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hority. authoritarianism.
권위라는 것을 생각해 보았다. 한 참 우리나라가 권위주의를 타파하자는 말이 구호일 때가 있었다. 그래서 권위와 권위주의에 대하여 잠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 두 말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권위의 어원을 보면, author라는 말과 연계되어 있다. 저자, 만든 사람이라는 의미가 있다. 무엇을(아마도 가치 있는 것들을) 만드는 사람이 권위가 있다는 말이 연관되네 라고 생각할 수 있다. 생산하고, 자신이 가진 그 힘을 이용하여 가치 있는 그 무엇을 늘리는 것, 만들어 내는 것이 권위라고 볼 수 있다.
진정한 권위란 생산적인 방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쉬운 예로 가을의 뜻인 autumn도 au-가 가지는 뜻이 겨울을 앞두고 춥고 메마른 척박한 환경을 앞두고 이 땅의 생명체들 생존을 위한 수확, 거둠, 얻음이란 뜻이 있기에, 권위라는 말은 그에 따라오는 결과물이 괜찮은 것을 볼 수 있다.
권위라는 부분에서 비유를 해보면 ‘빈 수레는 요란하면 안 된다.’ 수레는 물건을 옮기는 것이지 소리를 내는 도구는 아니다. 이것과 연관되어서 권위라는 것, 그 본질 안에는 권위의 사용 목적 그리고 방향성이 있으며 그에 부수적으로 딸려 오는 모든 결과론적인 것은 ‘나’로부터 시작된다. 진정한 권위, 값어치 있는 권위는 내가 진심으로 노력하고, 그런 진심에 의하여 다수의 행복을 위하여 그리고 하나의 억울한 사람이 없이 진정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며, 공동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선한 힘이다.
진정으로 권위가 필요한 순간, 그리고 장소가 있다. 그러나 이에 앞서 권위를 사용하기 전에 권위의 사용자 관점에서 해당 되는 모든 사람은 먼저 내가 권위라는 것을 사용해야 할 필요가 있고, 자격이 있는가? 에 대하여 생각해 보아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빈 수레가 요란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행동이 없고 말은 많은 사람, 선행보다는 자신을 포장하는 말이 앞서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회에서의 왜곡된 권위주의에 잘 빠지고 또한 왜곡된 권위주의를 만들며 또한 전파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대체로 감투와 직책에 연연하여서 타인을 누르기 위하여 감투와 직책에 따라 달려 나오는 ‘권위주의’만을 앞세우는 사람이다.
그러면 그 권위에 대하여 사뿐히 내 의지를 다 하여 순종할 필요는 없다. 그들이 보여 주는 것들과 얻고 싶어 하는 것은 권위의 본질 된 것이 아니고 부수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권위는 주(主)된 것이다. 중요한 것이며 본질적인 것이다. 그것은 행동이며 책임이고 신성한 것이기에 조심해야 한다. 그러기에 칼로 비유하기도 한다. 칼, 살리는 칼(活刀)이 될 수 있고, 죽이는 칼(殺刀)이 될 수 있다. 권위라는 것은 조직을 하나로 묶어 하나라는 공동체를 선하고 강하게 만드는 힘이고, 사회의 발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한 원동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