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돈 크라이 마미' 리뷰
‘거룩한 분노가 사라진 사회의 아픔이 이 영화의 전편에 흐르고 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오는 모든 관객은 할 말이 많다. 아직도 이 사회는 지랄하는 것들이 판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쓴 영화 ’ 도가니‘의 리뷰 중 한 구절이다. 문제는 이 지랄하는 것들에 사법부도 포함이 된다는 것이다.
광주 인화학교 성폭력 사태는 6년 동안이나 전 교장과 행정실장인 김 모 씨 등 교직원 13명이 7~22세 학생 30명에게 성폭력을 가한 사건이다. 그런데 가해자는 4명만 기소되었고 대부분이 2년 이하의 징역과 벌금형 및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이 영화를 본 국민들이 분노했고 비난 여론이 거세졌다. 결국 경찰은 사건을 재조사해 행정실장 김 모 씨가 구속됐고 그는 2심에서 4년 감해진 8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요즘 쟁점이 되는 문제 중 하나가 정순신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다가 '자녀 학교폭력 논란'으로 하루 만에 물러난 정순신 변호사 사태다. 문제를 보는 시각은 언제나 똑같다. 검증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몰랐다"라며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고 야당은 기회를 잡았기에 이 문제에 대해 집중포화를 때린다. 유튜브에서 영상 몇 개를 봤는데 가장 공감이 되는 것은 '법 기술자'라는 용어다. 법은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데, 기득권자들이 개인의 욕망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기에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 힘이 있는 사람은 법의 맹점을 이용해 가해자인 아들을 서울대 철학과에 입학을 시켰고 힘이 없는 피해자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했다고 한다.
명백한 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그 죄를 법으로 단죄할 수 없을 때 힘없는 개인은 폭력이라는 수단을 써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고 이것을 본 국민들은 환호하며 그 약자를 옹호한다.
영화 ‘돈 크라이 마미’ 속의 주인공 유선(유림)은 자신의 딸을 성폭행하고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죄인가?를 모르는 부모들에게 “죄를 저질렀으면 벌을 받아야 하는데 상식이고 당연한 거예요.!”라며 성폭행당한 딸이 법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을 보며 거룩한 분노를 표출한다.
‘이 영화는 사실에 근거한 영화입니다.’
이 한 문장으로 감독은 자신의 의도를 분명히 보여준다. 나 자신도 이 내용을 이미 알고 있기에 마치 마카로니웨스턴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주인공의 손을 떠난 총알이 악당들을 통쾌하게 쓰러트리며 복수가 완성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바란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라는 분명한 권선징악이 완성되기에 마카로니웨스턴 영화의 결말은 영화관을 나올 때 통쾌함이 있다. 당연히 그 주인공은 이 시대의 영웅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영화 속의 주인공 유선은 연약한 여자고 남편의 외도로 인해 방금 이혼한 독신녀다. 이제 그녀에게 남아있는 유일한 기쁨은 딸 은아(남보라)뿐이기에 관객들에게 연민의 대상으로 다가온다. 그런데도 그녀는 환하게 웃을 수 있다. 자신을 이해하며 힘이 되는 딸이 옆에 있기 때문이다.
“나도 뭐 하나 물어봐도 돼. 이혼하니까 어때?”
“넌 어떤 데?”
“상관없어, 원래 아빠는 좀 재수 없었잖아?”
마주 보며 웃는 모녀의 모습은 서로에게 가장 소중하고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존재다. 그런데 이 행복도 잠시뿐이다. 첼리스트의 꿈을 가진 고교 1학년 은아는 예쁘고 밝은 아이다. 그녀는 한 살 위의 동급생 조한(동호)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이 아이는 조심해야 할 대상이었다. 한순간의 마음 끌림이 은아의 삶을 비극으로 만들어 놓는다. 동호를 위해 자신의 마음이 표현된 초콜릿을 정성껏 만든 은아는 조한과 만나기로 한다. 그러나 약속 장소에는 조한과 친구들이 함께 나왔고 어이없게도 은아는 그들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한다. 얼굴과 전신에 시퍼런 멍이 들어 병원에 입원한 딸을 바라보며 엄마의 근심은 점점 깊어진다. 은아의 상처는 대인기피증이 심해지며 그녀의 내면으로 들어와 고통으로 자리 잡는다. 그러나 조한과 그의 친구들은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지만, 미성년자라는 신분과 증거 불충분으로 인해 법정 구속을 면한다. 재판이 끝난 후 자유의 몸이 된 이들의 잔인성은 은아가 성폭행당할 때 찍은 동영상을 빌미로 협박을 시작한다. 그 동영상을 받아 없앰으로 자신의 아픔을 치유하고자 했던 은아는 그들로부터 더 심한 상처를 입고 결국은 자살이라는 극단의 선택을 한다. 사회의 정의를 구현해야 할 법은 은아나 그녀에게 아무런 보호막도 되지 못했기에 유선은 절망하며 분노한다. 화면 속에 가득한 그녀의 분노를 보면서 공감한다. 이런 놈들을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보호하는 법에 대해 함께 증오하지만 나약한 여자의 몸으로 어떻게 복수를 한단 말인가?
‘내가 직접 죽일 거야.!’
유선의 이 마음을 충분히 공감하기에 “유선의 복수가 가해자들을 철저히 응징하고 그녀의 삶에 행복과 안식이 찾아와야 해!. 이것은 당위야.” 이런 생각을 하며 그녀와 함께 가해자들을 추적하지만 연약한 그녀가 폭력을 사용해 아이들을 죽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영화는 이때부터 흔들리기 시작한다. 유선은 멕시코산 망토를 멋있게 입고 시가를 씹으며 원수를 찾아 나서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아니기 때문이다. 엄마가 아무리 강하다 할지라도 그녀의 힘으로 복수한다는 것은 무리한 설정이다. 그 때문에 영화는 비현실적으로 흐르고 공감과 멀어진다.
그녀의 마음, 고통, 절망은 영화를 통해 넘치게 전달되지만, 그녀가 칼을 숨기고 그 아이들의 아지트를 찾아가 복수한다는 것은 무리한 설정이다. 그러기에 영화는 이때부터 현실감이 훼손되며 공감도가 떨어진다. 이것이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약점이다. 그것보다는 공권력을 상징하는 형사 유오성의 도움을 통해 권선징악을 주제로 내세웠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뒷북을 치며 유선의 복수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열린 결론이 더 나을 것이란 아쉬움이 있다.
'한공주, 남영동 1985, 26년, 돈 크라이 마미’등은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갈등들을 날카롭게 파헤쳐 문제 제기에는 성공한 것 같은데 문제는 악의 징벌이 시원치 않아 영화관을 나서면서 오히려 목구멍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관객들이 원하는 것은 복수를 끝내고 말없이 자신의 말을 타고 황야로 사라지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뒷모습이 아닐까?
배경영상은
영화 '더티 해리' 중 한 장면입니다.
https://youtu.be/8Xjr2hnOH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