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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Apr 14. 2024

인생은 마흔부터 실전이다

요즘 부쩍 기업들의 희망퇴직 소식을 심심치않게 들을 수 있다. 남편의 직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월요일 아침, 예고도 없이 희망퇴직 신청을 받는다는 공지가 떨어졌다. 신청자에게는 두 달치의 월급과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해준다고 했다. 웃긴건 신청과 퇴사까지 걸린 시간이 딱 일주일이었다는 것이다. 이틀만에 신청을 받았고 바로 그 주까지만 일을 하고 끝이었다.

젊은 2, 30대 초반의 직원들은 두 달치의 월급을 놀면서도 받을 수 있다고 하니 짧은 고민 후 바로 신청을 했고, 이어서 줄줄이 사원과 대리 급들의 줄퇴사 신청이 이어졌다고 한다. 남은 건 30대 후반~40대 이상 중간관리자급 뿐이었다. 겉으로는 큰 내색하지 않았지만 남편의 얼굴은 생각이 많아보였다

 

나도 며칠 전 회사의 연봉 동결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계약서에는 이전에 없던 한 줄이 추가됐는데, 앞으로 연봉이 동결일 때는 서명 없이 자동 연장이 된다는 조항이었다. 내년에도 우리 회사의 매출은 불투명한 상황이기에 미리 밑밥을 깔았다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계약서에 사인을 하는 나도 생각이 많아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연히 동료들의 연봉 금액을 알게되었다. 직급이 높다고 꼭 연봉이 높은 것도 아니었고, 내 생각보다 낮은 사람도 있고, 예상 외로 높아서 놀라운 사람도 여럿 있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이런 상황에서도 연봉 1억을 훌쩍 넘기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는 점이다. 대기업에서나 이런 연봉이 가능할 줄 알았는데, 나만 빼고 다른 사람들은 돈을 다 잘 벌고 있었다.


나 빼고 다들 돈을 잘 번다.


얼마전 퇴사한 임원분과 저녁 약속을 하고 만났다. 그 분은 퇴사한 지 한달도 안돼서 새로운 곳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완전히 다른 직군으로 이직을 했는데, 그 분이 들려준 이야기는 놀라웠다.

IT 쪽이 원래 돈을 많이 받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초봉이 5,500부터 시작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소리를 지를뻔 했다. 뿐만 아니라 이번 연봉 계약 때 S급을 받은 직원은 연봉의 50%가 인상되었으며, 평균 25%가 올랐다고 했다.


내가 일하는 교육쪽은 연봉이 짜기로 유명하다. 이 바닥에서 십년을 넘도록 일했지만 다른 직군의 초봉과 비슷한 연봉이라니, 현타가 세게 왔다. 나보다 몇 년 앞선 직장 선배인 임원분은 시야를 넓게 가지라고 조언하셨지만 그게 지금 내 나이에도 해당이 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인생은 마흔부터 진짜 실전이다.


마흔이 되면 인생 난이도가 갑자기 급격하게 높아진다. 직장에서는 날이 갈수록 운신의 폭은 좁아지고, 앞으로 몇 년이나 회사를 다닐 수 있을지 미래는 불투명하다. 아직 갚아야 할 아파트 대출금은 잠실롯데타워만큼 높아 보이고,  부모님의 노후와 나의 노후까지 생각하면 숨이 턱 막힌다.


문득 예전에 들었던 라디오 사연이 생각난다.

남편의 갑작스런 퇴사로 전업주부였던 아내가 돈까스 가게에서 서빙알바를 하게 되었다. 초등학생 아이가 학교를 마치고 학원에서 돌아오는 시간까지 하루에 5시간 정도 일을 하는데, 집과 가까운 곳이 아니라 버스로 몇 정거장 가는 곳에 일을 구했다. 혹여 동네 학부모들에게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들킬까봐 일부러 조금 떨어진 곳으로 구한 것이다. 그 마음을 생각하니 남의 일 같지 않아 찔끔 눈물이 나왔다.


40대부터는 진짜 실전이다. 자신이 초라해지는 것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서 40대는 사는 게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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