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낀점.
이 단어를 생각하면 여러 가지 말들이 생각난다. 일단 redeem 단어와 연결되어서 우리나라에도 절찬리에 불고 있는 애플의 앱스토어에 'redeem code'로 친숙할 것이다. 그리고 제일 많이 알려 진 것이, 우리나라에 소개된 'The Shawshank Redemption' (1994)이란 영화가 '쇼생크 탈출'로 소개 되었지만, 저 원어적인 단어로 알려져 있으며, 그 의미에서 redemption의 단어는 '탈출'이라는 'escape' 혹은 'break'란 의미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혹자들은 저 영화의 제목을 그렇게 지은 것이, 앤디 듀프레인(Andy Dufresne)이 쇼생크교도소 안의 억울한 생활에 대한 '보상(compensation)'이라는 의미를 설명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한 앤디의 부인이 정부(情夫)와 바람이 난 것이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이라면서 속죄적(atonement)의미의 고찰로 생각하기도 한다. 뭐 여러 가지의 의미가 있지만, 아무래도 보는 사람의 눈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는 경우가 다분하기에 여기까지로 해 둔다.
Redemption이란 말은 기독교 적으로 '속죄(물)'에 대한 의미로 많이 쓰이고, 또한 연결되어 구원(salvation)이란 의미도 같이 연결된다. 예수 그리스도(Jesus Christ)의 십자가형벌의 이유와 그 모습이 인류의 죄를 위하여 속죄물로 대신하여 이루어져서 인류가 구원의 길로 접어들 수 있게 한 성서적인 의미로 많은 뜻을 담고 있기에, 그래서 설명하기도 어렵지만, 의외로 친숙하게 다가가긴 쉽다.
영화 쇼생크탈출에서 'redemption'이란 의미를 가장 잘 표현한 인물이 바로 노튼(Warden Samuel Norton)소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영화 초반부부터 강력한 기독교적 인물로 표방되어서 나온다. 그러나 바로 그 이면적인 부분에서는 진정한 성서적 가르침 보다는 율법주의적 가치를 나타내는데, 이것이 이 영화 전체를 통틀어 어느 정도의 복선으로 끌어가게 된다. 그는 또한 그의 앞에 해들리(Capt. Byron Hadley)간수장을 통하여 본인 자신이 좀 더 본인자신적인 관점의 성서해석과 그 삶을 위해 해들리를 통해 일명 '손에 피를 묻히는 행위 따위' 모든 것을 처리하기도 한다. 아무래도 이렇게 하면 좀 더 죄책감이 덜 하겠지 라는 의미를 찾아볼 수 있는 대목이기에 노튼이란 인물이 어떠한 유형인가를 보여 주기도 한다. 영화 초반에 자유함이 없는 감옥이란 공간에서 앤디는 겁 없이 해들리에게 접근하여 그의 센스와 능력을 잠시나마 보여주게 된다. 또한 이후 일련의 좋은 결과로 인해 그들의 동료(friends)들에게 일상적인 측면에서 상상할 수 없지만, 감옥에 있는 사람들에겐 느낄 수 없는 자유함과 더 넓게는 희망이란 개념까지(작업현장 옥상에서 맥주를 마시는 것) 선사해 주기도 한다.(그는 또한 중반부에 겁 없이 앰프스피커 시스템을 통하여 ‘피가로의 결혼’이라는 곡을 겁 없이 트는 장면까지 이어짐..) 그리고 그를 만나 상담을 받으면 금전적 이득이 있다는 소문으로 노튼 소장이 자신을 찾아 올 것을 알고 기다린다. 그리고 자신의 방을 찾아온 소장을 대비하여 성경(Holy Bible)을 가지고 있다가, 노튼 소장의 방문에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성경구절로 마가복음 13장 35절 말씀인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일는지, 밤중일는지, 닭 울 때일는지, 새벽일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라는 말을 던진다. 이 성경구절은 집주인으로 해석되는 하나님의 의미를 교도소의 장(長)인 노튼 소장으로 치환시켜서 언급하는 장면인데, 더 가관인 것은 노튼 소장은 앤디에게 요한복음 8장 12절 말씀인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라고 언급하며 자신이 이 교도소에선 하나님이며, 나의 줄을 서면 너에게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 언급하는 의미심장한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웃기게도 이러한 기회를 통하여, 앤디는 이전부터 계속적으로 일어났던 폭력에서 시달리는 것에 대한 해방을 맞게 되고, 또한 일이 쉬운 곳으로 배치 받게 된다. 마치 예전에 개그맨 전유성이 출간한 책 내용인, '조금만 비겁하면 인생이 편해진다!'는 논리와 살짝 부합하기도 하지만, 여하튼 앤디는 그 곳에서 적절히 충실하게 보낸다.
