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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일 Nov 03. 2023

법정 스님의 의자      

법정 스님 : '무소유의 삶' dvd 리뷰

‘언젠가 한 번은 빈손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 육신마저 버리고 홀홀히 떠나갈 것이다.

하고 많은 물량일지라도

우리를 어쩌지 못할 것이다.‘

                       - 법정 -     


검정 바탕 위에 하얀 글씨로 새겨진 이 짧은 글을 읽을 때 리듬감이 있는 목탁 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화면은 바뀌고 법정 스님이 허름하고 볼품없는 의자에 앉으면서 다큐멘터리 영화는 시작이 된다. 이 의자는 스님이 땔감으로 쓰던 참나무 장작으로 만든 것인데 이름이 ‘빠삐용’이다. 요즘 척추 건강의 중요성 때문에 의자도 과학이란 콘셉트로 100만 원이 넘기도 하지만 법정 스님의 의자는 디자인이나 건강의 중요성보다는 그 의자가 갖는 의미가 남다르기에 소중함이 있다.      

18년 동안 산속의 불일암에서 홀로 살았던 법정 스님에게 세상의 즐거움이 하나 있었는데 가끔 시내로 나올 일이 있을 때 조조영화를 즐겨 봤다고 한다. 어느 날 스님은 영화 ‘빠삐용’을 보시고 마음에 감동을 하신 모양이다.      

“빠삐용이 절해고도에 갇힌 건 인생을 낭비한 죄였거든. 이 의자에 앉아 나도 인생을 낭비하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보는 거야.”     


젊었을 때는 모르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세월의 빠름은 한탄으로 다가온다.

“무엇을 이루었는가? 못 이루었는가?”      

보다 우선되는 것은 시간을 낭비한 것에 대한 후회와 죄의식이다.

‘세월을 아끼라’라며 성경에도 시간에 대한 교훈이 기록되어 있는데 뜻은 주어진 환경 속에서 기회를 찾고 어떤 희생과 대가를 치르더라도 놓치지 말라는 의미가 있음을 알기에 영화의 첫 장면부터 가슴이 뭉클해진다.      

스님이 의자에 앉아 성찰한 것은 삶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나는 지금 진정한 나로 살고

나는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는 부자인가 가난한가?‘     


누구든지 이 질문이 자신의 삶 속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대부분 사람은 물음을 거추장스럽게 여긴다. 아무 생각이 없는 동물과 같은 삶을 산다고 할지라도 생명은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끔 자신의 인생에 어떤 문제가 찾아왔을 때 당황한다.     


왜 사람들은 법정 스님의 삶을 부러워하고 그를 잊지 못할까?     

석양의 시간을 살고 있기에 최불암의 내레이션은 한 마디 한 마디가 폐부를 찌르는 힘이 있다. 그는 말한다.   

“인생이라는 외로운 길에 의자 하나 내어준 사람이 있다.”      

인간의 본성을 잃어가고 있는 삭막한 시대는 누구보다 더 크고 비싼 의자에 앉는 것을 성공으로 여기고, 물질의 풍요를 인생의 목적으로 살고 있는 사람에게 스님은 볼품없는 빠삐용 의자를 내놓으며 앉기를 권하신다.     

자신이 잘못 살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누구나 한밤중에 홀로 깨거나, 배낭 하나 메고 산속을 걸을 때나, 며칠 병원에라도 입원하게 되면 비로소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애꿎은 담배 한 대를 입에 무는 것이 보통 사람의 모습이다.      

법정 스님의 일대기라고 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면서 얻는 감동은 스님처럼 무소유의 삶을 사는 것이 참다운 인생임을 알고 그 삶을 꿈꾸는데 있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얻은 감동은 한 시간도 안 돼 사라지고 다시 악다구니를 쓰며 살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빈 의자에서 쉼을 누리고 싶은 충동이 있다.     



대학 3학년 23살의 나이에 법정은 홀어머니를 남겨 두고 산속으로 들어간다.

중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이때 법정은 효봉이라는 좋은 스승을 만난다. 효봉의 상좌로 들어가 부목(나무꾼) 일을 한다. 효봉이 지리산 쌍계사로 떠나자 효봉의 사미승(예비 스님)이 되어 효봉으로부터 배운다. 힘든 시절이었지만 법정은 이 시절이 가장 행복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스승으로부터 무소유의 정신을 배웠기 때문이다. 어느 날 노스승의 바랑을 정리하던 법정은 오래되어 거품도 나오지 않는 비누 한쪽이 들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중이 하나만 있으면 됐지 왜 두 개가 필요해?” 

