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시집간 지 2년이 되었지만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친정에서 하룻밤 자고 간다. 이유는 엄마가 있는 집이 편하다는 것이다. 대부분 사위도 함께 오지만 어제는 근무로 인해 참석하지 못했다. 딸이 집이 그리운 이유는 주말마다 가족이 모여 나누는 술자리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내 친구 중에 우리처럼 가족이 함께 모여 술 마시는 집 없어”
어제도 딸은 와인 몇 병과 자신이 좋아하는 닭발을 사 왔고 아내는 회를 떠 왔다. 와인 몇 잔이 돌아가면 많은 이야기가 나오는데 어제 대화는 다른 날보다 재미있었다.
1. 딸의 친구
딸의 절친인 가을은 결혼하기 전 마케팅 회사에서 8년 정도 근무하다가 결혼 후 전업주부가 되었다고 한다. 결혼한 지 3년이 되어가지만, 아직 아이가 없기에 좀 편한 삶을 산다고 한다. 남편은 아내가 먹고 노는 것이 불안하다. 직접적으로 “직장을 구하라”는 말은 못 하지만 구인 정보를 카톡으로 보내며 부담을 준다고 한다. 며칠 전 딸이 가을을 만났는데 면접을 보고 왔다고 한다. 남편 성화에 어쩔 수 없이 면접을 봤는데 안내데스크에서 사람들을 안내하는 일이라 한다.
“나 이래 봬도 잘 나가던 여자야”
란 생각 때문에 서러워서 남편에게 이야기했더니 남편이 오열했다고 한다. “남편이 아내를 꽤 사랑하는구나”란 생각이 들었는데 그다음이 반전이다. 남편은 아내를 걱정해서 운 것이 아니라 외벌이를 하는 자신이 얼마나 힘든가를 몰라주는 것이 원통해 울었다고 한다. 돈 때문에 울어야 하는 현실은 남의 일이 아니다.
2. 딸의 대출금
딸은 작년, 그러니까 아파트 가격이 제일 비쌀 때 영끌을 해서 8억5천만 원짜리 집을 장만했다. 절반 이상이 대출이라 이자와 원금 상환으로 인해 금전적 압박이 심하다며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사위와 딸이 대출금으로 나가는 돈이 한 달에 400만 원 정도라니 부담이 되기는 하겠다. 택시만 타고 출퇴근하던 아이가 결혼 후에는 기차를 타고 전철로 갈아타며 먼 거리를 가야 하기에 현실이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내년 과장으로 진급하면 임신을 하고 휴직을 하겠다고 한다. 내년 엄마 환갑이고 자신이 임신하면 여행을 할 수 없으니까 1월 초에 꼭 해외여행을 하자며 비행기표를 예매한다고 하는데 “아빠 일본 좋아하지? 일본 가자”라며 은근 아빠를 위하기에 “좋아”라고 답했다.
3. 아들
몇 년간 잘 사귀던 여친과 이별한 지 6개월쯤 된 모양이다.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 그 아이는 내 팔짱을 띠며 “아버님” 그러는 붙임성이 좋았는데 아쉬움이 남는다. 왜 헤어졌는지 물어보지 못했지만, 마음이 아프겠다고 생각했다. 요즘 아들은 소개팅에 한창인데 몇 가지 에피소드를 이야기한다.
“얼마 전에 소개팅했는데 제 외모 때문에 처음으로 까였어요.”
나이가 드니까 외모가 안 통한다고 한다. 웃었다. 불쌍한 우리 아들. 착한 아인데 ㅎㅎ
“엄마, 아빠 저 결혼 포기, 대신 부모님과 함께 살게요. 이번 경비 절반은 제가 부담할게요”
결혼을 포기하지는 않겠지만 아들도 결혼이라는 현실 앞에서 갈등하고 있다.
아들이 광고회사에 있어 연예인들의 비화를 많이 알고 있는데 들어보면 재미있다. 그중에 핵심은 인성에 관한 이야기다. 부와 화려한 세계 속에서 사는 인기인들의 뒷모습,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인성과 성품은 인간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품격인데 여기에 모자라는 연예인이 많은 모양이다.
며칠 전 이은정 작가가 쓴 ‘쓰는 사람’을 읽으며 뜨거운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무명의 작가가 현실을 이겨내는 모습이 얼마나 가슴 아픈지, 또 주변 사람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감싸주는 아름다운 모습에 감동. 그중의 한 구절
‘다시는 그 아이가 통닭을 먹으며 울지 않기를, 어떤 음식을 먹다가도 눈물이 나지 않기를, 나처럼 너무 슬픈 어른이 되지 않기를 기도한다. 어른들 사정이야 어떻든 아이들은 그저 웃을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작가는 가난으로 인해 통닭을 먹지 못한 아이를 보며 “울지 않기를, 눈물 나지 않기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한다. 지금은 아이만 아픈 것이 아니라 학생도, 젊은이도, 아내도, 남편도 노인도 다 아픈 세상이 되었다.
“현실이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에 식구는 모여서 이 얘기, 저 얘기를 하며 웃는다. 그 웃음이 좋기에 가족이라는 소중한 이름으로 만나고 서로에게 힘이 되는 시간이 좋다.
배경음악은
Helene Fischer의 - ‘The Power Of Love’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