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공주' 리뷰
이 영화는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으로 만 18세 미만의 청소년은 시청할 수 없습니다.’란 자막은 고인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기억할 수 있는 영정사진처럼 다가온다. 17살 소녀가 당한 아픔과 상처를 내면적으로 그려낸 영화인데 그 또래의 아이들이 볼 수 없다는 것은 한공주(천우희)가 그렇게 원했던 삶에 대한 희망을 봉쇄해 버리는 것과 같다. 공주가 성폭행당하는 장면에 등장한 술과 담배, 또 윤간이라는 내용 때문이었을까?
공주의 슬픔을 누구보다 공감하고 아파할 그 또래 아이들이 보지 못하도록 규정한 심의위원들은 영화의 첫 장면에 등장하는 교장이나 선생들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공주의 아픔보다는 외적으로 드러난 행위만을 가지고 공주를 판단하고 음주나 폭행 등의 몇 장면을 보고 미성년자불가 판정을 내린다. 그러나 이수진 감독은 이렇게 연출 의도를 말한다. “난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가해자인지를 가늠하는 이야기나 그것으로 인해 공분을 일으키려는 목적이 아니다. 극단적인 상황에 놓인 소녀가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는 모습과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우리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감독의 연출 의도는 화면의 첫 장면의 공주의 내레이션으로부터 시작된다. “외로움도 두려움도 슬픔도 잠시 잊어. 노래가 종교 같은 거네. 공주에게” 노래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 공주를 지켜주었던 것은 역시 노래였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노래가 있는 한 공주는 이겨낼 수 있었고 삶의 끈은 희망으로 남아있다. 그러기에 공주는 냉소적이고 귀찮은 표정을 짓고 있는 교장 앞에서 당당히 말한다.
“전 잘못한 것이 없는데요?”
그러나 17살의 공주는 이 사건을 덮으려고 하는 교장의 편의주의와 애써 외면하는 선생들의 무관심으로 인해 고향을 떠나 다른 학교로 전학할 수밖에 없다. 교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선생들은 가방을 공주에게 전해주는데 놀랍게도 공주 옆에 놓는다. 공주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있다면 그들은 마땅히 가식적이라도 공주를 포옹하며 격려의 말 한마디쯤은 해야 한다. 이 장면부터 슬픔은 가슴속으로 파고들며 “공주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서는 안 돼”라는 말을 기도하는 심정으로 되뇐다. 그래도 담임만큼은 공주를 위해 전학할 학교까지 동행해 주고 갈 곳이 없는 그녀를 위해 엄마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의 집에 기거하게 한다. 마음의 빗장을 잠그고 있는 그녀의 마음은 서서히 풀리지만 공주가 가지고 있는 상처는 비 내린 뒤 더욱 잘 자란 잡초처럼 점점 더 공주의 마음을 황폐하게 만든다.
학교생활에 적응하며 과거의 상처를 극복해 가는 공주는 제일 먼저 수영장에 등록을 한다. 이때는 왜 공주가 수영을 배우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이 영화의 절정에서 수영은 공주의 마음을 단적으로 드러내기에 눈물을 쏟게 하는 결정적인 아픔으로 나타난다. 어느 날 공주에게 다가오는 친구가 있었는데 은희(정인선)다. 맑고 명랑하고 다정한 성격인 그 아이가 공주의 마음을 여는데 난 불안하다. 아무래도 공주의 행복한 웃음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란 불안감이 엄습하기 때문이다. 어둠이라고는 전혀 없어 보이는 은희와 친구들은 “공주는 꿈이 뭐야?”라고 묻는다.
“풀장 완주 25미터”
“왜”
“물에 빠지면 죽으니까”
누구보다 삶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자신의 아픔을 이겨내고자 했던 공주. 그러나 현실은 이 아이의 꿈을 짓밟아 뭉개고 만다. 영화 ‘도가니’를 보면서는 “지랄들을 한다.”며 분노를 표출했지만 ‘한공주’는 분노보다 슬픔이 더 빨리 밀려왔다. 한 아이가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는 자신이 원한 것이 아니라 이 사회가, 아니 이기적인 인간들이 만들어 낸 폭력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고 자신도 그중의 한 명이 될 수 있을 것이란 부끄러움이 있기 때문이다. 공주가 당한 사건이 신문과 방송을 타고 모든 사람이 알게 되자 지금까지 공주 주변에서 힘이 되었던 사람들이 한 사람씩 돌아서기 시작한다. 선생님도, 담임선생의 엄마인 조여사(이영란)도, 가장 마음 아픈 것은 공주가 당하는 성폭행 장면을 은희와 친구들이 보고 있을 때 공주의 전화가 걸려왔을 때 은희는 전화를 받지 않는 장면이다. 다시 공주 곁에는 한 사람도 없다. 카트를 끌며 한강 다리를 건너는 공주의 뒷모습은 애처롭고 배경음악은 슬프다.
“왜 그렇게 수영을 열심히 해” 은희가 묻는다.
“다시 시작해 보고 싶을까 봐”
영화를 보고 성경 말씀이 생각났다. 누가복음 10장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여리고로 가는 길에 한 남자가 강도를 만나 모든 것을 빼앗기고 다 죽어가고 있었다. 마침 이곳을 지나던 제사장은 자신은 성전봉사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시체를 만져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이 사람을 모른척하고 지나간다. 그 뒤를 이어 레위인이 지나갔지만 그도 자신은 성전에서 제사장을 도와 거룩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시체 옆을 지날 수 없다는 핑계를 대며 모른 척한다. 마지막 사마리아인이 이곳을 지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혼혈인이라는 이유로 상종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죽어가는 사람을 발견하고 여관까지 데려가 치료해 준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라고 물으신다. 제자들은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라고 대답한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고 말씀하신다.
우리 시대의 비극은 무엇일까?
제사장이나 레위인 같은 사람들은 많은데 사마리아인이 없다는 것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교장과 선생, 경찰서장, 그리고 가해자 학부모들이 등이 그런 인물이다. 담임선생의 엄마인 조여사는 “난 신앙이 있는 사람이야. 믿음이라는 게 사람 사이에 제일 중요한 거야” 라며 자신의 믿음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만 그녀도 공주의 과거를 안 다음 생각이 돌변하며 멀어진다. 꼭 기독교가 아니더라도 종교의 역할은 인생의 바른 길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 시대가 어두워지고 있는 이유도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없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사마리아인이 자신이어야 한다는 깨달음 때문에 영화는 마음을 무겁게 한다. 좋은 영화는 언제나 마음을 불편하게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좋은 것은 자신이 사람이 되어가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배경음악은
한공주 ost 중에서
김예림(Lim Kim) - 잘 알지도 못하면서(Don't Know) [MV]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