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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May 26. 2024

마흔된 김에 마라톤(1) 언감생심

마흔 즈음이 되면 지레 겁을 먹는 일이 많아진다. 작든 크든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는 것은 전보다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하물며 마라톤이라니. 그 이름만으로 느껴지는 무게감이 달랐다.

설상가상 걱정도 많아진다. 달리기는 크고 작은 부상이 많은 운동이다. 잘못된 자세로 뛰면 발목, 무릎이 나가가기 일쑤다. 가뜩이나 무릎이 안 좋아서 걱정인데, 달리기를 해도 될까?

그렇게 생각만 하다가 아이고, 나이를 이렇게나 많이 먹어버렸다.       


달리기, 까짓거

어렸을 때부터 ‘오래달리기’라면 정말 쥐약이었다. 단 몇분만 뛰어도 숨이 차고 목에서는 피맛이 났다. 다시는 그런 기분을 느끼고 싶지 않아 학생 딱지를 뗀 후에는 출근길 지하철을 놓칠까봐 후다닥 뛰는것 외에는 거의 뛰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을 오랫동안 동경 해왔던 것 같다. 가볍게 발을 구르며 기분좋게 가쁜 숨을 컨트롤하며 달리는 사람들의 몸과 마음이 더없이 건강해보였다. 러닝 동호회 같은 크루를 만들어 함께 뛰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 어떤 미사여구가 필요 없이 빛이 났다. 그들을 보면 '젊은', '건강한', '에너지', '긍정적인' 같은 키워드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냥 내 눈엔 그들이 흘리는 땀방울 하나하나가 '멋짐' 의 그 자체였다. 그 안에 나도 속하고 싶은 욕망이 늘 꿈틀대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 '까짓거 해보자'라는 마음이 덜컥 생겨버렸다. 결심은 늘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문득 찾아오는 법이다. 그것이 감히 넘보지 못할 그 무엇이라고 해도.  


42.195km도 5km부터

다음 날 아침, 집에서 가까운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달리기 연습을 시작했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일단 5km를 걷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뛰어보는 것이 목표였다. 생각보다 좁은 운동장, 몇 바퀴를 돌아야 1km가 될지 감도 오지 않았다. 이럴 땐 달려보면서 페이스를 찾는게 정답이다. 긴장 반 설렘 반의 마음으로 천천히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발끝부터 땅을 디뎌야 하는지, 허리를 세워야 하는지, 굽혀야 하는지, 호흡은 코로 하는 게 좋은지, 입으로 해도 되는지 등 아직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지만 생각이 길어지면 또 이 핑계 저 핑계로 미룰까봐 일단 시작을 먼저 하고 찾아보기로 했다. 지금 필요한 건 공부가 아니라 행동이다.


평균적으로 초보자의 경우 1km에 6분 정도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5km라면 30분 언저리가 될터였다. 기록은 차치하고 3분도 핵핵거리는 내가 30분을 뛸 수 있을까? 또, 또 걱정! 됐고, 일단 해보자!

1바퀴, 2바퀴, 3바퀴... 7, 8, 9바퀴째가 되어서야 1km가 찍혔다. 평균 속도 8분 언저리였다.

'와, 생각보다 쉽지 않네?'


3km쯤 뛰었을 때 고관절에서 뻐근함이 느껴졌다. 역시 자세가 잘못된 것 같다. 시작할 때 스트레칭을 너무 간단히 끝내고 바로 뛰기 시작한 것도 화근이었다. 그래도 멈추고 싶지 않아서 계속 달렸다. 한 번 쉬면 그대로 포기할 것 같았다.      

그리고 정말 놀랍게도 한번도 쉬지않고 40분 만에 5km를 완주했다. 평균 속도보다 한참 느리지만 3분도 못 뛰던 내가 40분을 뛰다니, 태어나서 이렇게 오랫동안 뛰어본 게 처음이었다.  

달리기를 멈추자 온 몸에서 스팀이 나는 것처럼 열이 올라왔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약간의 통증이 있었지만 그보다 해냈다는 뿌듯함이 훨씬 커서 저절도 웃음이 나왔다. 이 맛에 달리는 거구나! 처음으로 달리기의 재미를 느낀 순간이었다.   



내 인생에 마라톤이라니

구들에 전국 마라톤 대회를 검색하면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전국 마라톤 대회 리스트가 촤르륵 쏟아진다. 그걸 보고 있으면 '세상에, 나만 빼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달리기를 하고 있었다니!'라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의 대회가 5km, 10km, 하프, 풀코스로 나누어 신청을 받는데, 올 10월 쯤 10km 도전을 해볼까하고 둘러보고 있던 차에 1년 정도 다니고 있는 헬스장에서 '마라톤 참여 크루 모집 공고'가 떴다. 내 행동이 변하니, 주변 환경도 따라서 변하는 건지, 신기하게도 혼자가 아닌 헬스장 회원들과 함께 뛸 기회가 생겼다.   


한달 뒤, 나는 이들과 함께 서울 뚝섬한강공원에서 열리는 <국민 행복 마라톤> 에 참가한다. 내 인생에 마라톤이라니, 마흔된 김에 하는 도전 치고 꽤나 멋지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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