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제로다크서티' 리뷰
캐서린 비글로우( Kathryn Ann Bigelow)는 작품 외적으로 흥미로운 요소를 가지고 있는 여성 감독이다. 우선은 제임스 카메룬 감독의 3번째 아내였다는 것과 201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전남편이 감독한 그 유명한 영화 ‘아바타’를 누르고 여성 최초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했다는 것이 유명세로 작용할 것 같다. 특히 그녀에게 감독상과 작품상의 영예를 안겨 주었던 ‘허트 로커’는 전쟁에 중독되어 일상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전쟁터로 향하는 제임스(제레미 레너)를 통해 전쟁의 참상을 고발한다. 블록버스터와 같은 대규모 전투신은 없지만 폭발물 제거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의 두려움과 공포를 이기고 그 자체를 즐기는 주인공의 심리를 세밀하게 묘사했기에 또 한 명의 새로운 영웅으로 기억된다. 이 영화를 통해 제레미 레너를 알게 되었고 몇 편의 영화를 통해 그의 팬이 되었다.
‘제로 다크 서티’도 캐서린 비글로우의 작품이라는 이유로 기대감이 있었고 더군다나 빈 라덴 암살사건을 다룬 영화이기에 관심이 갔다. 이 영화는 2013년 제8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여우 주연상 등의 후보에 올랐기에 작품성도 인정받았는데 특히 전 세계 언론과 비평가들이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의 탁월한 연출력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은 것을 보면 이 영화 충분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영화는 이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의 실제 증언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자막으로 보여주며 시작된다. 마치 바닷가에서 잃어버린 반지를 찾는 것처럼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빈 라덴이라는 인물의 소재를 알아내고 그를 사살했는지의 과정이 무척 궁금했기에 자막이 끝나면서 긴장감을 갖는다. 911 테러사건이 일어나자 건물 안에 갇혀있던 사람들의 긴박한 목소리가 음성으로 들리며 그 당시의 참상을 말한다. 영화는 당연히 테러를 일으킨 집단을 범죄자로 간주하고 그들을 잡아 죽이던지 아니면 법의 심판을 받게 하는 것이 정의라는 것을 당연히 말한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여기에 가담된 한 사람쯤 잡아다가 고문하는 것은 마땅한 것처럼 고문 장면이 이어진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미국이라는 나라의 이중성에 대해서 전 세계의 언론이 뒤끓겠지만 때로는 목적이 방법을 정당화시킬 때도 있다.
빈 라덴을 제거하는 작전의 책임자인 댄(제이슨 클락)은 알 카에다에게 자금을 지원하는 사우디 그룹의 뒤를 캐고 있었다. 관련된 인물인 아마르는 양쪽 팔이 포승줄로 묶인 채 무자비한 구타를 당해 이미 얼굴이 만신창이 되었다. 여기에 물고문까지 가하며 압박하자 마지막으로 빈 라덴을 만난 곳이 파키스탄이라는 정보를 털어놓는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마야(제시카 차스테인)의 표정에 당혹해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이 정보를 바탕으로 마야와 댄은 빈 라덴과 KSM(9·11 테러를 기획하고 관리하였던 할리드 세이크 모하메드의 약자) 조직의 구성원들을 잡아다 고문하며 사건을 해결하려고 한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크고 작은 테러는 계속 발생되고 10년의 세월이 흘러가지만 작전은 별 진전이 없다. 댄도 이 일에 지쳤기에 워싱톤으로 복귀한다. 설상가상으로 파키스탄에 있는 메리어트 호텔에 테러가 일어나고 접선 과정에서 절친한 동료 요원을 잃기도 한다.
마야 자신도 테러를 당해 극적으로 살아남는 위기를 맞기도 한다. 이런 위험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마야의 치밀한 분석력은 마침내 큰 결실을 얻는다. 빈 라덴의 은신처를 알아낸 것이다. 그러나 CIA와 미국 정부는 불안하다. 정보가 잘못되어 억울한 사람이 피해를 입는다면 반미감정의 폭풍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때 마야는 부통령이 참석한 브리핑에서 확신을 가지고 말한다.
“100% 빈 라덴의 은신처입니다.”
결국 마야의 확신을 믿는 미국 정부는 작전코드명 ‘제로니모 ’를 허락한다. 이때 활짝 웃는 마야의 웃음이 인상적이다.
영화의 제목인 ‘제로 다크 서티’는 새벽 12시 30분으로 미국의 네이버 씰이 빈 라덴의 은신처에 도착한 시간을 말한다. 두 대의 스텔스 헬기가 이륙을 하고 빈 라덴을 잡기 위한 작전이 시작된다. 느슨했던 영화는 긴장감이 고조되고 목표물에 침투한 대원들이 빈 라덴의 은신처를 접수해 간다. 드디어 타깃을 확인 사살하며 영화는 결말을 맞는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빈 라덴의 시신을 직접 확인한 마야가 머리를 흔들며 그가 확실하다는 사인을 보낸다. 곧 쓰러질 것 같은 허탈한 표정의 그녀를 위해 미국 정부는 군용기 한 대를 보내준다. 이것이 미국적인 가치라는 생각에 마음이 찡하다. 말단 CIA 요원에 불과한 그녀를 위해 미국 정부는 최대한의 예의를 표하며 그녀의 공로를 치하하기 때문이다. 아무도 타지 않은 비행기에서 안전벨트를 매는 미야에게 기장이
“어디로 가고 싶으세요?”
라고 묻는다. 멍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기던 그녀의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며 영화는 끝난다. 마야가 흘리는 눈물의 의미를 아는 것이 이 영화의 핵심이란 생각이 드는데 무엇일까?
‘허트 로커’에 제레미 레너가 있었다면 ‘제로 다크 서티’는 제시카 차스테인을 위한 영화다. 가녀린 그녀는 테러라는 극한 상황에 절대로 어울리지 않는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포기하지 않고 끝을 보는 그녀를 통해 열정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발견한다. 무엇보다 멋진 것은 마야의 입에서
“조국을 위해서”
란 상투적인 말이 나오지 않는다. 자신이 10년간 한 기관에서 묵묵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 것이 결과적으로는 조국을 위한 일이었고 국가는 그녀의 공로를 인정하기에 미국이란 나라의 건강함이 부러울 뿐이다.
“그놈을 쫓는 거 말고 뭘 했나?”
“아무것도요. 다른 건 없어요.”
이 한마디를 통해 마야의 삶을 짐작할 수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CIA에 들어갔고 그녀는 10년 동안 오직 빈 라덴을 잡기 위해 살았다. 그밖에 삶은 모두 불순물에 불과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한 집념과 열정 그리고 올곧음은 영화관을 나오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중요한 가치다. 영화의 감동은 역시 주인공에 있고 캐서린 비글로우는 이런 매력적인 주인공을 만드는데 천부적인 솜씨를 가지고 있기에 그녀의 다음 작품을 기다린다.
https://youtu.be/bieCrqLkeq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