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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Jul 28. 2024

마흔 된 김에 바디프로필(5) 튼 살

초등학생 때부터 통통에서 뚱뚱을 왔다 갔다 했고, 중학교 들어서면서 고등학교 때까지 쭉 뚱뚱한 몸을 갖고 있었다. 고등학생 때 몸무게 75kg을 찍은 후 더는 체중계에 올라가지 않았다. 그때쯤부터 내 몸무게를 숫자로 확인하는 게 무서워졌기 때문이다.

풍선처럼 몸이 부푸는 사이 여린 살이 팝콘처럼 팡팡 터지기 시작했다. 어깨, 허벅지, 사타구니, 배, 등까지 어디 한 군데 성한 데가 없었다.

어렸을 땐 살이 트는 게 뭔지도 몰랐다. 이 흔적이 죽을 때까지 남는 자국이라는 것도 몰랐다. 당연히 관리를 하지 못했고, 내 몸 구석구석에는 튼 살이 남게 됐다.

하얀 피부라면 이 마저도 조금은 가려질 텐데, 타고나길 노란 피부톤에 살은 또 어찌나 잘 타는지, 여름이 되면 튼 살 때문에 민소매 옷을 한번 입어본 적 없었다. 팔뚝을 훤히 드러낸 옷을 입고 싱그럽게 웃는 주변 친구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나는 마치 팔뚝 살 때문에 민소매는 엄두도 못 내는 것처럼(그것도 일부 맞지만) 덥디 더운 한여름에도 늘 반팔을 입고 다녀야 했다.  


이십 대 때 드라마 풀하우스에서 송혜교가 입고 나오던 볼레로가 한창 유행이었다. 민소매 티를 입고 그 위에 볼레로로 튼살을 가리면 유행도 좇으면서 스타일도 괜찮아서 즐겨 입었다. 어느 날 봄바람에 볼레로가 어깨 뒤로 살짝 넘어갔다. 그 바람에 내 튼살이 훤히 드러나는 해프닝이 있었고, 난 순식간에 옷으로 가렸지만 마침 지나던 한 커플이 내 튼살을 본 것 같았다. 그리고 나를 지나치는 남자가 뱉은 말을 듣고 말았다.


“어우 징그러. “


못 들은 척했다. 기분이 나빴지만 뒤돌아서 그를 노려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난 남자의 말에 큰 수치스러움을 느꼈고, 이후 실수로라도 튼 살을 밖으로 드러낸 적은 없었다.

그만큼 튼살은 나에게 어마어마한 컴플렉스이다. 그래서 바디프로필을 찍기로 마음먹은 후 가장 먼저 걱정된 것도 튼 살이었다.

태닝을 하면 자국이 좀 가려질까 싶어 알아보니 튼살은 멜라닌 색소가 없어 태닝이 안되고 오히려 태닝이 된 다른 부위와 색이 대비되며 더욱 부각이 된다고 한다. 그럼 좀 진한 화장품으로 커버를 할까도 생각했지만 튼살의 부위는 생각보다 넓어서 화장품 커버로는 힘들 것 같았다. 그렇다고 난생처음 바디프로필을 찍는데 튼 살을 가리자고 여기저기 옷으로 감추고 싶지도 않았다. '괜히 바디프로필을 찍는다고 했나?' 하는 생각에 덜컥 바디프로필을 예약해 버린 경솔한 내가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마침내 결심했다.


이렇게 된 거 그냥 드러내자!


마음을 먹고 나니 오히려 덤덤해졌다.

이것 또한 나인 것을 더 이상 감추고 가리려고 발버둥 치지 말자.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자.

남들이 흉측하게 생각하더라도 신경 쓰지 말자.

어차피 한 번 보고 안 볼 사람들이니까.



방송인 이영자가 예전에 강연했던 모습을 방송에서 본 적 있다.

컴플렉스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그 강연이 내게 큰 울림을 주었다.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상황이나 환경이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왜곡된 내 안의 열등감, 컴플렉스였다.
열등감이 무서운 게 이걸 고치지 못하면 세상의 소리를 오역하게 되더라.
내 열등감이 무엇인지 찾아내서 박살 냈으면 좋겠다.


내 몸에 핀 튼살처럼 그동안 여러 열등감을 계속 감추기에만 급급했던 것 같다.

나 스스로도 내 열등감, 컴플렉스와 마주하기가 불편했다. 안 볼 수만 있다면 그냥 모른 척하고 싶었다.

하지만 살면서 어떤 일이 틀어지고 삐끗거릴 때마다 내 발목을 잡았던 건 컴플렉스였다.

긴 인생에서 한 번은 내 컴플렉스를 깨부수는 계기가 있어야 하는 것 같다. 그걸 해내지 못하면 내 남은 인생이 내내 별 것 아닌 그것 때문에 늘 주눅 들고 눈치를 보게 된다. 그러니까 기왕 컴플렉스를 박살 내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지금 당장 부딪쳐보자. 이런건 빠르면 빠를수록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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