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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일 Jan 16. 2023

옛 것을 그리워함

'고전 독서법' 리뷰 

달달하다’란 단어는 어감이 좋다.
마치 입안에서 살살 녹은 마시멜로나 쓴 맛이 사라진 라테 아이스커피의 부드러움처럼 자신의 감정을 드러낼 때 잘 어울리는 말이다. 그런데 이 단어는 ‘춥거나 무서워서 몸이 떨리다’가 원뜻이고 우리가 흔히 쓰는 ‘달달하다’는 경상도 지역에서 쓰는 방언으로 ‘달콤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다. 한 지역에서 쓰는 방언이 표준어를 누르고 더 일반적인 뜻으로 사용된다는 것은 ‘달달하다’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어감과 그 의미가 잘 맞아떨어진 결과가 아닐까?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고전 독서법’도 달달한 책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은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동양의 고전을 현대감각에 맞게 쉬운 글로 썼기에 독자들에게 친근감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동양고전이 어렵고 지루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데 정민 교수는 실력이 뛰어난 바리스타처럼 어려운 책들을 까페라떼처럼 달달하게 만들었다. 그러기에 그의 글을 한번 읽은 독자라면 깊은 지식에서 퍼 올린 글 솜씨 때문에 달달함뿐만 아니라 인생을 사는 지혜도 제시해 주기에 소중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이 책은 그의 저 ‘오직 독서뿐’을 읽다가 발견한 책이다. 
“고전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란 질문은 독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 봤을 것이고 그 답을 찾기 위해 갈증을 가진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저자가 머리말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인터넷이나, 컴퓨터, 핸드폰 등을 통한 정보화 사회에서 독서 인구는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독서는 사물을 이해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주요한 방법이기에 독서의 중요성이 점점 커져야 한다는 저자의 생각이 잘 드러나 있다.

그러기에 정민 교수는 그 방법으로 아들에게 보내는 서간문 형식으로 이 책을 저술해 나가고 있다. 마치 정약용이 그의 아들들에게 편지로 아버지의 사랑과 인생을 살아가는 법을 교훈한 것처럼 저자도 글을 통해 아들과 함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책과 책 읽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면에서 이 책은 자녀들과 함께 읽고 그 느낌을 간단한 다과를 준비하고 성년이라면 가볍게 와인 한잔을 나누며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 책 속에는 책을 사랑하고 책 읽기에 미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전달이 되는데 그중의 하나가 송나라 때 유명한 학자 예사(倪思)의 글은 마음에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고, 그런 삶을 꿈꾸게 하기에 우리 시대가 읽어버린 소중한 삶의 모습이고 반드시 찾아야 할 삶의 과제다

‘솔바람 소리, 시냇물 소리, 산새 소리, 풀벌레 소리, 학 울음소리, 거문고 소리, 바둑 두는 소리, 비가 섬돌 위로 떨어지는 소리, 창문에 눈발이 흩날리는 소리, 차 달이는 소리 등은 모두 소리 중에서도 지극히 맑다. 하지만 낭랑하게 책 읽는 소리가 가장 좋다. 다른 사람이 책 읽는 소리를 들으면 그렇게까지 기쁘지는 않은데 자식의 책 읽는 소리만큼은 기쁨을 이루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현대인이 잃어버린 것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소리를 통해 얻는 인생의 즐거움과 교훈이 아닐까? 

언제 귀 기울이고 솔바람 소리를 들었을까?
창문에 눈발이 흩날리는 모습을 보기는 했지만 소리로 들은 적은 있었나?
아니, 낭랑한 목소리로 책을 읽은 적은 언제 이었나?

이런 질문 앞에서 “예”라고 대답할 수 없는 이유는 우리의 문화가 청각보다 시각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TV, 컴퓨터, 핸드폰 등 우리가 편하게 쓰고 있는 문명의 이기는 다 시각을 이용하는 것들이다. 그러기에 요즘은 초등학교 아이들 절반 정도가 안경을 쓸 정도로 눈이 혹사당하는 시대에 살고 있고, 시각 문화의 문제는 범죄를 일으키기에 좋은 도구가 된다는 사실이다. 눈으로 본 것은 우리의 뇌를 자극하고 그 결과 “나도 저렇게 해 봤으면!”하는 충동을 일으키게 한다.

성경에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것도 선악과를 본 이브의 마음속에 “먹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이 마음을 알고 있던 뱀은 교묘하게 이브의 본능을 자극한다. 그러나 청각 문화는 느끼는 것이기에 사람의 감성을 자극한다. 또 반드시 인공적이 아니라 자연적이어야 한다. 요즘 대세를 이루고 있는 힐링이 사람을 자연으로 인도하는 것도 그 이유다. 자연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삶의 본연의 모습을 찾을 때 치유는 시작된다. 그러기에 책도 청각이 주가 되었을 때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깨달음이 있다.

