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세일 Dec 14. 2022

"Who are you?"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영화 '플라이트' 리뷰

완벽한 수술 실력을 갖추고 있지만 인격적으로 흠이 많은 의사가 있다.
반대로 실력은 좀 떨어지지만 인간미가 있고 환자를 사랑하는 의사가 있다면

"죽을병에 걸린 당신은  어떤 의사를 선택할 것인가?"

 라는 질문을 가지고 토론한 적이 있었다. 토론할 것도 없이 죽음이라는 비상사태 앞에서는 누구나 실력이 있는 의사를 선택할 것이다. 왜냐하면 사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영화 ‘플라이트’의 주인공 휘태커(덴젤 워싱턴)가 그런 사람이다. 비행실력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그의 사생활은 거의 폐인 수준에 가깝다. 시계의 알람 소리가 시끄럽게 울리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간신히 눈을 뜬 휘태커는 탁자 옆에 놓인 맥주병을 들어 한 모금 남아있는 맥주를 마저 마신다. 전화를 받고 있는 그의 앞에서 전라의 여인이 옷을 입는데 여승무원 카트리나(나딘 벨라스케즈)다. 그들이 어떤 관계인지 짐작케 하는 장면이다. 퀭한 눈의 휘태커는 몽롱한 정신을 깨우기 위해 코카인을 흡입한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화창한 가을 햇살을 즐기며 올랜도를 출발해 애틀랜타로 가는 사우스젯 227 항공기 조종석에 앉는다. 102명의 승객들이 타고 있는 비행기는 이륙 10여분 만에 강한 난기류를 만나 생긴 기체의 결함 때문에 빠르게 지상을 향해 추락한다. 부기장에게 조종을 맡기고 잠깐 잠이 들었던 휘태커는 이런 비상상황에서 비행기를 뒤집는 곡예운전을 한다. 예전에 보았던 영화 ‘포세이돈 어드벤처’에서도 배가 거꾸로 뒤집혔기에 생존자가 존재하는 것을 보며 감탄한 적이 있는데 휘태커의 놀라운 비행술은 모든 기능을 잃어버린 비행기를 들판에 착륙시키고 본인은 정신을 잃는다. 휘태커가 병원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졸지에 영웅이 되어 있었다. 102명의 탑승객 중에 96명이 생존하는 놀라운 기적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언론에서는 96명의 생명을 살린 휘태커를 영웅으로 보도했고 자신도 그런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나 교통안전국의 조사가 시작되면서 기체의 결함으로 인한 사고인 것은 분명하지만 기내에서 2개의 빈 술병이 발견되고, 자신의 몸에서 알코올 성분과 심지어 코카인 성분까지 발견되면서 휘태커는 영웅이 아니라 사고의 주체로 몰리게 된다. 결국은 ‘사우스젯 227 항공기’ 추락 사건을 조사하는 청문회가 열리고 휘태커는 사건의 당사자로서 출석하게 된다. 휘태커가 알코올과 코카인에 중독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항공사와 비행기 노조는 그를 위해 유능한 변호사 휴 랭(돈 치들)을 선임해서 진실을 은폐하고 휘태커를 영웅 만드는 일에 앞장선다. 이때부터 영화는 휘태커의 갈등을 보여주며 양심을 따라 자신이 알코올과 코카인에 중독되었다는 것을 시인하고 감옥살이를 할 것인지, 아니면 끝까지 자신을 숨기고 영웅으로 남을 것인지를 고민하는 휘태커의 내면에 포인트를 맞춘다.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은 이 영화의 연출 변에서 “강렬한 감동이 있는 드라마와 강인한 캐릭터를 늘 염두에 두고 있었다.”라고 말한다. 감독의 의도처럼 이 영화의 감동은 영웅 만들기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알코올과 코카인에 의지해 살았던 휘태커가 가면을 벗어던지고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 속에서 얻는 공감이다. ‘양심, 유혹, 진실, 용기, 신앙, 영웅’등 그가 선택해야 되는 삶의 가치는 대전에서 호남선과 경부선으로 갈라지는 기차처럼 완전히 상반된 모습이다. 양심을 버리고 거짓을 선택한다면 그는 영웅으로서 부족함이 없는 자랑스러운 삶을 살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양심을 따른다면 그는 감옥에서 최소한 몇 년을 보내야 한다. 이 선택에서 자유로울 사람이 누가 있을까?

영화를 보면서 자신에게 계속 물었다.
“너는 어떤 길을 선택할래?”

누구나 양심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막상 자신의 문제가 되면 대부분 거짓을 선택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그렇게 용기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 자신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한 명일 것이라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이 갈등이 해소된다. 술과 마약의 집요한 유혹 속에 살았던 휘태커는 감옥생활을 통해 

“내 인생 처음으로 자유로워요”라는 고백을 한다.

또 갈등 관계에 있던 아들이 감옥으로 찾아와 “아버지가 자랑스럽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에세이를 쓰기 위해 아버지를 인터뷰하고 싶다고 하며 첫 번째 질문을 던진다.

“Who are you?”



성자였던 어거스틴의 평생 기도 제목도 “당신은 누구며 나는 누구입니까?”라는 존재론적 질문이었는데 휘태커도 아들의 질문에 응해야 한다. 그것은 양심을 속이지 않고 진실한 삶을 살아온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답이다. 휘태커는 아들의 질문에 미소를 짓는다. 아들도 그 미소의 의미를 알고 있었기에 아빠가 자랑스럽다고 했을 것이다. ‘정직, 용기, 양심’ 너무 쉽게 많이 사용하는 단어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그 단어가 얼마나 이용하기 어려운 것인가를 깨달으며 숙연해진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를 통해 덴젤 워싱톤이 남우주연상의 영광을 차지할 수 있기를 기대했는데 ‘링컨’의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3번째 그 영광을 차지해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언제나 ‘용기, 정의’와 어울리는 반듯한 이미지의 덴젤 워싱턴이 인간적으로 고뇌하는 영웅의 모습이기에 공감이 되고 그 모습을 사랑한다. 무엇보다 성숙해 가는 휘태커의 내면을 보며 자신을 향해 “Who are you?”란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질문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 자신에게 끝없이 계속되어야 한다. 명화가 주는 감동이다. 


https://youtu.be/BTy0T4jhvpo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