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 보면 좋을 영화!!
10년 전 종방했지만 빼먹지 않고 열심히 보는 프로가 하나 있었는데 ‘TV, 책을 보다’다 김솔희 아나운서의 차분한 진행과 게스트들의 책담이 좋기에 뇌가 살찌는 즐거움이 있었다. 특히 이 프로를 진행하는 김솔희 아나운서는 매주 소개되는 책을 읽어야 하기에 엄청난 독서량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 같은데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 프로를 통해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라고 알려진 셰릴 스트레이드의 ‘와일드’를 알게 되었는데 눈에 들어온 것은 그녀의 이력이었다. 알코올중독자였던 아버지는 어린 셰릴를 학대했지만 엄마는 이혼 후 처절한 가난 속에서도 딸에게 꿈과 행복의 소중함을 알도록 키운다. 그러나 자신의 분신이었던 어머니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그 충격으로 삶의 희망을 잃어버린 그녀는 마약과 섹스에 탐닉하고 결국 남편과 이혼하고 만다.
어느 날 마트에서 그녀의 일생을 바꾸는 한 권의 책을 만나게 되는데 ‘PCT 하이킹 가이드’였다.
“어쩌다 이런 쓰레기가 됐는지 몰라?”
라며 자신을 한탄하던 그녀는 어머니에게 자랑스러운 딸이 되기 위하여 PCT(Pacific Crest Trail) 도보 하이킹을 감행한다. 멕시코 국경에서 시작해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 오리건 주, 워싱턴 주를 지나 북쪽의 캐나다 국경지대에서 끝나는 이 여정은 길이가 자그마치 4,285km나 된다고 한다.
‘와일드’는 셰릴 스트레이드의 자서전 ‘와일드’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놀랍게도 귀여움의 상징이었던 리즈 위더스픈이 이 영화의 제작과 주연을 맡은 것이다. 셰릴의 자서전을 읽고 감동을 받은 그녀는 예쁘고 신데렐라와 같은 이미지를 포기하고 인생의 맨 밑바닥까지 내려가 신음하던 한 여인의 삶을 재조명하며 희망의 소중함을 역설한다.
파울로 코엘료는 그의 책 ‘알레프’에서 이렇게 말한다.
‘여행은 언제나 돈의 문제가 아니고 용기의 문제다. 오랜 시간 나는 히피로 세상을 떠돌았다. 돈이 어디 있었겠는가? 한 푼도 없었다. 간신히 차비만 감당할 정도였지만 나는 그때를 내 젊은 날의 황금기로 꼽는다.’
코엘료의 말처럼 그녀는 26살의 젊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아니 절망과 방황을 이기기 위해 자신의 몸보다 큰 배낭을 짊어지고 장도(壯途)에 오른다. 거친 셰릴의 숨소리와 함께 시작되는 영화. 등산화를 벗은 그녀의 발가락들은 핏자국이 선명하다. 양말을 벗는 그녀의 입에서는 신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양말을 벗은 그녀의 엄지발가락은 빠져 흔들거리고 있다. 누구의 위로도 받을 수 없기에 그녀는 스스로
“괜찮아. 괜찮아”
라며 자신을 격려한다. 상한 발톱을 뽑던 셰릴은 아픔의 충격으로 몸을 움직이다가 등산화를 계곡으로 떨어트리고 만다. 영화는 이렇게 셰릴의 삶을 계곡으로 떨어진 등산화 한쪽으로 상징한다. 자신의 삶을 저주하며 남은 한 짝의 등산화도 계곡으로 던져버리는 셰릴. 누구에게나 삶은 이렇게 절망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절망 앞에서 좌절하기에 셰릴처럼 마약이나 술, 섹스 등으로 도피한다. 그러나 그녀는 절망을 이겨내기 위해 이 험난한 여정을 스스로 선택했다. 야생동물에 의해, 때로는 추위 때문에, 한밤중에 겪어야 하는 깊은 외로움 등과 같은 극한 상황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다큐멘터리와 같은 이런 영화가 주는 감동은 주인공이 이 모든 험난한 과정을 이겨내며 행복한 결말을 맞는 데 있다.
이 과정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장 마크 발레 감독은 그녀의 하이킹이 진행되는 현재를 중심으로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전개한다. 특히 엄마와 함께 보냈던 행복한 시절은 그녀에게 커다란 힘이 된다.
“네 최고의 모습을 찾아. 그걸 찾으면 어떻게든 지켜내고.”
누구와 비교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스스로 찾아낸 최고가 진정한 삶의 의미가 된다는 것은 커다란 깨달음이다. 젊음의 한 때는 누구와 비교되는 삶에서 가치를 찾았지만 이제는 누구와 비교될 수 없는 자신만의 고유한 모습을 알았기에 삶은 지혜로 다가온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다른 사람을 향한 시선이 아니라 자신을 바라보는 내적인 시선이야 말로 셰릴이나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영화는 자연이 주는 아름다운 풍경 때문에 눈이 호강할 수 있겠지만 셰릴의 내적인 삶을 찾아낸다면 묵직하게 다가오는 삶의 교훈들이 있다. 특히 젊은 시절에 좋아했던 사이먼 앤 가펑클의 ‘El condo pasa’가 배경음악으로 들린다. 상징성이 짙은 가사보다 서정적인 멜로디가 좋아 지금도 흥얼거리는 이 노래가 이 영화의 메인 테마로 사용된다. 그런데 이 가사는 이렇게 받아들여도 되지 않을까?
‘I'd rather be a hammer than a nail. 난 못보다는 망치가 되고 싶어.
Yes I would. 그래야지.
If I only could, I surely would. 될 수만 있다면 그래야지.‘
자신의 삶에서 도피했던 셰릴이 아니라 이제는 망치와 같이 적극적인 삶을 살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들려주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너무나 잘 알려진 프로스트의 시 한 구절
‘내겐 지켜야 할 약속과 내가 잠들기 전 가야 할 길이 있다.’
어떤 초라한 삶이라도 죽음이 다가오기 전 까지는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도피행으로, 비관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살고 있지만 어떤 난관 속에서도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묵묵히 가는 사람도 있다. 그 삶은 영화의 제목처럼 Wild 한 것이다. 야성을 잃지 않은 거칠고 열광적인 삶. 그것이 이 영화를 통해 얻는 소중한 깨달음이다.
배경 음악은 와일드 OST로 사용된
Paul Simon & Garfunkel의 El Condor Pasa입니다.
https://youtu.be/Sk1wlMlfqH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