노튼 소장은 승승장구하게 된다. 그의 수완은 생각 외로 좋았다. 외부적으로 좋게 보는 사회사업이라고 일컫는 사업들을 통하여 두둑한 검은 뒷돈을 챙기게 되었고, 또한 합법적으로 앤디를 통하여 돈세탁을 하게 된다. 은행 간부였던 앤디의 실력으로 ‘헛개비’를 만들어 그 사람의 통장을 통하여 두둑이 배를 불려주는 일이었는데, 이 일을 통하여 노튼은 부자가 된다. 영화가 계속적으로 진행될수록, 앞에 세운 해들리의 역할은 어느 정도 물리적인 역할로만 축소된다. 이제는 노튼 소장 본인이 직접적으로 앤디에게 부정한 것을 시키며, 영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노튼 소장에서 상스러운 말이 나오고 그러한 일을 하는 장면이 계속적으로 노출된다. 가장 선명하게 나오는 장면이 토미(Tommy)의 등장으로 앤디의 억울함이 없어질 기회가 찾아오지만, 노튼 소장의 자신의 부정함이 밝혀질 두려운 마음으로 인하여 해들리와 함께 토미를 탈옥이라는 명분하에 억울하게 누명을 씌워 공모살해까지 하게 된다. 그리고 앤디는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독방에 오랫동안 있으면서 앤디만의 redemption을 얻게 한다. 그는 레드(Red, 모건 프리먼 분) 앞에서 자신이 이러한 벌을 받는 것은 자신이 아내에게 잘 해주지 못하여서 일어난 일이고 죄라고 자책하는 장면을 통하여 영화 전체적으로 그리고 제목에 맞게, 앤디에게의 개인적인 redemption이 일어난 장면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도 그는 그 내·외부를 이어주는 redemption을 하진 않았기에, 그 것을 이루려 마침내 '거사'를 감행하기까지 간다. 탈출, 그리고 오폐수관을 통한 고통의 시간을 통과하여 그가 영화 초반의 잠시나마 친구들에게 선사한 전체적인 자유함을 얻게 된다. 그리고 그는 새로운 신분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돈세탁한 자금을 회수하고, 또한 쇼생크의 진실을 폭로하기까지 하며, 그의 막연하지만 구체적인 희망(hope)를 실행하기 위하여 멕시코로 간다.
앤디 자신의 장기간 독방 안에서의 깨달음, 아니 그의 긴 복역기간 동안의 깨달음을 노튼 소장에게 전달한다. 그의 락해머를 보관한 성경(특히 Exodus, 출애굽기, exo-라는 의미는 탈출이라는 어원)을 요엘 3장 14절, '심판의 날이 곧 오리라' 라고 십자수 되어있는 액자 뒤 금고 속에 넣어둔다. 그리고 소장은 앤디가 성경 앞장에 남긴 '소장, 당신의 말대로 이 속(성경)에 구원이 있소' 라는 글이 쓰여 있는 것을 보고 출애굽기가 마크 되어 있는 페이지와 함께 락해머를 숨기기 위해 파 둔 성경임을 보며 그 모든 것이 앤디에 의하여 이루어 진 것임을 예감 한 후 그것을 발견 그리고 자살을 하게 된다.
그 ‘심판의 날이 곧 오리라’ 라는 말씀이 새겨진 십자수는 십자수판에 새겨진 십자가를 상징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정말 그 액자의 말처럼 수사관들이 들어 닥치며 심판의 날이 오게 되었고, 그는 자기 자신에게는 그 십자수 위에 놓인 심판을 거부하며 자살로써 자신 구원의 길을 포기하고, 죄수들과 간수들의 redemption을 주게 된다. 해들리도 마찬가지이다. 끝내 노튼은 해들리 그 자신에게 어떻게 보면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하나님은 아니었다. 그도 마찬가지로 철저하게 교도소 안의 세컨드에서 노튼과 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위의 언급된 대로, 노튼은 자신도 잘 알다시피 하나님이 아니었다. 그는 아무래도 자신이 천하게 생각하고 개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존재인 줄무늬 죄수복과 그 모든 것이 넘버링 된 그러한 취급을 당하는 것이 싫어서 권총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일반적으로 해석되어서 나온다. 그러나 앤디는 알았다. 오히려 성경이란 명분하에 개인적인 부정한 사익이 개입된 명분적 율법을 강조하는 노튼과 그 율법에는 구원(redemption)과 갱생(rehabilitation)이 없었다라고 반증해준다. 오히려 그 율법에 의하여 자기 자신이 속박당하여 율법에 의하여 정죄될 수밖에 없는 본인자신을 죽기직전에 발견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결론적으로는 율법에는 구원이 없었다는 것을 알려준 것.
결론적으로는 쇼생크탈출이라는 영화는 그 영화 주인공들의 개인적인 redemption을 이야기 해 준다. 그리고 서로 그 redemption을 깨우쳐 주기도 하며 그 길의 안내도를 부여하기도 하기에 escape나 break란 의미를 사용하는 것 보다 의미가 있는 것 같다.
p.s. 좋은영화.
2014-06-02
2017-01-03 Revi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