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와 경험에서 얻어지는 행복

사람이 그리운 날

by 이세일

방구석에 홀로 앉아 독서나 영화, 음악 듣기로 보내는 시간을 좋아한다.
이런 날은 점심으로 맥주 한잔하는데 누구의 방해도 없는 조용한 시간이기에 사랑하는 시간이다. 그러나 가을은 막연하게 누군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마음이 외로움으로 물드는 날은 070으로 오는 스팸 전화도 반갑기에 후후에서 자동으로 끊을 때까지 내버려 둔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내 이름은 내 이름은 캔디"

라는 노래처럼 내 핸드폰은 좀처럼 울리지 않는데 갑자기 전화벨로 설정한 'Diana Krall'의 노래가 흐르기 시작한다.
이런 전화 반갑다.
누군가 만나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을 읽고 있다는 방증인데 더 좋은 건 언제나 나보다 돈이 조금 더 많다는 이유로 밥 사 주는 친구의 전화다.

"나 오늘 지갑 안 가지고 왔으니까 니가 밥 사라"

이 인간 ㅎㅎ
할 수 없이 점심을 샀는데 최인철 교수는 행복의 요소 중 하나를 관계에서 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 그래

학교 다닐 때는 그리 친하지 않았지만 한 동네에 산다는 이유로 만남의 횟수가 많아지며 절친이 된 친구는 모든 면에서 나하고 다르지만 만나면 사랑받는 기쁨이 있기에 브로맨스가 펼쳐진다.



또 하나

행복은 관계에서도 오지만 경험으로 인해 얻어지는 것이 최상이다. 독서, 영화, 음악, 여행 등은 소유가 아니라 스토리텔링 된 경험으로 승화될 때 높은 차원의 행복이 되는데, 누구나 이런 행복을 꿈꾸기만 쉽지 않은 것이 이야기로 만들 수 있는 생각과 문장력, 감수성 등으로 얻어지기에 노력과 공부가 필요하다. 특히 독서 같은 경우는 무지막지하게 사서 쟁여놓지만 읽고 쓰지 않으면 경험으로 승화되지 못하는 아픔이 있다.

하나의 예가 작년인가?


YES24에서 아크릴 독서대를 샀다. 독서대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소유하고 싶은 탐욕 때문이다.
이것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이 스탠드로 인해 얻을 수 있고 변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과장되게 자신에게 말한다.

"이 독서대로 책을 읽으면 책이 더 잘 읽힐 거야."

이렇게 정당성이 확보되어 내 소유가 되면 며칠은 행복하다.(정말 떨어트려 며칠 만의 행복으로 끝났다)
독서대로 인해 행복하려면 스토리텔링이 되어야 한다. 책을 읽었을 때의 감정, 이 책으로 인해 얻어진 유익, 등 뭔가 가슴속에 들어오는 것이 있을 때 가치가 생긴다.


"아직도 쓰는 것은 왜 힘들까?" 란 갈등은 부족한 사고력이 원인이라는 것을 안다.



더 슬픈 이야기는
독서대에 놓여있는 돋보기다. 안경으로도 작은 글씨가 안 보여 큼직한 돋보기를 샀는데 멋진 것은 LED가 장착되어 있다는 거다. 미친다.~~(그러나 아직 한 번도 사용하지는 않았다. 부디 사용하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기를...)

저런 무지막지한 돋보기 들고서라도 책을 읽어야 할까?

이런 회의감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행복하다면 어쩔 수 없다.
최인철 교수도 그의 저서 '굿 라이프'에서 소확행의 삶은 소소한 즐거움을 더 많이 경험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아직도 소망하는 것은 책이 자신에게 주는 작은 행복에 취했으면 좋겠다!!



얼마 전 덕수궁을 혼자 걸으며 든 생각이다.
노란 은행잎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보며 낭만적 아름다움보다는 "내 인생도 저렇게 낙엽처럼 바람에 쓸려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을 먼저 한다. 얼마 남지 않았다는 조바심은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고 비로소 세월을 아껴야 한다는 교훈을 얻는다. 다음 주에는 잎이 떨어진 남산이나 종묘 등을 걷고 싶은데 온 거리를 노란색으로 물든 낙엽을 밟고 싶기 때문이다. 아직도 내 삶은 단풍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그 화려한 잎들이 언제 땅으로 떨어질지 모른다. 덕수궁을 걸으며 화려한 단풍보다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지 못하는 노송에 눈길이 갔다. 언제나 푸르름으로 세월을 지켜 온 늙은 소나무의 모습이 자신이라는 위로와 함께



노송!
은 행락철에 누구의 관심도 못 받고 소외되어 있지만 유연한 자태와 사철 푸르름은 내 나이에 어울리는 모습이다. 단풍의 계절에는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지만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불어와 모든 나무들이 동면에 들 때 노송은 그때서야 빛이 난다.


대한문을 나서며 정철의 세한도를 기억했다.

한 겨울의 추위 속에서도 한결같은 푸르름을 가지고 있는 송백의 모습. 화려하지도 않고, 주목의 대상도 아니지만 한결같은 모습은 이 나이에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가 아닌가 한다. 관계와 경험은 남은 인생에서 잘 어울리는 새의 두 날개가 되어야 한다.


친구에게 전화해야지.

"야 나 오늘 지갑 안 가지고 나왔어 ㅎㅎ"


배경음악은

캔 맥주 홀짝거리며 듣는
'Yolanda' 입니다.

https://youtu.be/qCwLbI1IM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