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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일 Mar 13. 2023

폼생폼사의 삶을 살면 됐다

'매일의 클래식' 중 한 구절을 생각하며


‘바흐만큼 철학적이지 않고 모차르트만큼 천재적이지 않고 베토벤만큼 웅장하진 않지만 난 슈베르트가 소박하고 단순해서 좋다. 살면서 단순해지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그의 음악은 내면은 끊임없는 방황이지만 겉보기엔 단순하다. 힘을 뺀 자연스러운 음악이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조용히 자기 하고 싶은 바를 행동에 옮겼던 슈베르트를 좋아한다. 슈베르트는 좋아하는 일은 하고, 좋아하지 않은 일은 하지 않은 용감한 사람이었다.

프란츠 슈베르트는 딱히 내세울 것 없는 평범한 삶을 살았다. 시골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의 아들로 태어나, 이것저것 자신의 직업을 찾아 고민했지만, 이렇다 할 직업이 없었다. 사람들은 초라한 슈베르트보다 당대의 거장 베토벤만을 기억했다. 한 번도 소속된 궁정이나 귀족 없이 자유롭게 살았던 그는 직장 없이 떠도는 방황하는 청년이었다. 그래서 가난했지만, 덕분에 친구들과 여흥을 즐기며 음악의 정취를 느꼈다. 아무리 생각해도 슈베르트는 그때 태어나길 참 잘했다. 지금 시대는 그런 그에게 다음의 기회를 주지 않았을 테니까.

보통의 작곡가들은 혼자 방에 처박혀 곡을 쓰는데 슈베르트는 곁에 항상 친구들이 함께했다. 그래서 더 인간적일까? 가진 것 없이도 부족해하지 않고, 괴로웠지만 담담히 인생 그리고 음악을 써 내려간 그가 존경스럽다. 잘생기지도 않은 외모에 곱슬머리에 볼록 나온 배까지 하나같이 너무 인간적이다.'

오늘의 기분과 매일의 클래식 : 음악 하나로 위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조현영 저

중에서



                             영화 / 엔트랩먼트의 한 장면 (멋지게 늙은 숀 코넬리의 매력)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불안하기에 제일 쉬운 방법으로 영화를 본다. 일주일에 3~4편 정도의 영화를 보지만 삶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다. “그냥 봤어”가 답이라 할 수 있다. 오늘 같은 날은 방금 영화를 보고도 영화 제목이나 주연 배우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기에 “시간을 낭비한 것이 아닌가?”란 후회를 한다.
나만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나이 들수록 ‘sollen(당위)’으로 다가오지만 가장 큰 장애물은 사고의 빈곤이다. 책을 읽어도, 영화를 봐도 음악을 들어도 가슴이 뛰거나 생각이 번득이지 않는다. 초로의 노인으로 낡아가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도 배우고 싶은 의욕은 점점 더 강해진다. 어떤 필요에 의한 공부보다 자신이 추구하는 삶을 좀 더 멋지게 포장하기 위한 배움은 내 인생에서 꽤 중요한 의미가 있다.

블로그의 한 친구는 나를 보고 이렇게 말한다.
“오라방의 폼생폼사는 세월이 지나도 여전하네”
국어사전은 그 뜻을 이렇게 정의한다. ‘폼에 살고 폼에 죽는다는 뜻으로, 겉으로 드러나는 멋을 최우선 순위로 두는 태도나 생각을 속되게 이르는 말.’

이 친구가 나를 두고 폼생폼사라고 부르는 것은 비웃거나 경멸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습이 잘 어울린다는 좋은 뜻으로 하는 말이라는 것으로 이해한다. 왜냐하면 “오라방 나이에 그렇게 사는 사람이 없고 자신도 그 모습이 좋다”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소파에 누워 보내는 시간보다는 이해가 안 되고 금방 잊어버린다고 할지라도 자신이 기준이 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폼생폼사의 삶은 꼭 필요한 것이란 생각을 한다.

클래식 음악을 듣고 폼을 잡고 싶은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클래식의 특징은 대중가요나 팝송처럼 쉽게 다가오지 않기에 자신이 다가가 듣고 배워야 하기에 서두에 말한 것처럼 공부의 즐거움이 없으면 누릴 수 없는 제한된 기쁨이다.



31살의 나이로 삶을 마감한 슈베르트에 대해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불행한 삶이다…. 그러나 그 아픔을 이기고 작곡한 998곡이 있기에 우리는 슈베르트의 음악을 들으며 어두운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 특히 슈베르트는 천재들이 가질 수 없는 인간적인 멋이 뛰어났기에 그의 주변에는 항상 친구들이 있었다.
대낮부터 벗들과 모여 맥주 마시는 것을 좋아했던 슈베르트는 기존의 권위 있는 체제를 거부하며 억눌렸던 인간의 감정, 열정이 살아난 낭만주의 시대에 어울리는 음악가였다. 우울증 환자였던 슈베르트는 감정 기복이 심한 기분파였다. 돈이 있으면 친구들과 함께 모여 맥주를 마시며 삶을 찬양했고 돈이 없어도 크게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런 자유로운 삶은 그에게 매독을 가져왔고 면역력이 저하되었기에 장티푸스로 사망했다는 것이 정설로 알려져 있다.

슈베르트를 들었다. 음악 외에는 관심이 없었던 그에게 유일한 기쁨은 친구들과 모여 환담하며 인생을 찬양하는 것이다. 모두 그의 짧은 인생을 보며 불행하다고 말하지만, 그에게 있어 인생의 기쁨은 시간의 길이에 있지 않았다. 자신이 원하고 바라는 삶을 살았기에 그는 31살의 나이로도 충분했다.

“그럼 나는?”
이런 어리석은 질문 하지 말자. 누가 인정하든 않든 폼생폼사의 삶을 목표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https://youtu.be/Cw23vYfkOZ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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