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그러진 들통에 물을 붓고 갈탄 난로에 올려놓으면 물이 끓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열심히 수다를 떨고 있지만, 책임감을 느낀 문예부장은 재빠른 손길로 삼양라면 봉지를 벗기고 하얀 속살을 드러낸 라면을 들통에 투하했다. 끓고 있는 수프의 향이 배고픈 아이들의 코끝을 자극하면 입안에서는 본능적으로 침이 고이기 시작하고 쫄깃쫄깃한 면발을 기대했지만, 한계를 넘은 용량 때문에 라면은 이미 국수가 되고 말았다. 입 안에 넣기만 하면 스스로 끊어질 정도로 불어 터졌지만 우리에게 그보다 맛있는 음식이 없었다.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입안에 털어 넣으면 그 포만감으로 인해 행복했는데 벌써 50년이 넘은 기억이다.
10월이 깊어지고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대부분의 교회는 가을의 밤하늘을 수놓는 ‘문학의 밤’ 행사가 있었다. 엉성한 조명과 조악한 사운드 때문에 내가 좋아했던 소녀의 시 낭송은 그리 감동적이지 않았지만 그 아이의 청순한 예쁜 외모 때문에 초청된 많은 남학생들의 박수 소리는 컸다. 그다음은 내 차례였는데 서정주 시인의 ‘푸르른 날’을 낭송했다. 이 시는 그 당시 제 마음을 빼앗았던 누나가 예쁜 봉투와 함께 건네줬는데 가슴이 그렇게 콩닥거릴 수 없었다.
“세일아, 이번 문학의 밤 때 네가 낭송해 줄래?”
얼굴이 발개지며 “예”라고 대답했다. 음악은 내가 선정했는데 지금도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프란시스코 타게라(Francisco T'arrega)의 ‘Recuerdos de la Alhambra’(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이었다. 타게라의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연주가 슬픈 사랑의 여운이 남아있는 이 시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 세대가 잃어버린 아름다운 것 중 하나는 낭만이다. 글을 잘 쓰지 못했어도 누구나 10대는 문학소년, 문학소녀였다. 자물쇠로 채운 일기장, 사인펜이나 물감 등을 이용해 만든 자신만의 추억집 하나 정도는 곱게 간직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아침 햇살에 녹아버린 눈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10 년 전부터 우리 사회에 글쓰기 열풍이 불었다. 내 서재에 꽂혀 있는 글쓰기, 독서법에 관한 책만 하더라도 족히 100권이 넘는 것을 보면 자신도 이 분야에 큰 관심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제는 문학적 글쓰기가 아니라 실용적 글쓰기가 대세다, 굳이 글쓰기를 이렇게 둘로 구분하는 것이 어리석을 수도 있겠지만 이 시대가 요구하는 글쓰기는 내적인 삶의 가치가 아니라 업무, 스펙, 성공을 뒷받침해 주는 외적인 글쓰기를 원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자소서다. 대학 입학, 취업 등을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소개서라는 첫 번째 관문을 넘어야 한다. 그러나 모든 글쓰기의 감동은 솔직한 내적 고백을 통한 진실성이 우선이 아닐까?
영화 ‘박열’에서 보여준 가네코 후미코의 글쓰기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 박열이라는 한국인을 사랑했고 그와 함께 무정부주의자로 일본에 대항했기에 그녀는 23살이라는 어린 나이로 사형선고를 받고 옥중 생활 3개월 만에 목을 매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추정) 사형선고가 내려질 뻔한 재판임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는 옥중에서 자신의 짧은 생을 기록해 나간다. 정식 교육은 거의 받지 못했지만 그녀의 글쓰기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
“잊지 않겠다. 밝혀내겠다. 기억하겠다.”
그녀는 자신의 생을 이렇게 말한다. “산다는 것은 그저 움직이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나의 의지에 따라 움직인다면 그것이 비록 죽음을 향한 것이라도 그것은 삶의 부정이 아니라 긍정이다. 그와 동지로 투쟁했던 3년 만이 진정한 나의 삶이었다.”
23살의 짧은 삶이지만 그녀에게도 3년이라는 삶은 화양연화(花樣年華)와 같은 시절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고 자서전을 쓰며 가장 자신다운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이처럼 자신을 성숙시키는 삶은 글쓰기에서 시작된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에서 꼭 깊이 생각해야 할 화두가 하나 있다.
“기술은 필요하지만, 기술만으로 잘 쓸 수는 없다. 잘 살아야 잘 쓸 수 있다. 살면서 얻는 감정과 생각이 내면에 쌓여 넘쳐흐르면 저절로 글이 된다. 그 감정과 생각이 공감을 얻을 경우 짧은 글로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세상사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문제는 기술을 가진 사람은 많은데 잘 사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흐릿한 눈을 가지고 책 한 권과 씨름하는 이유도 제대로 살고 싶기 때문이다. 작은 메모 수첩 한 권을 가지고 다니던지, 핸드폰의 메모장을 사용하던지 하루하루 보고 느낀 것을 간단히 적고, 좋은 글귀나 풍경 등은 핸드폰에 저장하고, 반복해 보는 훈련이 있다면 글쓰기는 반드시 누군가의 가슴에 한 송이 장미꽃을 선물하는 기쁨이 있을 것이란 확신이 있다. 글쓰기를 고민하는 친구에게 이 글을 전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