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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Jul 16. 2022

가스라이팅하는 부모에게서 독립하지 못하는 이유

왜 그러고 살아?

돈 버니까 독립하면 되잖아

자기 인생 자기가 꼬는 거지



다른 사람들이 툭툭 던지는 말에 상처받지 마세요.

부모는 자식이 처음으로 만난 세상입니다.

내 부모를 부정하고 그 세계를 깨고 나오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주 큰 슬픔을 짊어지는 일입니다.  


 




강박증이 점점 심해져 심리치료를 받을 때 상담사분은 제게 가족으로부터 독립할 것을 권했습니다.

가족과 떨어져 있으면 불안 증세가 나아질 수 있다고요.

그 말을 들은 저는 체한 것처럼 가슴이 더 꽉 막혔습니다.



나는 당장 독립할 수가 없는데...

독립한다는 말만 꺼내도 집이 난리가 날텐데...

아빠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욕을 해댈거고

엄마는 어떡하든 날 설득하려고 할테고

한동안 집은 살엄음판 같을텐데

그걸 다 알면서 독립한다는 얘기를 차마 꺼낼 수 없었습니다.



"그럼 말을 안하고 나가면 되죠."



그런 선택지도 있겠지만 결과는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집을 나간걸 알면

아빠는 엄마부터 들들 볶을 것이고

이내 불같이 화를 내며 화살을 남은 가족들 탓으로 돌릴것이 뻔했으니까요.

내가 나간 집은 매일매일이 지옥같을 테니까요.

내가 나 혼자 살겠다고 집을 박차고 나갔기 때문에.



참 답답하네.

이런 거 저런 거 다 신경쓰면 어쩌라고?



이렇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상담사 얼굴은 고구마를 먹은 것처럼 답답해보였습니다.

저도 제가 답답했지만 그때의 저는 그게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아빠는 제가 어릴때부터 틈만 나면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널 진심으로 생각하는 건 가족뿐이다.

아빠는 널 진심으로 사랑한다.

그런 부모에게 반항하는 건 패륜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언제든 자식을 버릴 수 있다.

내 말을 듣지 않는 자식은 필요없다.

 


패륜아가 되는 것도, 부모에게 버려지는 것도 저는 겁이 났어요.

내가 이 세상을 부모 없이 혼자서 살아갈 수 있을거란 확신도 없었고

가족이라는 온전한 내 편이 없어지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더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 가족을 떠난 후의 삶을 살아갈 자신이 없었습니다.



어리석게도 그가 정말 우릴 사랑한다고 믿었죠.

성인이 되고 난 후에도 한참을 그에게 복종하며 살았습니다.

그의 기분을 살피고, 그가 기분 좋을만한 행동을 하는데 온 신경을 썼습니다.

내 기분, 내 상황보다 더 중요한 건 아빠의 기분, 아빠의 상황이었으니까요.

저에겐 그것이 '가정의 평화'이자 '효도'이고 '사랑'이며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으니까요.  





요즘은 이런 정서적 학대를 '가스라이팅'이라고 하더군요.

처음 이 단어를 들었을 땐 조금 혼란스러웠어요.



내 부모가 나에게 가스라이팅을 한건가?

부모가 자식에게 그럴 수가 있을까?

내가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 단어가 아니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부모 앞에서만 서면 느껴야하는 이유 없는 죄책감

가족과 관련된 일이라면 느끼는 극도의 불안

그리고 늘 나를 비난하고 저주하는 아빠의 언어폭력

부모 이외에 다른 타인은 모두 '나쁜 사람', '필요없는 사람'으로 단정짓는 것과

자기 외 어떤 사람의 감정도 공감하지 못하는 행동까지.



삼십년 넘도록 이해할  없었던 그의 모든 동이  단어 하나로 설명이 되었습니다.



가스라이팅을 하는 부모의 자녀가 그들의 학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거리를 두는 것.






저는 소설 [데미안]을 참 좋아합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한다.”



부모가 만든 생각을 깨고 나온다는 것은 내 안의 세계를 모두 무너뜨리고 나오는 것입니다.

절대자인 부모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갖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그것을 알아도 감히 깨고 나오기까지

속으로 얼마나 많은 번뇌를 거쳐야 하는지 저는 알고 있습니다.

내 부모를, 가족을 버리고 혼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엄청난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더라고요.



그러니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거리를 둘 준비해도 됩니다.

조금씩 나만의 삶을 위한 준비를 시작하세요.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을 그려보세요.



그 알을 깨고 나올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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