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삶은 반짝이는 것

영화 '샤인' 리뷰

by 이세일

아직도 클래식 음악은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지만 한결같은 구애는 계속되고 있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도 그중의 하나다. 2번이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져 있지만 영화 ‘샤인’을 본 후 3번의 매력에 빠지고 말았다. 연주의 난해함 때문에 피아니스트들에게 공포의 대상인 이 곡은 그의 절친이었던 피아니스트 요제프 호프만(Josef Hofmann)에게 헌정했지만 그는 손이 작아 이 작품을 공개석상에서 한 번도 연주하지 못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영화 ‘샤인’에서도 주인공인 데이빗 헬프갓(제프리 존스)이 이곡을 연주한 후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받은 후 실신하는 것을 보면 악마의 교향곡이란 표현이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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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출신 피아니스트로 촉망받던 데이빗 헬프갓(David Helfgott)의 실화를 화면에 담은 이 영화의 감동은 지나친 아버지의 기대와 집착으로 인해 정신분열증을 앓다가 재기에 성공하는 천재 피아니스트의 일대기에 있다. 감당할 수 없는 인생의 고통과 싸워 승리한 사람을 모델로 한 영화는 수없이 많다. ‘말아톤, 국가대표, 뷰티플 마인드, 쉰들러 리스트’ 등이 쉽게 떠오르는데 영화 ‘샤인’ 은 ‘아버지, 데이빗 헬프갓,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제3번, 등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키워드다. 천둥이 치며 많은 비가 내리는 배경화면 속에 데이빗 헬프갓의 독백이 들려온다. 목소리는 차분하지만 그의 말은 논리가 없기에 무슨 뜻인지 알아들기가 어렵다. 영업을 끝 낸 조그마한 레스토랑으로 뛰어든 데이빗은 주인과 종업원에게 쉴 새 없이 많은 말들을 지껄여대는데 중년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버지를 아빠라 호칭한다. 데이빗에게 절대적인 권력으로 군림했던 아버지의 영향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는 인상을 받는다. 장면이 바뀌며 동네의 조그만 피아노 경연대회에 참여한 데이빗이 보인다. 7-8살 정도의 나이로 보이는 아이가 피아노 앞으로 걸어가며 “꼭 우승할 거야” 라며 자기 암시를 주는데 왠지 안쓰러워 보인다. 긴장해서 자신이 연주해야 할 곡목도 잊어버린 아이가 놀랍게도 쇼팽의 폴로네이즈를 연주한다. 사회자가 감탄을 하며 아들을 칭찬하자 아버지 피터는 “제 아들입니다” 라며 자랑스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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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는 모든 부모의 욕심은 똑같다. 자식이 잘 되는 것, 이 한 가지 목적을 이루기 위해 기러기 아빠가 되기도 하고, 온갖 굴욕과 멸시를 당하면서도 악착같이 돈을 벌어 아이에게 투자한다. 이 욕망 때문에 피터는 자신의 권위와 고집을 가지고 데이빗에게 군림한다. 예전에 이 영화를 봤을 때는 좌절을 이겨내고 피아니스트로 성공한 데이빗만 보였다. 그는 충분히 사람들을 감동시킬 이야기를 가지고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보며 성공을 꿈꾼다. 그러나 이번에는 데이빗이 아니라 아버지가 보인다. 비록 그의 교육관이 스파르타 군사를 만들어 내는 것처럼 절대복종을 요구했지만 아이를 사랑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고집을 꺾고 로젠 선생에게 데이빗의 교육을 부탁하는 피터에게 한 가지 조건은 라흐마니노프를 연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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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州) 음악경연대회에서 우승한 데이빗은 그 당시 바이올린의 대가 아이작 스턴으로부터 장학생으로 미국 유학의 기회를 얻게 되지만 아버지는 아들이 타락한 미국문화에 오염될 것을 걱정해 유학을 반대한다. 담배를 피우고 사랑에 눈을 뜰 정도로 성장한 데이빗에게 또 한 번의 기회가 찾아온다. 런던의 왕립 음악 대학에서 데이빗을 장학생으로 초청한 것이다. 이번에도 반대하는 아버지에게 대항하는 데이빗에게 아버지의 구타가 이어진다.

