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에서만 인턴 생활을 두 번 했는데 최종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마지막은 2:1의 경쟁률이었기에 확률이 50%였다. 더군다나 부서의 직원들도 아들이 마지막 관문을 통과할 거라며 격려해 주었는데, 최종 발표가 난 날은 아들이 예비군 훈련에 참석했을 때였다….
얼마나 긴장했을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문자를 열었을 것이다. 선택될 것이라는 희망과 함께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아들은 그 충격으로 그 자리에서 졸도하고 말았다. 다행히 이론 교육이었기에 주변 사람들은 아들이 조는 줄 알고 내버려 두었고, 교육이 끝나고 예비군들이 일어날 때의 웅성거림으로 깨어났다. 일어나는 순간 하늘이 노랗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한다.
말은 안 했지만, 아들은 풀리지 않는 자신의 인생을 저주하고 분노하며 울었을 것이다. 부모도 그 아들을 위로할 수 없었지만 누나가 동생을 위해 제주도의 힐튼 호텔을 예약해주며
“모든 것을 잊고 며칠 마음 다스리고 와”
아들이 지금의 회사에 자리 잡은 지 1년이 되어간다. 메이저 광고회사는 아니지만 나름 그 업계에서는 인정받는 회사에 스카우트가 되었다. 며칠 전
“아빠 북촌 휘겸재에서 전시회 하니까 한번 오세요”
아들이 보내준 카톡에 휘겸재의 위치가 나와 있기에 지난 토요일에 찾아갔다. 입구에 들어섰더니 고풍스러운 한옥이 보이는데 단청이 없는 단아함이 예쁘게 다가온다. 마당을 들어서자 젊은 친구들이 반갑게 맞아주며 인사를 한다. 한 여직원이
"제가 안내를 도와드릴까요? “
”아들이 여기에 와 있어요, 제가 전화를 한번 해 볼게요. “
라고 답을 했는데 금방 아들이 왔다.
”발베니는 스코틀랜드의 위스키 회사 이름인데 보리를 직접 재배해요. 맥아나 원액을 주입하는 모든 과정을 수작업으로 하고 있기에 애호가들이 선호하는 위스키 회사예요. “
“너희 회사 하고는 무슨 관계야?”
“발베니가 우리 회사 클라이언튼데 이번에 제가 이 작품전을 기획했어요”
속으로
“아니 울 아들이, 이 자랑스러운 일을” ㅎㅎ
술이 만들어지는 모든 과정을 수작업으로 하는 발베니와 한국 공예의 전통적 아름다움은 “장인 정신”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에 서로 윈윈 되는 콜라보의 효과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빠 4층에 올라가면 발베니 바가 있는데 저희 직원들도 있어요. 제가 소개해 드릴 테니까 칵테일도 한 잔 드시고 가세요 “
발베니 바로 들어서니까 몇 명의 사람들이 아들을 보며 인사를 한다.
”제 아버님이세요. “
그러자 주변의 사람들이 깍듯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한다. 졸지에 인기인이 되었기에 어깨에 뽕이 들어간 느낌을 배제할 수 없었다.
”아빠, 이 친구는 우리 회사 인턴인데 이번 달이 마지막이고 최종 결과를 기다려야 해요 “
가냘픈 몸매의 아가씨였다.
몇 년 전 졸도한 아들 생각이 났기에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랄게요. “
라고 했는데 아들이 인턴을 뽑을 수 있는 영향력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여
”저 친구에게 점수 좀 많이 줘라. “
누구도 말릴 수 없는 부모의 마음이다.
"아빠 칵테일 한 잔 드실래요”
“좋지”
능숙한 솜씨로 칵테일을 만드시는 사장님은 젊었다.
“이 칵테일은 선자라고 대추와 잣을 집어넣었는데 합죽선 제작에 평생을 바친 김동식 장인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위스키는 평생 처음 마셔보지만, 입안으로 흘러드는 맛이 순하고 부드럽다.
“아빠 천천히 마시세요” ㅎㅎ
사장님은 서비스라며 또 한 잔의 칵테일을 만들어왔다.
“이것은 말총인데 녹차 시럽과 매실 시럽을 이용해 만들었어요”
그러면서 견과류도 함께 주셨는데 이름은 잊어버렸다.
전시장을 한 바퀴 둘러보는데 만나는 사람들에게
“저희 아빠예요”
“아버님이 너무 젊으셨어요”라는 말은 덤으로 ㅎㅎ
아들과 점심을 함께 하기로 했는데 광고주가 갑자기 온다고 해서 점심을 같이할 수 없다는 아들의 말에
“그래, 아들 장하다”
한마디를 남기며 돌아서는데
“아빠, 저 대한민국 디지털 광고 대상에서 동상 수상했어요!!”
뭐냐 이 아들^^
“1월에 일본 가족여행 갈 때 제가 쏠게요”
아들이 힘들었을 때 위로해주기 위해 송정림 작가의 ‘참 좋은 당신을 만났습니다’ 의 한 구절을 전해주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아버지가 우리 집에 다니러 오셨습니다. 아무리 표현하지 않으려 해도 자식이 어려운 것은 부모에게 들키고 마는 법입니다. 아버지는 힘든 상황을 눈치채셨습니다. 아버지가 산책하러 가자고 하셨고, 아버지를 따라나섰습니다. 말없이 걷다가 어느 길목에서 아버지는 발걸음을 멈추셨습니다. 그리고 담쟁이를 보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담쟁이도 올라가기 쉬운 거 아니다. 그래도 견디며 올라간다. 나중에는 쉬워져.”
아들도 이 구절 잊지 않았겠죠?
가을 하늘을 올려다보았더니 온통 파란 하늘이 보였습니다. 거기에 따사로운 햇살이 어깨 위로 내리는군요. 힘들 때 하늘이 위로가 되면 좋겠습니다. 햇살은 덤이고요!!
배경음악은
Richard and Adam singing 의 'The Impossible Dream'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