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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Apr 07. 2024

어쩌다 딩크부부가 되었다

내가 아이를 낳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애초에 대단한 결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 부부는 ‘아이를 낳지 않겠어’라고 결심하지 않았다. 그저 둘 다 늦은 나이에 결혼했고, 아이를 가져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재미있게 살고 싶은 욕심이 조금 더 앞섰을 뿐이다. 그래도 남편의 의견을 제대로 알고 싶어서 마흔이 되기 직전, 물어본 적 있다.


- 여보, 아이가 갖고 싶어? 그럼 더 늦기 전에 병원에 가서 제대로 검사를 받아보자.


남편은 잘 모르겠다고 했다. 남편도 나에게 같은 질문을 했고 나도 남편과 똑같이 대답했다. 우린 둘 다 아이가 갖고 싶은지, 아니면 이대로 둘이서 살고 싶은지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다.

 

경제적인 부분을 무시할 수 없었다.

적당한 직장에서 고만고만한 연봉을 받는 우리 부부는 지금 당장 먹고살기에 부족함은 없지만 노후를 그려보았을 때 과연 지금만큼 먹고 쓸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한다면 아무래도 어렵다. 그런데 여기에 아이까지 있다면? 당장 내가 회사를 나가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당연히 노후 준비는 꿈도 꿀 수 없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따져봤을 때 불행히도 우리에게 아이는 너무 큰 짐이 될 터였다.


안전하게 키울 자신이 없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학교폭력, 묻지 마 폭행, 마약, 살인이 뉴스를 장식하고 전쟁으로 세상이 시끄럽고, 빈번해져 가는 지구 곳곳의 자연재해를 마주할수록 아이를 낳고 싶다는 생각은 점점 사라졌다. 내 아이가 살아가야 할 세상이 내가 살아온 날들보다 평탄치 않을 것 같았다. 그것은 곧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더 솔직히 말하면, 현재의 편안함을 포기할 자신이 없었다.

주변에 아이를 낳아 키우는 지인들을 둘러보면 몹시도 지쳐 보였다. 아이를 돌보느라 하루종일 집에서 나오지 못하는 친구는 산후 우울증에 걸렸고, 퇴근 후 다시 집으로 출근한다는 동료는 오히려 야근이 편하다고 했다. 주말에 낮잠은 꿈도 꿀 수 없었고, 누적되는 피로로 어느새 멀어진 부부사이는 당연한 듯 따라왔다.


퇴근하면 손 하나 까딱하는 것도 싫고 나 하나 먹여 살리는 것도 버거운 지금, 나의 편안함과 안락함을 포기하면서까지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내가 더 중요한 인간이다.  그래서 아이를 낳는다는 건, 자신을 온전히 희생할 용기가 있는 사람의 위대한 결심이다.


그리고 어차피 성숙한 부모가 되지 못할 바엔,

무엇보다 과거에 나는 내가 부모가 된다면 최소한 무책임한 부모가 되지는 말자고 결심했었다. 경제적인 것은 둘째 치고서라도 최소한 아이에게 온전한 사랑을 줄 수 있는 부모가 되고 싶었다. 성숙하지 못한 부모가 얼마나 아이를 불안하고 불행하게 만드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이것만큼은 반드시 지키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성숙해지는 시간 동안 임신할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어쩌다 딩크 부부가 되었다. 지나가는 아이들을 보면 마냥 귀엽고, 남편을 닮은 아이가 궁금하고 갖고 싶을 때도 있다. 가끔은 지금이라도 병원을 가볼까 하는 생각을 진지하게 할 때도 있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다. 진짜로 아이를 갖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은 왠지 불편하다. 불안하고 무섭다.


나중에 후회하면 어떡하지?


아이를 낳지 않는 것으로 생각을 굳혔지만 문득 우리가 완전한 가족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부모와 자식으로 이루어진 3인 이상의 가족은 왠지 울타리가 단단한 벽돌집 같았고, 우리 부부는 얼기설기 쌓은 짚더미에 불과한 것 같은 기분이랄까.

또 우리의 노후를 그려봤을 때 너무 외롭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남편과 둘이서만 늙어가는 노후가 행복할까? 후회하진 않을까?


그러나 우리는 늘 어떤 선택이든 후회한다. 아이를 낳아도, 낳지 않아도 그 나름의 후회와 기쁨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벌써부터 너무 겁내지 말자. 이미 지금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어느 날엔가 남편과 우스갯소리로 우린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귀찮아하지 말고 뭐든 빨리 시도하고 배우자고 이야기했다.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한번 뒤떨어지기 시작하면 고립될 수밖에 없으니 이것저것 뭐든 해봐야 한다고. 우린 우리가 돌봐야 하니까. 그러나 스스로를 책임지는 건 아이가 있든 없든 모두에게 같을 것이다. 누구나 혼자로서 충만해야 하므로.


이상 딩크부부의 정신승리 글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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