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정신과 감정을 만진다면 명작이다

영화 '마지막 사랑' 리뷰

by 이세일

영화의 첫 장면은 감독의 의도가 숨겨 있기에 언제나 긴장한다. 예전처럼 오락 기능으로 영화를 봤을 때의 평가 기준은 재미였다. 그러나 이제 영화는 어렸을 때 소풍 가서 열심히 찾던 보물 찾기와 같다. 비록 상품은 노트 한 권 밖에 안된다 할지라도 보물을 찾은 친구의 의기양양한 모습을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른다. 첫 장면을 통해 드러난 대사, 배경, 음악 등을 통해 감독의 의도를 찾는다면 영화는 단순한 오락 기능을 벗어나 인생의 본질을 찾는 자기 성찰의 기능을 갖게 된다. 그러기에 하정완은 그의 책 ‘하나님은 노래이시다’에서 ‘대부분의 노래는 감각적이고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것으로 채워졌습니다. 우리의 정신과 감정을 만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육체를 자극하고 시각을 동요케 하는 노래 아닌 노래가 된 것입니다.’라며 이 시대의 문화를 비판한다. 매일 접하는 문화가 꼭 고상하고 아름다울 필요는 없지만 나에게 영화는 시(詩)고 그리움이고 아름다움이면 좋겠다. 건조하고 메마른 감성을 만져 주기에 영화 속에 나타난 한 장면 때문에 가슴이 찡하고 삶에 대한 자극으로 다가온다면 “넌 감동이야”라는 짧은 문장으로 영화를 찬양할 수 있다.

원색적이고 감각적인 영상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탐색하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는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다. 눈으로만 본다면 아름다운 여배우의 나신에 마음을 빼앗길 수 있지만 육체 속에 숨겨진 감독의 의도가 쉽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 ‘몽상가들’에서 에버 그린은 육체의 절정에 있었던 아름다운 나신을 가감 없이 보여주었고 이 영화의 여주인공인 데보라 윙거는 중년으로 접어든 여인의 권태와 참다운 사랑을 역시 노출을 통해 관객을 유혹한다. 젊은 시절 그의 영화는 작품성보다 육체적인 아름다움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이제는 그 장면을 통해 감독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기에 주인공의 내적인 심리를 주목하고 그의 삶을 받아들일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한다. 영화 ‘마지막 사랑’의 첫 장면은 물질문명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1940년대 뉴욕의 모습을 천천히 카메라 앵글을 돌리며 다양한 모습을 흑백으로 보여준다. 특히 여러 가지 직업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고 있는 소시민들의 모습과 함께 환하게 빛을 밝히고 있는 마천루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뉴욕은 물질문명과 환락으로 서서히 물들어 가고 있었다.



장면이 바뀌며 남편인 작곡가 포트(존 말코비치)와 매력적인 아내 키트(데보라 윙거), 그리고 포트의 친구인 사업가 터너는 아프리카 사막 여행을 위해 모로코의 탕헤르에 도착한다. 결혼한 지 10여 년이 된 두 사람은 권태로움에 빠져있다. 살아가기에 부족하지 않은 부와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던 이들이 뉴욕을 떠나 온 이유도 권태로운 삶에서 해방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물질문명을 등지고 살고 있는 아프리카 북부의 베르베르족은 전통적인 삶을 고수하고 있고 이들이 세운 도시 카스바는 이국적인 정취로 인해 충분히 여행자의 가슴을 뛰게 한다.
후반부로 갈수록 영화는 황금빛으로 물든 사하라 사막의 아름다움과 하늘색 하늘 위로 떠 있는 흰구름, 주황색으로 물든 저녁노을, 낙타를 타고 사막을 건너는 원주민들의 모습을 원경으로 잡는다. 사막의 아름다움을 눈으로 보지 못한 관객들의 입에서 탄성이 나올 수밖에 없는 광경들이다. 특히 보름달이 떠있는 사막의 밤을 실루엣으로 표현한 영상은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매력이다. 그러나 영화의 스토리는 막장이다. 포트는 창녀와 하룻밤을 보내고 키트는 술기운 때문에 터너와 잠자리를 같이 한다. 겉으로 드러난 이들을 우리의 도덕관념으로 이해할 수 없지만 영화는 남편 포트가 장티푸스에 걸려 죽을 때 비로소 두 사람이 얼마나 사랑했는가를 깨닫게 한다. 신파조와 같은 대사는 너무 익숙하기에 감동은 반감되지만 두 사람의 절실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돌아오려고 했는데... 이제야 왔어, 당신을 위해 살았는데..... 이제야 알겠어......."
" 포트 가지 말아요. 나 여기 있어요. 날 두고 가지 말아요. 나랑 같이 있어 주세요."

뒤늦은 회한의 감정, 그래서 있을 때 잘하라고 했는데......ㅎㅎ

그러나 이것이 영화의 핵심은 아니다. 영화의 첫 장면인 카페에서 포트 일행을 바라보고 있는 늙은 할아버지(지혜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가 조용히 혼잣말을 한다. “시간은 무의미하다고 단정했고 그것은 치명적인 실수였다.” 권태는 무의미하게 흘려보낸 시간이 언젠가는 자신을 향해 날카로운 칼을 들이대기에 무서운 결과를 가지고 온다. 원인은 그들이 누리고 있었던 물질적인 자유였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은 영화의 첫 장면에서 물질문명에 병들기 시작하는 뉴욕의 모습을 보여주며 포트와 키트를 대표적인 인물로 묘사한다. 반대로 파리가 음식물에 뒤범벅이 된 음식을 먹고 가난에 찌들어 있는 카스바 사람들을 통해 그들의 밝은 미소를 보여준다. 이 영화를 통해 자신이나 우리 시대의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영화는 나의 정신과 감정을 만져주기에 “넌 감동이야”라고 말할 수 있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가 왜 거장인지 알고 싶다면 이 영화 추천하고 싶은데 감상은 어렵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도 좋다


https://youtu.be/bUNahdWle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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