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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May 14. 2024

마흔 된 김에 한라산[1] 도전을 해본다는 것


삼순이는 왜 한라산에 올랐을까?

이유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2004년 방영한 <내 이름은 김삼순> 드라마에서 주인공 삼순이가 한라산에 오르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나도 삼순이처럼 서른 즈음이 되면 ‘한라산에 갈 거야’라고 어렴풋 생각했던 것 같다.

그로부터 20년이 가까이 흘러 한라산은커녕 동네 뒷 산도 일 년에 한두 번 갈까 말까 하는 마흔이 되었다.

40 평생 내가 정복한 산은 청계산과 관악산과 할아버지들의 체력단련장인 동네 뒷 산이 전부다.

그런 내가 겁 없이 한라산 등반 계획을 세웠다. 이유는 단 하나, 내 생일에 백록담을 보는 게 꽤 멋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침 한 달 전, 오랜만에 부부 여행으로 제주도를 가기로 했다.  

처음 여행계획을 짤 때만 해도 우리 계획표에는 제주의 동서남북 맛집 리스트로 빼곡했다.

당연히 한라산의 ‘ㅎ’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출발 일주일 전 여행의 목적이 한라산 등반으로 변경되었다.

 지인이 슬쩍 던진 “한라산이나 갔다 와”라는 한 마디가 발단이었다.

불현듯 삼순이가 떠올랐고, 공교롭게 여행 기간이 내 생일 주간이었으며, 40대를 시작하는 기념으로 한라산 등반 만한 게 없을 것 같았다.


설악산은 백록담으로 가는 코스는 딱 두 개 코스밖에 없다.

관음사 코스와 성판악 코스.

관음사 코스는 상대적으로 거리는 짧지만 시간은 더 걸리는 지옥의 코스로 유명했다.

성판악 코스는 비교적 쉽고, 관음사 코스보다 계단이 적어서 초보자도 도전해 볼 만하다는 후기들이 보였다.

고민 없이 바로 성판악 코스로 예약했다.

  

마흔에 가는 한라산은 챙길게 많다

즉시 제주 여행 계획들을 대폭 수정했다.

맛집보다 중요한 건 컨디션 관리였기에 맛집을 포기하면서 동선을 줄이는데 집중했다. 에메랄드 빛 바다보다 백록담을 보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등반일정을 시간대별로 꼼꼼하게 챙겼다.

짐도 등산을 위한 장비와 옷으로 다시 꾸렸다.

여름용 등산복, 스틱, 등산양말과 등산화, 햇빛을 가릴 챙이 넓은 모자와 선글라스, 무릎보호대, 텀블러 등으로 캐리어 하나가 가득 찼다. 등산을 제외한 3일 동안 입을 옷은 단출을 넘어 조촐해졌다.

 

나는 몰랐지만 백록담은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을 만큼 그 모습을 보기가 어렵다고 한다. 지대가 높아 등산 중에도 날씨가 시시때때로 바뀌기 일쑤이고, 갑자기 비가 와서 등반이 취소되는 경우도 흔하다.

다행히 우리가 가는 5월 첫 주 앞뒤로는 비가 예정되어 있지만 마침 우리가 제주도에 있는 3박 4일 동안은 날이 좋았다. 일단 날씨는 합격이었다.

 

문제는 체력이었다.

한라산의 등산 시간은 평균 8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올라갈 때 4시간, 하산할 때 4시간 버틸 체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였다.

다행히 약 9개월 간 PT를 받으며 운동을 열심히 해왔던 터라 체력은 꽤 올라와 있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조금만 무리하면 쑤시는 무릎과 발목, 족저근막염을 앓고 있는 발바닥이 걱정이었다.

아 정말 이놈의 나이!

그래도 장비빨로 어떻게든 버틸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제주도 비행기에 올랐다.  


<마흔 된 김에 한라산> 2탄은 다음 연재일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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