설거지하던 법정이 남은 밥알 몇 개와 쓰레기 몇 가닥을 버리자 스승은 주워서 마셔버린다.

“법정 들어오너라. 내가 잘못 가르쳐서 그렇다. 네 죄가 얼마나 크냐?

도를 닦아서 부처가 되라고 신도들이 먹고 싶은 거 덜 먹고 입고 싶은 거 안 입고 갖다 준 것을 함부로 해서 되겠느냐? “     

법정은 시장을 다녀오다가 그만 공양 시간을 넘겼다. 그러자 스승의 엄격한 꾸지람이 들려온다. 

“수행자가 시간을 지켜야지. 시간 내에 왜 점심을 안 주느냐?. 오늘 나 점심 안 먹는다.”     

젊은 제자는 그 길로 밭에 나가 밭을 간다. 참회의 노동을 한다.

스승은 밭을 갈고 돌아온 제자를 위해 국수 한 그릇을 준비해 놓았다.

“먹어라”


나 자신도 스승이 되어야 할 자리에 있기에 이런 장면이 부끄러웠다.

싫은 소리 한마디 하면 금방 얼굴색이 변하는 모습이 보기 싫어 그저 누구 하고도 사이좋은 웃음으로 가식적 모습을 보이지만 그 거짓이 한 사람의 영혼을 좀 먹는다는 것을 안다.

성경에도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에게 만 명의 스승이 있을 줄 몰라도, 아버지는 여럿이 있을 수 없습니다. 나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 여러분을 낳았습니다.’라고 사도 바울은 말한다.      

스승보다 위대한 존재는 아버지다. 효봉은 법정에게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무소유의 삶을 가르쳐준 스승이 떠나고 어느덧 법정도 큰 스님이 되었다.

인기와 세속적인 권력 등이 법정 주변으로 모인다. 그러나 법정은 이렇게 말한다.

‘중 믿지 말라 자기 집을 두고 떠나온 중들을 어떻게 믿어 언제 떠날지 모르는데, 넘치는 물량은 결코 맑고 향기로울 수 없습니다.‘     

중답게 살다가 중답게 간 사람이 법정 스님이다.

그는 자신 앞에서 삼배 관습을 허락하지 않고 큰 스님이란 호칭도 쓰지 못하게 했다. 

‘녹은 쇠에서 생긴 것인데 결국 그 녹이 점점 그 쇠를 먹는다.’ 

- 법구경 -


그는 법구경의 말씀을 잊지 않았다. 결국 세속적인 것을 피하고자 법정은 불일암 산속에 은거하며 18년을 보낸다. 

     


어려운 법문이 아니고 쉽고 간결한 글을 썼던 법정은 우리말을 사랑했다. 중이 아니었으면 시인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법정의 글은 인생을 보는 깊은 눈이 있고 그것을 서정으로 표현했다.

승려 생활 56년 동안 법정은 20여 권의 수필집을 썼고 대부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인세 수입만 하더라도 수십억 원에 이르게 된다. 이 모든 인세 수입을 법정은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 말씀처럼 이 세상의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쓴다. 어떨 때는 출판사 사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인세를 빨리 달라고 채근할 정도로 법정은 어려운 이들의 이웃이 되었다.     

댓돌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흰 고무신은 빈틈이 없던 법정의 수행 자세를 보여주는 상징이고. 꼬장꼬장하고 강인해 보이는 그의 얼굴은 그가 얼마나 자신에게 원칙적인 사람인가를 알 수 있게 한다.               


법정이 평생 소유한 것 4가지가 있는데 

1). 몇 권의 책

2). 마시는 차

3). 구형 라디오로 듣던 음악

4). 약간의 채소밭이었다.     


누구든지 마음속에 다가오는 큰 결심은 지금과 다른 삶을 살고 싶은 것이다. 

“삶은 이런 것이 아닌데!”라고 수없이 자신에게 외치지만 현실이란 벽 앞에서 좌절하고 체념한다. 아니 모른 '척'하고 산다. 왜냐하면 지금 사는 삶의 모습도 그리 나빠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삶은 서서히 병들어 가고 있다. 이때 빈 의자를 제공하며 앉을 것을 나지막이 말하고 있는 스님의 모습은 삶을 부끄럽게 한다. 책으로 더 이상 스님을 만날 수 없는 아쉬움이 있지만, 이 다큐멘터리 영화 <법정 스님의 의자>를 통해서 그분이 살아간 삶의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기에 감동을 더하고 가슴에 새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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