예사(倪思)가 그 모두 맑은 소리 중에서 자식의 책 읽는 소리만큼 기쁨을 주는 것이 없다는 것은 모든 부모의 마음이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 자식들이 낭랑한 목소리로 책 읽는 소리를 들었을까?

삶을 잘못 살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드는 것은 우리가 잃어버린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고전 독서법’ 속에는 우리의 선조들이 읽었던 독서의 방법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것인가? 를 알게 해 준다. 그러나 그것은 새롭거나 특이한 것은 아니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그 방법을 이렇게 말한다.
소리 내서 읽으라.
소리 내어 책을 읽게 되었을 때 일어난 에피소드를 많이 말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유익은 여자의 마음(?)을 빼앗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집현전 학자로 알려진 정인지가 맑은 목소리로 밤낮없이 책을 읽자 그 목소리와 모습에 반한 이웃집 처녀가 그 모습을 흠모해 담을 넘어 사랑을 고백했단다. 그러나 정인지는 그녀의 마음을 받아주지 못하고 이사를 갖고 처녀는 상사병으로 죽어 버렸단다. 이렇게 깊은 밤중에 낭랑한 목소리로 책을 읽는 것은 정말 듣기 좋은 소리지만 지금 같으면 위층이나 아래층에게 소음을 일으킨다는 이유로 싸움질이 나지 않을지 모르겠다. 그만큼 우리는 삭막한 시대를 살고 있다…….ㅠㅠ

읽고 또 읽으라.
대부분의 독자들은 다독을 책을 많이 읽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니까 “몇 권 읽었다”는 독서량을 말한다. 그러나 우리의 선조들은 다독에 대해 ‘이 책 저 책 많이 읽는 다독이 아니라, 한 번 읽은 책을 읽고 또 읽는 다독이다. 그들은 논어 맹자 같은 기본 경전은 몇 백 번 몇 천 번씩 숫자를 헤며 읽었다.’(55쪽)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김득신은 사마천의 ‘사기’에 실린 ‘백이열전’이 너무 좋아 평생 1억 1만 3천 번이나 읽었다고 한다. 이렇게 다독은 정독의 다른 말이다. 그들이 이렇게 한 책을 읽고 또 읽은 것은 깨달음을 얻기 위함이다. 정민 교수는 책을 읽는 가장 중요한 이유를 여기에 두고 있다. 깨달음은 자신의 삶에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책을 읽더라도 그저 읽지 말고 글쓴이의 마음과 만나야 한다.’ 글쓴이의 마음까지 읽을 때 책과의 소통을 통해 마음의 변화를 가져온다. 그 느낌을 느끼지 못했다면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이란 지적은 가슴에 새길 만하다. 

그 밖에도 외우고 메모하는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책 읽기의 기본이다.
이 책이 주는 소중함은 조선시대 선비들의 위대함에 대해 알게 된 것이다. 학교 시간에 배운 것은 그들은 주로 당쟁이나 하며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거드름 피우며 살았을 것 같은데 그 당시에도 대단한 인물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 대단함의 원천은 책 읽기고 책사랑이다.

연암 박지원은 ‘책 앞에서는 하품하지 말고 기지개를 켜도 안 된다. 책에 침이 튀어도 안 된다. 재채기나 기침을 할 때는 고개를 돌려 책에 묻지 않도록 해라. 책장을 넘길 때 침을 바르지 말고, 손톱으로 표시를 남겨도 안 된다. 책을 베고 누워도 안 되고, 책으로 그릇을 덮어도 안 된다.’고 했다. 옛 선조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책을 소중히 여겼고 경외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자세는 지금도 우리들에게 소중한 교훈이다.

정민 교수의 아들에게 쓴 편지글의 형식을 가지고 있기에 책은 무척 쉽게 저술이 되었지만 주는 교훈은 만만치 않다. 왜냐하면 우리가 알고 있지만 잃어버린 것들의 소중함을 깨닫기 때문이다. ‘옛 것을 그리워함’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것은 그 삶이 진짜이기 때문이다. 조상들이 가지고 있던 서정과 자연. 그리고 그 속에서의 책 읽기가 부러운 이유는 자신의 감성을 예쁘게 하기 때문이다. 책은 언제나 우리의 이성을 자극한다고 생각했기에 정보와 지식이 중요했지만 조상들은 그보다 감성이 풍부한 독서를 즐겼다. 그들은 지식보다 지혜를 원했고, 출세보다 삶의 근원을 탐구했다.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에 대한 목마름이 있다면 이 책은 소중하고 아껴야 할 가치를 가지고 있다. 

배경음악은 

마스네 타이스의 '명상곡'입니다. 김봄소리 연주

https://youtu.be/Wx-vULeWy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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