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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일 Feb 07. 2023

나의 언어로 당신의 영혼을 만지리

영화 '세션 이 남자가 사랑하는 법' 리뷰

20대 시절을 종로에서 보낼 때 허리우드 극장은 청춘들이 데이트하기 좋은 장소 중의 하나였지만 세월의 흐름에 따라 단성사나 피카디리, 중앙극장과 같이 추억의 이름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허리우드만큼은 ‘허리우드클래식’이란 이름으로 개명을 하고 55세 이상의 장년층을 위한 전용 영화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입장료가 2천 원이기에 저렴한 가격으로 예전의 명화들을 관람할 수 있는 즐거움은 있겠지만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이유는 왠지 나이 든 사람들이 모여 보는 영화는 아무리 명화라 할지라도 청승맞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자신이 나이 들었다는 티를 내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기에 죽는 날까지 허리우드 극장 근처는 가지 않을 것을 굳게 다짐한다…….ㅎㅎ

반대로 대중성은 빈약하지만 화제작이나 작품성이 뛰어난 영화를 아무런 홍보 없이 상영하는 광화문의 씨네큐브는 장년의 나이쯤 된 사람이 앉아 있으면 꽤 괜찮은 분위기를 만들어 주기에 가끔 갔었다. 더군다나 자신이 좋아하는 교보문고나 덕수궁, 삼청공원이 주변에 있기에 책구경도 하고 산책할 수 있는 풍요로움도 있다. 



 <세션: 이 남자가 사랑하는 법> 은 
10년 전쯤 씨네큐브에서 본 기억이 있다. 그 당시는 이 영화의 가치를 알지 못했지만 한 책에서 소개된 영화 리뷰를 보고 다시 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2013년 골든 글로브 남우주연상과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르고 아카데미에도 노미네이트 되었기에 이 영화의 작품성은 인정받을만하다. 또 영화를 본 사람들의 입소문 때문에 씨네큐브에서 홀로 이 영화를 관람했다. 소극장이기에 아늑한 느낌이고 마치 공연장에 온 것처럼 예의를 다하는 관람객들의 모습이 무척 보기에 좋다.

영화는 저널리스트이자 시인인 38살의 싱글남 마크 오브라이언(존 호킨스)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기에 코끝을 찡하게 하는 감동이 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대단한 업적을 남기고 인간승리를 이룬 교훈을 담은 영화는 아니다. 그는 6살 때 소아마비를 앓고 그 후유증으로 안면 근육만 움직일 수 있는 중증 장애인이다. 30년이 넘는 세월을 침대에 누워 호흡 보조기를 통해 삶을 유지해 왔다. 도우미가 도와주지 않으면 목욕도, 화장실을 갈 수도, 거동조차 할 수 없다. 그러나 그는 육체의 한계를 이기고 일반인들도 들어가기 어려운 UC버클리 대학을 수석 졸업한 수재다. 그 정도의 학벌을 가졌고 시인이라면 아무리 장애를 가졌다 할지라도 정상적인 가정을 이루고 자녀 한두 명쯤 낳고 행복한 삶을 살 것 같은데 그는 아직 키스 한번 해보지 못한 완전 순전한 총각이다. 불완전한 육체를 가지고 있음에도 그의 몸은 성적인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한 때 자원봉사를 다니면서 장애우들의 사랑에 대해서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착실한 천주교 신자인 마크는 브렌든 신부(윌리엄 H. 머시)를 찾아가 성당 안에서 공개적인 고해성사를 시작한다.



이때부터 영화 속의 대사는 원색적인 욕망으로 가득한 대화가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럽게 진행되는데 유머 때문에 붉어진 자신의 얼굴과는 달리 입가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특히 마크와 함께 완전 순도 100% 숫총각일 것 같은 브렌든 신부의 능수능란한 상담은 그가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신부인지 알 수 있다. 자신의 성적 능력 회복을 위해 결혼도 하지 않고 성관계를 갖겠다는 마크의 말에 놀란 브렌든 신부가 “도대체 일반 매춘부와 섹스 전문가의 차이가 뭐지?”라고 반문하며 망설이며 갈등한다. 그리고 성당의 예수님 상을 바라본 뒤에 결론이 "예수님께서는 당신에게 특별히 그 일을 허락하실 것 같습니다”라며 마크의 편에 선다.

“나 같으면 이런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란 생각을 했다. 아마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이단이라고 정죄받기 딱 알맞을 결정이고 즉시 파문되고 말 것이다. 그렇지만 브렌든 신부는 진지하게 말한다. 

“한번 해봐요?”

하나님 앞에서도 합법적인 행위로 인정받은 마크는 섹스테라피스트인 셰릴 코헨 그린(헬렌 헌트)을 만나고 섹스를 통한 심리치료가 시작된다. 이때 두 사람의 대사는 원색적이고 완전개방형으로 진행되기에 자신 같으면 부끄러움으로 치료를 포기하겠지만 마크와 셰릴은 진지하다. 그녀는 정말 냉정한 치료사다. 특히 마크와 성관계를 성공적으로 갖는 것이 치료의 핵심이기에 그 당시 50살이 된 헬렌 헌트의 나신이 영화 속에 그대로 공개된다. 그녀의 가슴은 밑으로 처져있고 볼륨감도 상실했지만 그 자연스러운 모습 때문에 역시란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조금도 추하게 보이지 않고, 성적인 욕망을 품을 수 없는 그녀의 나신은 영화 속에서 아름다움으로 남는다. 왜냐하면 그 장면은 성적인 묘사보다 마크와 헬렌이 나누는 정신적인 교감을 통해 한 남자로서의 존엄성과 정체성이 회복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냉정했던 셰릴이 마크 앞에서 흔들린다. 영화 속에는 두 사람 사이에 그 흔한 사랑의 말들과 행동이 보이지 않지만 벤 르윈 감독은 그녀가 흘리는 눈물과 남편과의 갈등을 보여주며 셰릴에게 다가온 짧은 사랑을 보여준다.



 그 사랑의 원천이 무엇일까?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지 못한 마크의 순수함이다. 비록 그의 육체는 엄청난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그의 영혼은 땅속 깊은 곳에서 퍼낸 암반수처럼 청량하고 깨끗하다. 요즘 우리 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랑은 정신의 결합보다 육체적인 관계가 먼저 찾아오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두 사람의 만남은 육체의 치료가 근본적인 목적이었지만 부수적으로 영혼의 만남을 통해 자연스럽게 정신과 육체가 하나 되는 과정을 겪는다. 여기에 영화가 주는 감동이 있다.

이 세상이 아름다운 이유는 영혼이 맑고 순수한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교리에 얽매이지 않고 한 사람의 아픔을 더 소중히 여기는 브렌든 신부, 마크가 가지고 있는 영혼의 순수함을 사랑하기 때문에 잠시 흔들리는 셰릴, 영혼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마크의 순수한 영혼 등. 영화 속의 등장인물들은 맑은 영혼의 소지자들이다. 영화를 보고 밖으로 나와 화장실의 거울 앞에서 마크의 자작시 한 구절을 속으로 자신에게 들려준다.

“나의 언어로 그대를 어루만지리.”

어쩜 자신에게 더 어울리는 것은 브레든 신부의 언어란 생각을 한다. 한 사람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감싸고 소중히 여기는 것. 그것이 자신이 지니고 있어야 할 사명으로 다가온다.


〈세션: 이 남자가 사랑하는 법〉박찬욱 감독 특별 추천 영상

https://youtu.be/r0e1W33-p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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