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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일 Feb 20. 2023

나는 자유다

소소한 행복으로 보낸 하루


”오늘 아들이 점심 산 대 “

퇴근 후 간단히 샤워하고 아들 차에 올랐습니다. 기아 스포티지를 사들인 지 1년 4개월 정도 지났는데 오늘 점심 먹으러 가면 1만 KM를 탄다는군요. 처음에는 조수석에 앉는 것이 불안했는데 이제는 믿고 몸을 맡길 정도로 편안해졌습니다. 가는 곳은 양촌에 있는 오리 주물럭 고깃집인데 이건 음식점이 아니라 광화문 광장처럼 넓었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 넓은 공간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는군요.

”대단하다 “



아들이 주물럭 3인분을 가져와 굽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시끄러운 음식점인데 이건 축구경기장의 함성 수준을 넘어설 열기와 들뜬 대화로 음식점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개의치 않고 먹고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군요. 다행인 것은 음식은 가격도 싸고 맛도 있었습니다.
두 번 다시 오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친구들과 모임을 한다면 괜찮을 것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나이의 친구들을 만나면 별 대화가 없기에 가라앉는 경우가 많은데 많은 사람이 모여 달뜬 분위기 속에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점심을 먹은 후 아들이
"아빠 김포에 새로 생긴 핫플레이스가 있는데 수산 공원이라고 인기가 많은 곳인데 한번 가보죠 “
자신도 며칠 전 유튜브에서 이 지명을 본 기억이 있기에 ”아빠도 유튜브에서 봤어"



한 20분 정도 더 시골로 들어갔더니 언덕 위에 수산공원이라고 쓴 건물이 보입니다. 언덕을 올라 주차장에 들어서니 이곳을 왜 카페라 부르지 않고 공원이라 하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군요. 우선은 주차장이 축구장 크기 정도로 넓은데 공간에 빽빽하게 차들이 주차되어 있습니다. 더 놀라운 일은 실내의 수많은 좌석이 꽉 차 있어 앉을자리가 없군요.
”김포 대단하다. 아니 대한민국 굉장하다"

뉴스에서는 전기세, 가스비 인상으로 인해 살림살이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는데 아닌 것 같군요. 하기야 우리 집도 이곳에 올 정도면 대한민국의 소비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커피 한잔에 8천 원이고 빵 하나에 만원 정도인 것을 생각하면 절대 싸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정도쯤이야 “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이곳에서 “나 행복해 “를 외치고 있습니다. 커피 한 잔은 조용한 장소에서 좋아하는 사람과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면서 입술로 음미하는 커피 맛이 진짜인데 이곳은 카페가 아니라 거의 시장에 가깝군요. 이것을 보면 나이 든 사람이 가야 할 곳이 따로 있어요. 사람이 나이에 따라 모이는 장소가 달라지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수산공원도 인상적인 장소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아내가 우리 저녁은 해산물을 먹자며 대명항에 가보자고 합니다. 다시 차를 타고 항구에 도착했는데 이곳도 사람이 붐비는 곳이라 주차 공간이 없군요. 아들은 고생하다가 한자리 발견하고 주차를 했습니다. 수산시장을 돌아보았는데 현대화되었기에 자그마한 노량진시장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개성이 없는 곳입니다.
”여기 수산물이 무척 비싸네 “ 라며 아내가 말합니다.
"그래도 왔으니까 멍게, 피조개, 왕새우 살게. 저녁에 먹자”



홈 스위트 홈이란 말을 이제 실감합니다.
자그마한 빌라지만 집에 들어오면 마음이 포근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군요. 불필요한 사람들로 인해 상처를 입거나 마음 상하는 일이 없기에 집은 가장 큰마음의 안식을 선물하는 곳입니다.

아내는 멍게를 손질하고 피조개와 왕새우는 삶아 식탁 위에 놓았습니다. 거기에 맥주. 이 시간이 좋은 이유는 대화를 하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이야기의 주제는 두 가지입니다.

우선은 자식의 행복
두 번째는 부부의 행복입니다.

딸아이는 출가를 했기에 배 씨 사람이 되었고, 아들이 남았는데 두 달 전부터 새로운 여자 친구를 만나고 있다는군요. 저한테는 아무런 이야기가 없기에 아내를 통해 소식을 듣습니다. 조금 걱정이 되는 것은 여자 친구가 아들보다 훨씬 좋은 요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연봉도 두 배 정도로 많고, 2호선 타고 다니는 대학을 나왔고 ㅠ

혹시 깨져서 “아들이 상처 입는 것은 아닐까”라는 걱정을 했습니다. 아내는 “잘 될 거야” 라며 긍정적인 생각을 합니다. “그래,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도 없는데 지켜봐야지”



저는 매사에 부정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데 아내는 만사에 긍정적입니다. 맥주 한 잔을 마시며 노후에 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노후는 경제적 준비가 제일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 조그마한 빌라도 앞으로 25년을 갚아야 하는데 전 걱정이 있습니다. 제가 착해진 것 가운데 하나가 아내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나야 죽으면 속 편하지만 “아내는 남은 집값을 어떻게 갚을까?” 란 걱정.

“아내는 무슨 걱정을 해, 나중에 안되면 난 이 집 세주고, 예인이네 집에 들어가 아이 키우며 살면 되니까 걱정하지 마. 난 지금이 제일 행복해”

제 인생의 30년 정도는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상대방의 아픔, 고통, 상처를 나름 씻겨주고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굴레에서 벗어났습니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 한 주일날의 음주와 외식을 죄의식 없이 자유롭게 누리고 있습니다. 나아가 자신만의 행복을 위해 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도 가위에 눌리고, 에덴에서 추방당한 아담의 모습처럼 두려움과 불안이 엄습하지만, 자신이 누리는 자유를 빼앗기고 싶지는 않습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을 기억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배경음악은
AKMU (악동뮤지션) - ‘FREEDOM’입니다.

https://youtu.be/O1Th42pA17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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