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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Mar 10. 2024

핸드폰 사진첩에 내 사진은 하나도 없더라

- 저 사람 우리랑 동갑이래.
- (놀람) 정말?  


어느 날 나보다 훌쩍 나이가 들어 보인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나랑 동갑이란 사실을 알았을 때, 처음엔 꽤나 당황스러웠다. 나랑 동갑이라고? 하지만 그런 일들이 점점 빈번해지면서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다른 사람이 나를 봐도 그렇겠구나.'

우리 부부는 아이가 없어서 그런지 종종 나이를 잊곤 한다. 아니, 나이를 잊는 게 아니라 내가 그 나이로 보인다는 사실을 잊는다는 게 맞겠다. 이십 대 연애하듯 지금도 알콩달콩 관계를 유지하는 사이라 가끔 밖에서 꺅꺅 소리도 지르며 장난도 치는데 남들이 보면 좀 보기 불편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니 불쑥 '뭐 어때?' 어깃장이 났다가 곧바로 씁쓸해져 버렸다. 아무래도 나이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 같은 게 있으니까. 


- 나도 나이 들어 보여?

 

우리와 동갑이라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문득 남편이 제법 진지하게 물었다. 내 눈에야 여전히 귀엽고 멋지지만 객관적으로 보자면... 글쎄? 지나가는 10대들 눈엔 그냥 40줄의 동네 아저씨로 밖에 안 보이겠지.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여서 이젠 어딜 가도 그냥 아줌마일 뿐이다. 누가 그랬더라. 아줌마는 남자도 여자도 아닌 제3의 '성'이라고. 그런 날이 나에게만은 더 천천히 올 줄 알았는데 결국 나도 그 나이가 되었다. 


당연하지만 동안이고 싶다. 팔십이 넘어도 그 나이대로 안 보인다, 훨씬 젊어 보인다고 하면 좋아하는 게 사람이다. 나도 누가 삼십 대 중반정도로 보인다고 하면 겉으론 '어휴, 아니에요' 겸손한 척하지만 입이 찢어지는 건 도저히 감출 수가 없다. 그리고 거울을 보면서 '그래, 내가 아직은 40대처럼은 안 보이지'라며 안도한다.  

그러나 결국 나이가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하루는 남편과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강바람을 맞으며 평화로운 한 때를 보내고 있었다. 햇살도 좋고, 강바람도 좋아서 백만 년 만에 셀카를 찍어볼 마음이 들었다. 오랜만의 외출이라 옷도 잘 차려입었고, 화장도 잘 먹었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딱 하나만 빼고.    


내 얼굴이 찍힌 셀카를 한참 동안 들여다봤다. 사진 속 내 얼굴은 내가 아는 것과는 꽤 다른 모습이었다. 내가 이렇게 생겼다고? 얼굴이 왜 이렇게 동그랗고 비대칭이지? 표정은 또 왜 이래? 왜 이렇게 아줌마 같아? 여보, 나 정말 이렇게 생겼어? 다급한 물음들을 겨우 삼킨 채 사진을 남편에게 보여주자 남편이 말했다.


오, 사진 잘 나왔네!


더 이상의 말은 생략한 채 조용히 사진을 지웠다. 

그러고 보니 사진첩에는 온통 음식 사진, 풍경 사진, 남편 사진뿐이었다. 2,30대에는 사진도 참 많이 찍었는데, 30대 후반으로 넘어가면서 사진 찍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찍어도 대부분 다 지워버렸다. 푸짐하게 살이 쪄버린 아줌마 티가 물씬 나는 내 사진을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몇 년이 지나니 내 핸드폰 사진첩에 가장 최근 찍은 사진이 신혼여행 때 찍은 사진이 되었다. 

내 삼십 대 중∙후반의 모습이 하나도 남지 않은 사진첩을 넘기며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이었더라도 남겨둘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나는 마흔 하나예요.
서이수 씨와 마주한 지금 이 순간이 내가 앞으로 살아갈 날 중 가장 젊은 날이죠. 


드라마 <신사의 품격>의 남자 주인공 대사다. 이때는 내가 삼십 대를 막 시작할 때라 저 대사의 깊이를 잘 몰랐다. 그런데 신기하게 나이가 들수록 저 대사는 더욱 선명해져 계속 곱씹게 된다. 오늘이 내가 살아갈 날 중 가장 젊은 날이라고 생각하면 내 얼굴의 주름 하나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아마 앞으로의 날 중 가장 옅은 주름일 테니.  

지금 모습이 어떻든 간에 오늘의 나는 십 년 이십 년 후엔 다시 가장 예쁠 때이다. 그러니 시간이 날 때마다 자신의 사진을 많이 많이 찍어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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