타 이후 보안사령부 서빙고 분실로 끌려가 참혹한 수사를 받았다. 장 장군의 부친은 아들의 고초를 본 후 충격으로 곡기를 끊고 얼마 뒤 세상을 떠났다. 서울대 자연대에 수석 입학한 장 소장의 아들 성호(당시 20세)는 학교에 다녀오겠다고 집을 나간 후 행방불명됐고, 한 달 뒤에 조부 묘소 옆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정병주 특전사령관은 반란군이 특전사령부로 체포하러 올 때까지 저항했지만 비서실장 김오랑 소령이 죽음으로 보호함으로 살아남았다. 쿠데타의 진실을 밝히고자 했던 정 소장은 1988년 10월 행방불명됐고, 실종 139일 만인 이듬해 3월 4일 경기 의정부의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된다. 군사정권이 자리를 주겠다고 회유했지만 모두 거절했다. 가난하게 살았던 사령관은 시신으로 발견됐을 때 주머니에 버스 토큰 5개만 있었다고 한다.     

김오랑 소령 아내는 남편의 전사 소식 후유증으로 실명했다고 한다. 1991년 실족사했지만, 아직 의문사 의혹으로 남아있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의 불행은 대를 이어 진행되고 있다. 서울의 봄은 참다운 군인으로 절대 악에 항거한 소수 군인을 향해 진혼곡을 울려주었다. 이 영화의 진정한 가치다.



한 놈      

좋은 놈과 나쁜 놈은 나름의 소신이 있는 인물이기에 보는 시각에 따라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지만, 아직도 그를 그리워하며 찬미하는 세력이 남아있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은 분노를 터트린다. 반대로 좋은 놈은 악과의 대결에서 대부분 패배로 끝나기에 연민의 눈길로 바라보며 안타까움을 드러낸다. 나쁜 놈보다 더 한 놈이 있으니 추한 놈이다. 그들은 선과 악이라는 중간 지대에 박쥐 같은 모습으로 기회를 노리며 상대의 피를 빨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그들은 옳고 그름보다 자신에게 이익이 있느냐 없느냐가 판단 조건이 된다.

     

12.12 군사 반란 때 대부분의 군 장성은 전세가 반란군 쪽으로 기울게 되자 신군부 쪽으로 줄을 섰다. 

대표적인 인물이 국방의 책임을 지고 있던 노재현이다. 이 역을 맡은 김의성 배우는 악역 전문 배우라는 자신의 명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관객의 스트레스 지수를 가장 높게 만든 연기력은 분명 대종상이나 청룡상에서 조연상을 받을 것이란 확신이 있다. 깐죽거리며 비웃는 그의 눈동자는 인간의 비열함이 얼마나 더러운 것인가를 깨닫게 한다.      


군사 반란 당시, 국방부 장관 공관에 있던 노재현은 육군참모총장 공관에서 총소리가 나자, 상황 파악도 하지 않은 채 가족과 함께 ”걸음아 날 살려라 “ 하면서 도망쳤다고 한다. 국방부로 향하는 도중 반란군에게 붙잡힌 그는 압력에 못 이겨 장태완 장군을 해임한다. 이에 따라 광화문에서 반란군과 대치하고 있던 진압군은 무장해제를 당하고 만다. 광주민주화운동까지 진압한 전두환은 권력 3권을 손에 넣는다. 1980년 5월 31일 국민의 눈을 의식해 대통령 최규하를 허수아비 위원장으로 두고, 그 아래 전권을 가진 전두환 상임위원장이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조직하고 국정을 장악해 나간다.   

  

 

우리는 이원론적 사고에 익숙해 있다. 

서울의 봄‘의 두 인물 전두광, 이태신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은 교활한 놈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절대적인 선이나 악에 도달할 수 없는 평범한 인간군상들이다. 그들은 선과 악이라는 가치관보다 자신에게 이익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소신이 바뀐다. 또한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가차 없이 처단하는 무서움을 가지고 있다. 영화 밀양에 등장하는 유괴범 박도섭이나 일제의 앞잡이로 활약했던 노덕술, 고문 기술자 이근안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영화 ’ 한나 아렌트‘에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이 나온다.

아이히만은 자신을 이렇게 변명한다.

“저는 잘못이 없습니다. 그냥 명령에 따랐을 뿐입니다.”


한나 아렌트가 답한다.      

“당신은 한 개인이 되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오직 하나뿐인 인간의 특징인 "사유하는 능력"을 완전히 포기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도덕적인 판단을 내릴 수는 없었죠. 이런 사유의 불가능함은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예전에 볼 수 없던 거대한 규모의 악행을 저지를 가능성을 열어주었습니다.”    

 

사유하는 능력을 상실한 인간은 아이히만과 같은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다.

비열한 인간은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 신념, 욕구를 알지 못하기에 이리 흔들, 저리 흔들 거라며 쉽게 악에 물들어 간다. 그들은 절대적인 악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은 없다. 다만 하수인 역할에 충실하다. 선악의 구별 없이 잘 훈련된 사냥개처럼 양심의 가책 없이 악의 편에 가담한다.


이태신 장군이 광화문 앞에서 교전을 앞두고 하는 말

“내 눈앞에서! 내 조국이! 반란군한테 무너지고 있는데… 끝까지 항전하는 군인 하나 없다는 게. 그게 군대냐…”     


그가 끝까지 좋은 놈이 될 수 있었던 까닭은 군대가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이다. 군인은 조국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나라에 바치는 것이 사명이다.     


군인에게 군인정신이 생명이라면

깨어있는 국민은 시민정신이 생명이고 핵심은 자유와 평등 그리고 연대다.      


앤딩 크레딧이 올라가면서 군가

’ 전선을 간다 ‘ 가 흐르는데 가슴이 뭉클하며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 높은 산 깊은 골 적막한 산하

눈 내린 전선을 우리는 간다.

젊은 넋 숨져간 그때 그 자리

상처 입은 노송은 말을 잊었네!

전우여 들리는가 그 성난 목소리

전우여 보이는가 한 맺힌 눈동자‘    

 

악에 의해 사라져 간 전우를 생각하며 성난 목소리와 한 맺힌 눈동자로 연대하여 항거하는 것 그것이 시민정신이고 추한 놈에서 좋은 놈으로 한 걸음 옮기는 방법이기에 영화는 무거움이 있다. 기억하자      


자신을 향한 성난 목소리.

한 맺힌 눈동자가 있어야 한다.         


배경음악은


서울의 봄 OST '전선을 간다'입니다.


https://youtu.be/wWAYD1qJysg?si=Xrpj7KjsjQcAq8X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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