“네가 집을 나가면 평생 벌을 받을 것이다”

라며 아들을 끌어안고 저주에 가까운 말을 하는 아버지. 이것도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이다.

“왜 아버지는 아들의 성공을 바라면서도 놓아주지 못할까?”라는 의구심이 들지만 아버지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는 가족이다. 비록 가난하지만 온 가족이 웃으며 함께 사는 것을 꿈꾼 것은 아버지의 혜안인지도 모른다. 왕립학교에 유학한 데이빗은 가르치는 실력이 뛰어난 세실 팍스 교수의 지도를 받는다. 그는 데이빗에게서 눈부신 재능과 천재의 광기를 발견한다. 그러나 데이빗은 아버지가 우려한 대로 담배와 술, 여자 등을 통한 쾌락의 세계로 나아간다. 로얄 앨버트 홀에서 연주하는 것이 꿈인 그는 메이저 콘서트에서 라흐마니노프 3번을 완벽하게 연주해 갈채를 받고 자신의 꿈에 한걸음 더 나아간다. 그러나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성공에 대한 압박감을 견디지 못한 데이빗은 극심한 신경쇠약을 견디지 못하고 호주의 정신병원에서 10년의 세월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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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적인 자질로 촉망받는 피아니스트였던 데이빗. 그가 이제는 조그만 레스토랑에서 생계를 위해 피아노를 치고 있다는 것을 신문으로 보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서서히 클로즈업된다. 아버지가 아들을 찾아왔다. 담담히 그러나 깊은 애정으로 아들을 끌어안는 아버지

“애비만큼 널 사랑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절대로......”
한마디 더 “여기 있는 것도 네게 기회란 것을 명심해라”.

표현은 하지 않지만 온전치 않은 아들을 보며 아버지의 가슴은 무너졌을 것이다.

“데이빗을 이렇게 만든 것도 자신의 책임이란 생각에 당하는 고통은 얼마나 클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드는 것은 자신도 이제는 볼 수 없는 아버지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한참 감수성이 예민하던 10대 시절 아버지는 왜 그리 타도의 대상으로만 보였을까?

실패한 가장의 무능한 모습만 보였기에 용납할 수 없었던 아버지. 그러나 자신이 아버지의 나이가 되니까 이제 아버지의 사랑을 알 수 있다. 누구보다 아들을 사랑하셨던 아버지를 뒤늦게 알았기에 화해의 손길을 내밀지만 기껏해야 일 년에 한 번 정도 조화를 사들고 성묘를 가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기에 하늘이 푸르른 날은 아버지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아버지가 좋아하셨던 소주 한잔 따라 드리고 싶은 것은 아버지 사랑에 대한 작은 보답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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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이 첫 부활 콘서트를 마치자 기립해서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내는 청중들 반가운 얼굴들이 다 보이지만 아버지는 보이지 않는다. 오열하는 데이빗. 아내와 함께 아버지의 묘소를 찾은 그는 “다 내 잘못일 거야”라고 말한다. 가장 완전한 화해는 언제나 무덤 위에서 이루어지기에 우리는 인생을 슬프다고 말한다. 영화도 나이에 따라 감상하는 포인트가 다르다. 어떤 영화를 봐도 항상 ‘죽음, 가족, 화해, 사랑’이 먼저 보인다. 인생의 겨울과 자연의 겨울이 겹쳐 왔기에 겨울은 더욱 차갑게 다가올 수 있다. 조금은 가라앉은 마음으로 겨울을 지나는 것, 어쩔 수 없는 나이 듦이다. 그러나 영화 ‘샤인’은 인생의 겨울을 그렇게 시니컬하게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인생은 멈춰있지 않다는 거야.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우리는 살아야 해. 우리는 포기하면 안 돼”

포기하지 않고 사는 것. 그것이 인생이라는 깨달음 이 영화가 주는 묵직한 교훈이다.

배경음악은 영화 '샤인' ost 중에서 라흐마니노프 3번입니다.

https://youtu.be/Th157m9Vm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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