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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일 Mar 08. 2023

음주일기 쓸 거야

나 맥주 덕후?


노래에도 유행이 있는 것처럼 언어도 많은 사람에게 인기 있는 단어가 있다. 루틴((routine) 이 그중의 하나라 할 수 있는데 뜻은 평정심을 유지하고 최상의 역량을 발휘하기 위해 습관적으로 하는 일련의 행동이나 절차라 할 수 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독서를 하거나 오후 1시에는 커피를 마시며 경쾌한 음악을 듣는다면 자신만의 루틴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좋은 루틴만이 아니라 건강을 해치고 돈을 낭비하는 나쁜 루틴도 있다. 자신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습관화된 음주다. 일주일에 3일 정도는 집에서 혼자 조용한 시간을 보낸다. 이때 가장 먼저 다가오는 것은 음주의 유혹이다.



김신지 작가는 그의 책 ‘기록하기로 했습니다’에서 음주의 위대함을 이렇게 표현한다. ‘맥주일기’가 떠올랐습니다. ‘맥주 덕후인 저는 “돈을 벌었으니 맛있는 맥주를 마셔 본다”에서 “맛있는 맥주를 마시기 위해 돈을 번다”의 경지(?)에 이르렀는데요’

명문장 아닌가?
자신이 애주가임을 밝히고 당당하게 맥주를 마시기 위해 돈을 번다는 것. 나는 이런 명문장의 유혹에 약하기에 이런 글을 읽을 때면 언제나 맥주 한잔이 옆에 있어야 한다. 책맥, 영맥, 음맥 등 맥주는 영화나 책, 음악 등 모든 문화생활에 가장 잘 어울린다. 그러기에 혼자 집에 있는 날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으며 혼맥을 즐긴다. 한 2주일 전 나를 극진히 인정해 주는 G마켓에서 막걸리를 슈퍼딜 한다는 광고를 봤는데 그것도 세일을 한다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술은 구할 수가 없는데 유일하게 막걸리는 구매할 수 있다)

막걸리는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그놈의 세일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다. 아내의 잔소리가 무서워 냉장고 안쪽에 깊이 숨겨 두었다가 드디어 혼자 있는 날 배상면 막걸리를 개봉했는데 문제는 유통기한이 너무 짧다는 것이다. (버리기 아까워 꾸역꾸역 먹고 있는데 아직도 한 병이 냉장고에 남아있다)

그저께 혼자 있는 날. 막걸리를 마셔야겠다는 생각에 가족들과 맥주 마시다 치킨 한 마리 남겨 둔 것이 생각나 냉장고를 아무리 뒤졌는데 보이지 않는다. 할 수 없이 아내에게 톡을 보냈다.

“치킨 남은 것 안 보이네?”
“어제 아들이 먹었는데….”

이럴 수가 낙심하고 있는데 다시 '톡' 소리가 난다.
“냉장고에 녹두 빈대떡 재료 만들어놓았으니까 프라이팬에 붙여서 먹어”



우와!
막걸리에는 빈대떡이 아닌가?

얼른 냉장고를 뒤져 프라이팬과 식용유를 찾아 녹두 빈대떡을 부치기 시작했다.
내가 뭐든지 안 해서 그렇지 맘만 먹으면 잘한다. ㅎㅎ 요즘은 인류의 스승이신 구글링이나 네 버링 하면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세상이라 검색만 하면 빈대떡 부치는 방법도 줄줄이 나온다.
“강한 불이 아니라 중간 불을 사용하세요”

광장시장에서 녹두 빈대떡 부치는 것을 본 기억이 있는데 완전히 식용유에 잠수할 정도로 많은 기름을 사용한다. 나도 식용유 아끼지 말고 기름 많이 넣어야지^^

프라이팬에서 빈대떡이 노릇노릇 익어가는 모습을 보는데 기분 좋은 냄새가 후각을 자극한다. 한 입 먹었더니 완전한 성공이다. 빈대떡 2장을 완성한 후 냉장고에서 막걸리를 꺼내 테이블에 놓았다. 잔이 없어 에스프레소 잔에 막걸리를 따랐는데 한입에 먹기에 딱이다. 재즈로 배경음악을 깔고 찬찬히 막걸리 한 병을 비우는데 세상에서 나만 행복하다는 착각을 만들어 준다.



다시 김신지 작가의 글을 인용하면
“다시 한번 맥주일기에 의지를 다져봅니다. 날짜와 날씨, 마신 맥주, 만난 사람, 만난 장소, 기억하고 싶은 대화나 생각 같은 것을 기록해 두는 것이죠. 제 인생에는 오로지 맥주만이 가능하게 한 인연과 추억들이 있으니 그것이 하나의 기록이 된다면 더없이 귀할 거예요”

나도 맥주일기를 써야 하는데 문제는 만난 사람도 없고 대화도 없고 혼술만 있으니 어떡하지?

그래도 술은 혼술이지!! 나 이제 맥주일기 쓰는 것을 루틴으로 만들고 맥주 전도사가 되어 만방에 맥주를 전파하리라. ㅎㅎ


https://youtu.be/AMPWpCcLHu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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