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요 Jul 17. 2022

부모가 용서가 안되는 당신에게


그래도 너가 이해해야지

부모님이 널 어떻게 키웠는데

너도 참 철이 없다



부모와 인연을 끊었다는 말을 들은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반응합니다.

처음엔 다 이해한다는 듯 위로를 건네다가

곧 부모의 희생을 강조하며 그들의 헌신적인 사랑에 대해 설교를 늘어놓기 시작합니다.   

그래도 설득이 되지 않으면 아직도 철이 들지 않은 미성숙한 인간으로 치부해버리죠.






저는 제가 가족과 인연을 끊은 것에 대해 이해를 바라지 않습니다. 

누구도 내가 살아온 시간을 동일하게 겪은 사람은 없으니까요.

그들은 내가 가족과 살아온 시간을 본인들의 과거에 빗대어 짐작 정도만 할 뿐이에요. 



그래서 누구에게는 제 행동이 미성숙하게 비춰질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천하의 못된 년일수도 있겠죠.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신경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가치관이 있고, 저는 저의 가치관대로 살면 되는 것이니까요. 



저처럼 부모와 거리두기를 하는 분들이나 

여전히 부모와 얼굴을 보며 갈등을 안고 사는 많은 분들이
부모에 대한 분노와 동시에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저 역시 그런 시기를 지나왔습니다. 

이해가 안 갈 정도로 비상식적인 부모의 행동에 화가 나고 분노가 차올라서

절대로 다신 그들을 보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다가도 

죄책감 때문에 밤새도록 숨죽여 우는 날들을 반복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문득 깨달았어요.

내가 지금 흘리는 눈물이 분노나 죄책감이 아니라 나 자신이 가여워서 우는 거구나.

나는 내가 가엽구나.



어린 시절 부모의 사랑을 느껴보지 못하고

부모가 싸울까봐 둘의 틈에서 눈치를 보고 

아빠가 나를 불러 이유도 없이 비난을 퍼부을까

매일 공포에 바들바들 떨어야 했던 내가 너무 가여웠구나.

엄마가 힘들까봐 어리광 한 번 제대로 부려보지 못하고 

착한 딸이 되려고 애쓰던 내가 너무 가여웠구나.

지금도 여전히 그들을 용서하지 못하고, 가족을 미워해야 하는 내 자신이 나는 너무 가엽구나. 



저는 지금도 여전히 내 부모를 용서하지 못했습니다.

나가 죽으라고

인간 같지도 않다고

멍청하고 병신같다고

지랄맞고 재수없다고 


수시로 나에게 했던 욕설과 행동이 여전히 상처로 남아있습니다. 

아빠가 나에게 보냈던 경멸에 찬 눈빛과 말투, 

툭하면 몇날 며칠을 투명인간 취급하던 그 기억이 여전히 선명합니다. 

그런 정서적 학대를 방치한 다른 가족들에게 받은 상처도 여전히 쓰라립니다. 

그 가시들을 하나하나 뽑아내고 상처가 아물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겠죠. 

  


그래서 저는 '벌써' 용서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 안의 상처가 아물 때까지 나에게 충분한 시간을 줄 생각입니다. 

그것이 내가 이 세상에서 온전히 나로서 완전하게 살아갈 수 있고 

발을 딛고 걸어갈 수 있는 단단한 토양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엔 '효'라는 이름으로 무조건적인 복종과 착취, 정신적 학대를 자행하는 부모도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이기적인 행동을 포장하고 

'자식을 위해서'라는 말로 자식을 자신의 소유물처럼 취급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죠.

부모는 부모가 처음이라는 이유로 자식을 학대했지만 (그래서 미안하긴 하지만)

자식은 병들고 나약해진 부모를 무조건 이해하고 용서해야 한다고 강요합니다. 

그 시대엔 부모가 다 그랬고, 그들도 너무 고단한 삶을 살아왔고, 

미처 자식에게까지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고 그들의 행동을 정당화하죠. 



그런데 그렇게 묻어두기만 한다면

나에게 남은 응어리는 어떻게 풀어야 하는 걸까요?

나는 나를 어떻게 치유해야 하나요? 



다른 사람들의 시선때문에 내 마음 들여다보는 것을 놓치지 마세요.

내 감정을 그냥 묻어두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눌러놓은 감정도 언젠가는 결국 나에게 돌아오더라고요.

슬픔이든, 분노든, 가여움이든.

그 감정을 너무 늦게 알아채면

그 시간만큼 내 인생을 온전히 살 수 있는 시기가 더 늦어질 뿐입니다. 

 


 결국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건 자기 자신뿐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족과 인연을 끊고 달라진 것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