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세일 Jan 29. 2023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

영화 ‘굿바이 마이 프렌드’ 리뷰

한창 감수성이 예민하던 학창 시절 누구나 워즈워드의 ‘무지개’는 자신의 비밀노트에 적어놓고 암송했던 기억이 있을 것 같다. 특히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 란 이 구절은 수십 년이 지났어도 기억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아이들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남은 인생을 살고 싶기 때문이다.  

영화 ‘굿바이 마이 프렌드’는 제목 자체가 암시하는 것처럼 슬픔으로 가득한 영화다. 이 영화를 보며 감동하는 것은 에릭(브래드 렌프로)과 옆집 소년 덱스터( 조셉 마젤로)의 진한 우정 때문이다.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보며 가슴이 뛰었던 어린 시절은 우리 곁에서 사라졌고 오늘도 밥벌이에 피곤한 자신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기에 이 영화의 가치가 빛난다.



이혼한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는 에릭은 옆집에 살고 있는 수혈받다가 에이즈에 걸린 덱스터와 친구가 된다.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따로 놀던 두 아이는 어느 날 에릭이 덱스터 집의 담을 넘어감으로 친구가 될 수 있는 계기를 만든다.

에이즈 때문일까?

자신과 동갑이지만 덱스터는 자신보다 훨씬 외모가 작고 진한 외로움을 가지고 있다. 둘은 함께 전쟁놀이 비디오 게임 등을 같이하며 짧은 시간에 친해지며 우정이 깊어진다. 어느 날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던 에릭은 덱스터의 엄마 린다(아나벨라 시오라)가 창가에서 흘리는 눈물을 본다. 덱스터가 에이즈 치료약이 발견되기 전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이때부터 에릭은 덱스터를 위해 치료약을 구할 결심을 하고 두 아이는 들판에 나가 식물의 잎이나 열매, 풀등을 뜯어 달여 먹인다. 에릭의 진지함 때문에 정말 덱스터의 병이 나을 것이란 착각이 들 정도다.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어느 날 신문기사에 에이즈 치료약이 개발되었다는 기사를 본 린다와 에릭, 덱스터는 뛸 듯이 기뻐한다. 이때 에릭의 엄마 게일(다이아나 스카위드)은 에이즈가 전염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덱스터와의 만남을 반대하며 아들을 여름 캠프에 보내려고 한다. 한시라도 친구를 위해 빨리 치료약을 구하고 싶은 에릭은 덱스터와 함께 뉴올리언스에 있는 개발자를 찾아가는 모험을 감행한다. 작은 뗏목에 의지해 강을 따라가던 두 아이는 에릭이 가지고 온 전 재산을 털어 뉴올리언스행 배를 탄다. 그러나 너무 먼 거리의 여행을 감당하지 못하는 덱스터의 몸이 점점 더 나빠지기에 에릭은 에이즈 약을 포기하고 덱스터의 집으로 돌아온다. 고속버스 정류장에서 두 아이를 기다리는 린다는 모습은 엄마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귀한지 알 수 있다. 이 영화 속에서 가장 이상적인 엄마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그녀의 사랑이 주는 감동도 이 영화의 한축이 된다.

린다는 아들을 병원에 입원시키지만 죽음의 그늘이 덱스터 옆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그 옆에 수호천사처럼 에릭이 덱스터를 지키고 있다. 죽음의 그림자 그늘에 있는 덱스터는 자신에게 다가온 죽음을 두려워한다. 이때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가 주는 감동이 있다. 잠이 들면 우주 속으로 날아가 영원히 잠에서 못 깰 것 같은 두려움에 빠져있는 덱스터를 위해 에릭은 자신이 신고 있던 농구화 한 짝을 주면서 이렇게 말한다.

“자는 동안 이걸 (운동화) 꼭 붙잡고 있어. 만약 네가 잠에서 깼는데 무섭거든 이렇게 생각해 봐. 잠깐, 난 에릭의 신발을 잡고 있어. 대체 왜 내가 냄새나는 지독한 농구화를 들고 있는 거지? 난 지구에 있는 게 틀림없어, 에릭은 바로 내 옆에 있을 거야"

그러나 수호천사 에릭의 농구화도 덱스터를 죽음에서 건지지 못한다.
친구의 장례식날 검은 양복을 입은 에릭이 관속에서 눈을 감고 있는 친구를 위해 자신의 농구화 한쪽을 벗어준다. 이 장면에 눈물이 핑 돈다. 그리고 한쪽만 신발을 신었기에 불편한 걸음으로 덱스터 곁을 떠나는 에릭을 린다가 본다. 그의 손에는 덱스터의 구두 한쪽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핑 돌던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진다. 두 아이가 가지고 있는 순수하고 진한 우정에 감동하기 때문이다. 끝까지 덱스터의 수호천사가 되고 싶은 에릭의 모습은 밥벌이의 고단함 때문에 점점 순수와 멀어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11살의 에릭과 덱스터의 모습으로 회복시켜 놓는다.



‘우정’ 젊음의 한 때 가장 소중한 가치였다.
그러나 지금은 살아가는 피곤함 때문일까?

에릭과 덱스터가 가지고 있는 소중한 가치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영화 ‘천국의 아이들’

은 사랑하는 동생에게 신발을 선물하기 위해 1등이 아니라 3등을 해야 하는 오빠 알리의 모습이 감동적으로 표현되었다. 순식간에 3명의 아이들이 결승선을 통과했기에 본인은 자신이 몇 등인지 알 수 없었을 때 알리는 

“제가 3등이죠?”

라고 묻는다. 그러나 1등이란 말을 들었을 때 쓸쓸하고 풀 죽은 알리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두 영화에 나타난 신발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배려와 자기희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런 소중한 가치로부터 멀어지는 것이기에  쓸쓸한 생각이 든다. 그러기에 어린아이들이 주인공인 영화를 보면 왜? 그들이 어른의 아버지 인지 알게 된다.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순수함은 계산하지 않는다. 그냥 주는 것이다. 나의 모든 것을 다 주어서 사랑하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 그것이 자신의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깨달음. 그래서 이런 영화를 보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 아이들이 내 아버지라는 것을 인정하기에 자신의 마음이 새로워지기를 기대한다. 영화가 주는 힘이다.

영화 ‘굿바이 마이 프렌드’ 소개 영상입니다. 

https://youtu.be/b0hjPP4FRHE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이 죽음보다 깊은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