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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일 Mar 07. 2023

이제 부모의 마음이 보인다

영화 '안녕, 헤이즐' 리뷰

북미에서는 영화의 원작인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The Fault in our Stars)를 제목으로 사용했지만 국내에서는 ‘안녕 헤이즐’이라는 제목으로 바꿨기에 논란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나이 든 사람에게는 후자의 제목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안녕’이라는 단어는 사랑하는, 사랑했던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인사말이기 때문이다. 내일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헤어지는 연인들은 이 인사를 통해 자신의 사랑을 확인한다. 그러나 영원할 줄 알았던 사랑이 깨졌을 때 그들은 미련을 가득 담은 목메이는 인사를 통해 사랑의 상처가 얼마나 컸나를 아프게 체험한다. 이보다 더 고통스러운 ‘안녕’은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떠날 때 하는 인사이기에 피눈물이 있고 아픔의 여운은 평생 지속될 수도 있다.



영화의 포스터만 본다면 ‘안녕 헤이즐’ 은 사랑하는 연인들이 나누는 인사일 것처럼 보이지만 영화의 내용은 폐암 투병 중인 17살의 소녀 헤이즐(쉐일린 우들리)과 골육종 암을 앓고 있는 18살의 소년 어거스터스(안셀 엘고트)의 사랑이야기다. 이런 사랑은 대부분 최루탄 영화로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지만 ‘안녕 헤이즐’의 매력은 자신의 현실을 인정하고 묵묵히 받아들이며 서로에게 힘이 되고 있는 두 사람의 짧은 사랑을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 배경 음악은 경쾌하고, 두 사람에게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암스테르담은 정신적 지주의 역할을 감당하기에 2시간이 짧지 않게 지나간다. 더군다나 영화의 대사를 다 기억할 수만 있다면 수많은 어록이 탄생될 정도로 인생을 보는 깊이도 있다. 



경쾌한 배경음악과 함께 시작되는 영화는 헤이즐의 독백을 통해 영화의 주제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슬픈 이야기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는 자신에게 달려있어요. 달콤한 연애소설이나 로맨스 영화처럼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또 어떤 문제가 있다 할지라도 한 번에 해결되는 그런 이야기를 누구나 꿈꾸고, 나도 그런 이야기를 좋아하지만 다만 그것은 현실이 아녜요. 미안하지만 이게 현실이에요.” ‘이게 현실’이라는 헤이즐의 독백과 함께 영화는 그녀가 겪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카페에 앉아 그녀가 좋아하는 소설 ‘거대한 아픔’을 읽고 있는데 경쾌한 웃음소리와 함께 사랑하는 연인들은 입맞춤을 하며 자신들의 사랑을 보란 듯이 표현한다. 그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헤이즐은 사랑보다는 아픔을 오랜 친구로 가지고 있다. 생의 의욕을 잃어버리고 죽기만을 바라고 있는 그녀는 어느 날 엄마의 이끌림을 통해 암환자 모임에 나가고 그곳에서 골수암으로 한쪽 다리를 잃은 18세 소년 어거스터스를 만난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소년을 통해 헤이즐은 삶의 의욕을 회복하는데 사랑의 힘이다.



 ‘둘이 합쳐 폐는 1.5개, 다리는 3개, 호흡기조차 사랑스러운 헤이즐, 걸음걸이조차 매력적인 어거스터스’ 이 카피처럼 두 사람의 만남은 상대에게 먼저 힘이 되고 베려해주는 사랑으로 발전해 간다. 짧기에 더욱 깊었던 두 사람의 사랑은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죽음의 공격에 노출되어 있기에 관객들은 해피엔딩을 간절히 기대하지만 영화는 현실의 힘을 부정하지 않는다. 만약 이 영화가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만으로 전개되었다면 그렇고 그런 영화로 기억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감독이 이 영화 속에서 추구하는 주제는 “죽음이라는 삶의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겨낼 수 있는가?”를 묻고 있다. 이제 10대 아이들의 사랑이야기에 감동할 나이는 지났기에 헤이즐과 어거스터스 부모에게 더 시선이 끌렸다. 누구보다 아이들의 삶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부모의 모습은 언제나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이 영화 속에서도 양쪽의 부모들은 혹시라도 자신의 아이에게 아픔이 될까 봐 극도로 자신들의 슬픔을 억제하는데 익숙하다. 그러나 그 아픔이 표출되었을 때 콧등이 찡해지며 눈물이 핑 도는 감동이 있다.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부모의 마음은 똑같은가 보다. 언제나 먹는 문제로 싸운다. 어거스터스를 만나기 위해 집을 나갈 때 엄마 랭커스타(로라 던)는 저녁 준비에 한창이다. “밥 먹어야지?” “배고프지 않아요”  언성이 높아지며 헤이즐은 “전 죽을 거예요”라며 부모의 마음을 베어 버린다. 그러나 17살의 아이는 이미 죽음에 대한 깊은 통찰을 가지고 있다. 어느 날 불현듯 찾아온 죽음 앞에 자신이 무기력하게 사라질 때 받게 될 부모의 마음을 걱정하고 있기에 한 말이다.   “제가 죽고 나면 엄마는 삶의 의미를 잃어버릴 거예요. 그냥 모든 걸 놓아버릴 거야!.” 딸은 자신의 죽음보다 상실감에 젖어 인생을 포기할 부모를 더욱 걱정한다. 이에 엄마는 이렇게 답한다.  “사람이 고통과 함께 살 수 있다는 걸 네가 더 잘 알고 있잖니? 엄마는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있단다. 그때가 왔을 때 다른 사람들을 도우면서 견뎌내려고 말이다.”



 가슴 찡한 장면이다. 가끔은 언성을 높이고 아이 때문에, 부모 때문에 자신의 삶이 불행하다고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겠지만 가장 깊은 사랑은 가족이기에 가능하다는 것을 알만한 나이가 되었다. 그러기에 헤이즐보다 남겨질 부모의 마음에 대해 더 애틋함이 있다. 영화는 죽음을 다루고 있지만 고통스럽고 어두운 면보다 밝고 아름다운 소중한 가치들을 말한다. 사랑, 가족, 희망, 용기 등을 통해 인생을 긍정적으로 보여준다. 그 상징이 ‘안네 기념관’이다.
‘당신 안에 있는 행복을 되찾아 오세요, 주변에 있는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행복해지세요.’ 안네의 음성이 들려올 때 갑자기 헤이즐은 어거스터스에게 키스한다. 가장 힘들고 어렵던 순간에도 행복을 찾았던 안네를 통해 자신을 보게 된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이 영화를 본다면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지만 대사 하나하나를 기억할 수 있다면 ‘안녕 헤이즐’은 인생의 깊이를 느끼고 찾을 수 있는 영화란 생각을 한다.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로 추천하고 싶은 것도 자신의 나이에 걸맞게 영화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고 그 관점들을 모으면 가족을 향한 사랑이 더 깊어질 것이란 기대감이 있다.  


배경음악은

(안녕, 헤이즐) ost 중에서 You are the Reason-Calum Scott 입니다.


https://youtu.be/6p_Qnw0Htm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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