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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Mar 31. 2024

나의 세로 목주름에 대하여

얼마 전 거울을 보다가 뭔가 낯섦을 느꼈다. 조금 더 사실적으로 말하면 바짝 말라버린 나뭇가지가 슬쩍 보였다가 사라졌다. 중년이 지나는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어떤 오묘하고 애매하지만 분명한 늙음의 분위기. 원인을 찾기 위해 한참을 요리조리 살펴보다가 그만 발견하고 말았다.

나의 세로 목주름.  


세로 목주름은 본격적인 노화의 시작이다.


목주름은 유전이다. 우리 엄마도 외할머니도 목주름이 많았고, 나도 어렸을 때부터 목주름이 있었다. 20대, 30대를 거치며 목주름은 더 깊어졌고 서른 중반이 넘어서부터 옷이 얇아지는 여름이 되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스카프라도 할 수 있는 봄가을, 목을 감싸는 니트를 입을 수 있는 겨울에는 어떡하든 가릴 수 있는데 여름은 어쩔 수 없이 목을 그대로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30대까지는 전체적으로 피부가 탱탱해서 목주름 정도야 빛나는 젊음으로 가리기에 충분했다.


얼굴 주름은 두꺼운 화장으로 가릴 수 있어도 목주름은 가릴 수 없다. 그리고 목주름에 있어서 ‘가로‘와 ’세로‘의 차이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이 즈음 무서운 알고리즘은 나에게 세로 목주름에 대한 한 개의 숏츠 영상을 보여주었다.


당신이 세로 목주름을 발견했다면, 노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로 목주름은 나이보단 생활습관의 영향을 받는 주름으로 20대 전후부터 나타나지만
세로 목주름은 나이가 들면서 중력의 힘을 이기지 못해 생기는 주름이기 때문이다.  


이 짧은 영상을 보고 좌절했다. 체력이나 기분 따위가 아니라 생생하게 눈에 보이는 노화가 이제 시작되었다는 것이 퍽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세로 목주름으로 인생의 또 다른 챕터가 열려버린 느낌이었다.


중년의 챕터가 열렸다.


그러고 보니 노화의 증거는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었다.

사계절 내내 선크림을 듬뿍 발라도 얼굴엔 기미가 퍼지기 시작했고, 새치 염색을 하는 기간은 점점 짧아졌다.  발 뒤꿈치가 갈라지고,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는 것도 몸에서 수분과 콜라겐이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수분크림을 얼굴에 발라야 하고, 깜박하고 가습기를 켜놓지 않고 잠든 다음날 아침에는 피부 속까지 말라버린 얼굴에 화들짝 놀라 서둘러 유분기 가득한 크림을 얼굴에 올리곤 한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예전에 엄마도 바싹 마른 발 뒤꿈치가 갈라져 그 위에 수분크림과 오일을 듬뿍 바르고 양말까지 신고 잠자리에 들곤 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엄마도 나처럼 지독한 건성피부였고 노화까지 겹치며 발 뒤꿈치가 말라버린 나뭇가지처럼 꺼슬꺼슬해진 것이다. 그때 엄마가 "늙어서 그래"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던 말이 이제 와서 가슴에 박힌다.


우리는 종종 언젠가 우리가 늙는다는 걸 잊는다.


'늙음'이 나에겐 너무 먼 일이라고만 생각하고 살아왔다. 30대 후반까지만 해도 나는 나의 40대를 제대로 그려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40대인 지금도 내가 '중년'이라는 걸 종종 잊곤 한다. 그래서 이런 노화의 증거들이 속속 발견될 때마다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가 없다.


미용실을 다녀온 지 한 달쯤 지났을 때쯤 머리를 쓸어 넘기자 금세 흰머리가 드러났다. 듬성듬성했던 수준을 넘어 기어이 온 머리카락을 하얗게 물들이고 말겠다는 굳은 의지가 보였다. 아마도 석 달 정도만 염색을 하지 않으면 그대로 백발이 될 것이다. 무섭도록 빠른 점령이다.  

 

언제쯤이면 내 '늙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오긴 할까?

칠십이 되어도 얼굴에 깊게 파인 주름은 도저히 적응이 안 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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