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탠리의 도시락' 리뷰
할머니라고 불려도 괜찮을 유안진 시인은 ‘살아온 세월은 아름다웠다고 비로소 가만가만 끄덕이고 싶습니다.’라고 노래한다. 살아온 세월이 아름다운 이유는 의미나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질적인 만족을 얻기 위해 돈을 벌려고 애를 쓴 시간보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이 더 아름답게 기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순수함 때문이다. 깊은 산골짝에서 흘러내리는 물처럼 마음이 맑았을 때의 추억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한 기억으로 남는다. 그러나 하류로 흘러내릴수록 물도 불순물이 끼어 오염되는 것처럼, 마음도 때가 묻고 더러워지기에 성년이 될수록 아름다움으로 기억되는 시간은 사라지고 만다. 시니어의 가슴속에 보편적으로 남아있는 아름다움이 추억이 있다면 노란 양은 도시락이리라. 꽁보리밥 속에 달걀 프라이 하나만 얹혀있어도 최상의 도시락으로 대우받던 시절을 떠올리며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도 오염되지 않은 동심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인도영화 ‘스탠리의 도시락’을 보면서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영화 속의 스탠리 친구들처럼 베이이붐 세대의 어린 시절은 도시락을 못 싸 오는 친구와 나누어 먹은 예쁜 마음이 있었다. 지금은 학교에서 획일화된 그릇 속에 담긴 똑같은 반찬을 먹기에 이야기가 사라졌다. 저 아이들이 어른이 된다 할지라도 도시락에 얽힌 추억을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은 음식에 대한 사연이 없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똑같은 양은 도시락이라 할지라도 찌그러진 정도와 색깔이 다르기에 자신의 도시락을 정확히 집어낼 수 있었고, 같은 김치라도 엄마의 솜씨에 따라 맛이 달랐기에 나누어 먹는 즐거움을 지금의 아이들은 경험할 수 없다.
‘스탠리의 도시락’은 가난 때문에 도시락을 싸 올 수 없는 아이의 가슴 아픈 이야기다.
스탠리는 친구들이 점심을 맛있게 먹을 때 운동장에 있는 수돗가에서 남몰래 수돗물로 배를 채운다. 그렇지만 아이는 명랑하고 쾌활하다. 얼굴도 예쁘고 시나 노래 춤까지 못하는 것이 없기에 친구들에게 인기 짱이다. 스탠리가 운동장에서 물로 배를 채우는 것을 본 친구들은 스탠리와 함께 점심을 나누어 먹는다. 이 모습이 정말 아름답다. 친구 중에는 유일하게 핸드폰을 가지고 있는 부잣집 아들 아만도 있고 스탠리처럼 점심을 싸 올 수 없는 가난한 친구도 있지만 이들에게 이것은 아무런 문제가 안 된다. 특히 부잣집 아들티를 내지 않는 아만의 모습은 멋지다. 저들은 한결같이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스탠리를 격려하고 힘이 되는 친구의 모습은 영화의 끝까지 지속된다. 인도영화를 몇 편 보지 않았지만 마음에 울림이 있는 이유는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을 가진 동심을 통해 우리가 잃어버린 삶의 본질을 발견하는 데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어린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순수한 마음을 잃어버린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개탄할지 모르겠다. 어려서부터 어른의 문화에 길들여진 아이는 자연스럽게 유년기를 잃어버렸고 저들은 웃자라서 애어른이 되고 말았다.
“행복하지 않아요!"
한국 어린이 행복지수 4년째 OECD 꼴찌
초등학생 10명 중 1명은 자살 충동을 느낀 적이 있고, 5명 중 1명은 가출 충동을 느낀 적이 있다는 것이 요즘 아이의 현실이다. 어려서부터 익숙해진 이기주의, 돈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물질만능주의, 경쟁에서 이기려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는 성공지상주의에 아이가 오염 되었기에 행복하지 못한 것은 당연한 결과다.
- 베르마 선생님 역의 아몰 굽트는 이 영화의 감독이고 스탠리의 친아빠다 -
우리의 현실은 언제나 아이보다 못한 어른이 있다.
아이를 가르치는 것보다 먹는 것을 더 중요한 사명으로 여기는 베르마 선생님은 항상 도시락을 싸 오지 않고 선생들에게 얻어먹다가 아만과 아이들의 도시락까지 탐낸다. (그런데 이 선생님이 왜 도시락을 안 싸 오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천성적인 빈대인가?.…….ㅎㅎ)
그는 점심시간만 되면 스스럼없이 찾아와 왕성한 식탐을 발휘해 아이들의 점심을 빼앗아 먹는다. 이에 아이들은 선생님의 눈길을 피해 장소를 옮기며 스탠리와 함께 맛있는 점심식사를 한다. 몇 번씩이나 아이들의 거짓말에 속아 점심을 굶은 선생님은 드디어 아이들이 점심을 먹는 곳을 발견하는데 그곳에 스탠리가 있다. 격분한 선생님은 스탠리에게 “도시락을 싸 오지 못하면 학교에 오지 말라.”는 엄명을 내린다. 교실은 활기를 잃어버리고 아이들은 침묵이다. 학교에 오지 않는 스탠리를 걱정하는 그들의 표정 속에 친구를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 담겨있다. 스탠리는 다시 학교에 나와 친구들과 함께 도시락을 먹으며 즐거워할 수 있을까?
나이 든 사람의 특징은 무엇이든지 교훈적이다. 그러기에 바른 길을 제시하는 영화를 보면 감동이다. 왜냐하면 자신은 그렇게 못살아도 인생이 가야 할 길은 알기 때문이다. 맑은 얼굴, 때 묻지 않은 생각과 가난하지만 그늘이 없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가 원하는 동심이 있을 때 가능하다. 이 영화가 어린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자신의 교육관을 점검하고, 아이는 잃어버린 동심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인도나 티베트로의 여행을 꿈꾸는 것은 물질문명의 피해를 입지 않은 저들의 모습이 이상향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탠리의 도시락’은 마지막 반전이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영화는 실제가 아니라는 것을 오프닝 자막에서 보여주지만 엔딩에 올라오는 자막은 실제고 인도의 슬픈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기에 지금까지 유쾌하게 웃으며 눈물 찔끔 흘렸던 자신의 모습에 경각심을 일으킨다.
인도는 약 1200만 명의 아이들이 스탠리와 같이 어린 노동자로 일한다고 한다. 그런데도 참혹한 현실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착하고 순수한 마음을 가진 친구와 이웃들이 스탠리를 지켜주기 때문이다. 좋은 친구, 좋은 이웃이 되는 것은 삶의 존재이유다. 추억의 소중함보다는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생각할 때 스탠리의 도시락을 나눠먹는 의미를 잊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