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좀 알고 있는 친구들은 저에게 궂은일은 시키지 않는답니다. 가령 1박 2일로 놀러 갔을 때 야외에서 고기 굽는 일이나 운전할 때 등 몸 쓰는 일은 못하게 합니다. 시켜 봐야 서툴러 쓸모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번 저에게 운전을 시켰는데 “1m도 못 가서 내려라. 내가 할게.“ 하더군요. 좋게 말하면 “세일이는 편히 쉬는 게 도와주는 거야”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함께 사는 작은 공동체를 꿈꿀 때 친구들은
“너는 음악이나, 영화, 책 담당이니까 그것만 신경 써라, 나머지 몸으로 때우는 일은 우리가 할게.”라며 저를 배려해 주었는데 같이 살 기회가 사라지고 말았군요. 저 솔직히 말하면 좀 뺀질이 기질이 있답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은 되도록 하지 않고, 고상하고, 멋진 일만 나서기를 좋아한답니다. 그렇다고 눈치 없게 티가 나게 하지는 않습니다. 저에 대해 약간의 동정심을 유발하게 하는 것, 이것이 핵심인데 보호 본능까지는 아니더라도 “재는 용도가 따로 있으니까 그것만 잘하면 돼”라는 인식을 심어준답니다.
그러나 집에 있을 때는 다릅니다. 주중에 2~3일 정도는 혼자 있기에 먹는 것을 자급자족해야 한답니다. 아내가 해 준 음식도 화요일 정도만 되면 떨어지기에 굶어 죽지 않기 위해서는 뭔가 만들어 먹어야 합니다. 가장 편한 것은 인스턴트 음식이죠. 요즘은 찌개류 같은 경우는 아내가 해주는 것과 별 차이 나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음식이 많은데 문제는 과다한 MSG가 살포되었고 짜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가장 쉽고 편한 것이 인스턴트 음식이기에 주로 인터넷에서 주문합니다. 아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기에 다툼도 여러 번 있었고“너하고는 더는 못 살겠다.” 말도 듣지만, 꾸역꾸역 살고 있답니다. 문제는 저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놈의 배송비가 아까워 한꺼번에 많이 시키는 겁니다. 우리 집 냉장고 냉동실에 들어가지 못할 정도니, 아내가 열받을 만도 합니다.
한 2주 전에도 제가 막걸리는 마시지 않는데 세일한다는 것에 혹해 인터넷으로 막걸리 5병을 주문했답니다. 딴에는 맥주 값을 좀 아껴야겠다는 착한 마음이었는데 막걸리는 넘기는 것이 고통스러우니 저하곤 상극인 것 같군요. ㅠ 이거 남겨 두면 또 잔소리 들을 것 같아 어제는 점심을 부대찌개와 막걸리로 때우기로 했답니다. 부대찌개는 인터넷에서 주문한 것이고 거기에 햄과 소시지는 제가 따로 산 것을 덤으로 집어넣으면 부대찌개가 완성됩니다. 삼양라면을 집어넣으려고 봉투를 뜯는 순간 웃음이 나왔습니다. 아들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죠.
“아빠 우리 집 경제적 형편이 이제는 신라면 정도는 먹을 수 있으니까 앞으로는 신라면으로 주문하세요”
맞아!. 신라면이 원조 삼양라면 보다 쫌 비싸죠?
근데 가격 차이도 있지만, 우리 나이는 원조 삼양라면에 대한 향수가 있어요. 그때는 농심라면이 나오지 않았으니까요. 예전부터 삼양의 시대는 저물었고 농심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에 젊은 친구들은 라면 하면 농심이고 너구리죠. 제가 보더라도 이제는 삼양보다 농심이 훨 맛있답니다. ㅎㅎ 여하튼 추억을 생각하며 삼양라면을 넣고 부대찌개를 완성하고 막걸리를 따랐습니다. 잔이 없기에 온더록스 잔에 막걸리를 가득 따랐습니다. 막걸리는 가라앉기에 흔드는 것도 기술인데 이제는 흔들 줄도 안답니다. ㅋㅋ
막걸리도 과거, 삼양라면도 과거이기에, 노래도 과거의 것을 들어야겠다는 생각에 7080 가요를 선곡했습니다. 유익종 노래를 좋아하는데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의 가사가 애절하군요. 그런 사랑도 없었는데 왜 이 노래가 막걸리에 어울리지?
가끔은 가슴이 허할 때가 있습니다. 슬픈 노래와 일본 로맨스 영화가 제일 좋은 치료제이기에 “좋다”를 남발하며 하루를 보냅니다. 마눌님이 돌아오기 전까지 방 청소 깨끗이 하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말을 건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