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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Dec 31. 2023

엄마에 대한 짧은 기억

독립을 한 후 한달에 한 번 본가에 잠시 머물다 다시 원룸 자취방으로 돌아가는 길은 엄마와 단 둘이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아빠는 내가 엄마와 둘이 이야기하는 것도 못마땅해했기 때문에 집에서는 도저히 엄마와 시간을 보낼 수 없었다. 둘이 이야기 좀 하려하면, 기어이 와서 훼방을 놓곤 했다.


엄마는 늘 내가 돌아갈 시간이면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는 지하철역까지 배웅해주었다.

10분 남짓한 그 길은 한겨울에도 참 포근했다.

내가 집에 없는 시간 속에서 엄마가 느꼈던 수많은 걱정, 그리움 같은 감정들을 짧은 시간 동안 아껴가며 이야기를 나눴다.

때론 골목길이 떠나가라 웃기도 했고, 가끔은 눈물이 맺히는 걸 서로 모른척하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 나중에 엄마 죽으면, 이 시간밖에 기억날 게 없겠어.


아빠 눈치에 둘이 여행 한 번 가본 적이 없었던 우리는

씁쓸하게 웃으며 언젠가 여행을 가자고 기약 없는 약속을 하기도 했다.

결혼 전에 어떡하든 시간을 냈어야 했는데,

아빠한테 거짓말을 해서라도 둘이 1박2일이라도 다녀왔어야 했는데 나는 무심했고, 엄마는 아빠에게 미안한 마음때문에 둘 다 시도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정말로 엄마가 내 곁을 떠나면 이를 두고두고 후회하겠지만 여전히 이 약속은 지키지 못하고 있다.


그러고보니 어린 시절에도 비슷한 기억이 있다.

우리집은 언덕에서도 가장 끝에 있는 집이었는데,

돈을 아낀다고 기름 보일러에 넣을 기름을 직접 주유소에 가서 받아오곤 했다.

한겨울, 언덕길은 초등학생이 맨몸으로 걷기에도 버겁고 몹시 추운 길이었지만 나는 엄마를 따라 매일 같이 그 길을 따라 나섰다.

대부분의 시간을 할머니 손에 자란 나는 엄마와 단 둘이 주유소에 가는 그 시간이 마냥 좋았다.

기름을 채운 주유통 두개를 끌게에 얹고 끈으로 둘둘 감아 달달 끌고 언덕을 오르고 또 올랐다.

지금 생각하면 엄마에게 그 시간은 잠시 숨을 쉴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늘 시끄러운 집에서 빠져나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명분이었을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쫄랑쫄랑 따라나서는 내가 엄마는 귀찮았으리라.


그때 엄마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그 길에서 엄마와 같이 달을 보며 걷는 그 시간이 좋아서 기름통을 끌고 가는 게 창피한 줄도 몰랐다.

아주 가끔 엄마가 천원어치 붕어빵을 사주면 조금씩 아껴 먹으면서 재잘재잘 떠들었을 것이다.

주유소를 가던 길과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 위에서 내가 느꼈던 감정은 비슷하다.

매서운 겨울 바람에 볼이 새빨갛게 텄던 어린 아이도, 훌쩍 자라 성인이 되어버린 나도 엄마 옆에서는 그저 따뜻하기만 했다.


엄마와 함께한 추억이 그리 많지 않지만 오래도록 예쁘게 기억되는 순간도 있다.

어느 여름 날 포도를 깨끗하게 씻어온 엄마와 가족들이 거실에 둘러앉아 같이 포도를 먹었다.

당시 나는 너무 어려서 포도알을 삼키는 게 힘들었는데 포도껍질에 남은 그 단물은 좋아했다.

내가 먼저 달라고 했는지, 엄마가 준 건지 기억나지 않지만 엄마는 포도알만 쏙 빼서 먹고 단물이 그대로 있는 껍질을 내게 건넸다.

참새 새끼 마냥 엄마가 입 속에 넣어주는 포도껍질을 쏙쏙 받아먹으며 나는 더 없는 달콤함을 느꼈다.

지금도 그날의 날씨, 그때 입고 있던 옷, 차가운 마룻바닥의 감촉까지 다 기억난다.


엄마와의 기억은 파편처럼 조각조각 남아있다.

아픈 기억이든 좋은 기억이든 더 많은 추억이 있다면 좋을 텐데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대부분의 모습은 늘 지쳐 있던 얼굴과 새벽 5시면 일어나 보일러도 돌지 않는 차가운 부엌에서 아침밥을 하던 엄마의 뒷모습이다.

한 겨울 보일러도 들어오지 않는 냉골에서 엄마는 한 시간도 넘게 혼자 음식을 준비했다.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았지만 엄마는 그것이 마치 자기의 전부인 것처럼 하루도 건너뛰지 않았다.

그때는 그 차가운 바닥에서 올라는 냉기가 발바닥을 지나 발목까지 올라온다는 걸 몰랐다.

결혼하기 전까진 부엌에서 음식을 하는 내내 서서 일하는 것이 그렇게 다리가 아픈 줄도 몰랐다.

엄마의 고생은 우리 모두에게 그저 당연했다.

그것이 내 죄책감의 시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매일 매순간 엄마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힘들어 하던 때가 있었다.

그땐 엄마와 나를 분리하지 못하고 엄마의 인생을 내 위주로 해석했다.

엄마는 행복하지 않고, 내가 그 대상이 되어줄 수 없다는 무력감과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다행히 이제 대부분의 시간은 엄마 생각을 하지 않고 지낸다.


가끔 불쑥 올라오는 사무치는 감정에 힘들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잘 지낸다.

엄마와의 기억은 슬프기도 예쁘기도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엄마에 대한 기억임을 받아들였다.

애틋함도 미안함도 적당하게.

독립한 지 5년이 넘었는데 이제야 엄마에게서 완전한 독립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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