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요 Nov 19. 2022

나는 왜 부모에게 죄책감을 느낄까

부모님은 늘 제게 실망하셨습니다. 성적이 낮아서, 남보다 뛰어나지 못해서,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해서, 뚱뚱해서, 성격이 어두워서 등등 저에게 실망하는 포인트도 늘 가지각색이었고요. 그걸 직설적으로 비난하는 부모님 앞에서 저는 아주 자연스럽게 항상 부족하고 모자란 사람이 되었어요. 딱히 잘못을 저지르지 않아도 항상 부모 앞에서는 주눅이 들고, 눈치를 봤고,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그들에게 저는 여전히 못나고 내세울 것 없는 자식이었죠. 아빠는 자식들이 성에 차지 않는 게 늘 불만이었지만 그렇다고 자식이 잘난 것도 썩 흡족해하지 않는 사람이었어요. "원래 잘난 자식은 부모를 우습게 보고, 못난자식이 부모를 잘 모신다"며 오빠와 나를 들으라는 듯 비아냥거렸고, 가시방석인 오빠와 내가 주눅이 들어 있으면 그 또한 못마땅해 하면서 "니네가 못나서" 눈치를 보는 거라고 탓하곤 했습니다. 소름끼치는 건 "부모가 잘나면 애들이 기를 못 편다더니 딱 너네를 두고 하는 말"이라고 만족스러움과 비웃음 그 사이 어딘가에서 늘 우리를 자기 발 아래 두고 평가를 했다는 것이죠. 


일반화시킬 수는 없지만 부모에게 자랑스러운 자식이 되지 못한 자녀들은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부모에게 끝도 없는 부채감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저희 부모님은 저에게 한 번도 만족스러운 웃음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아빠는 자식들이 못난 것에 대해 늘 엄마탓을 했고, 엄마는 그런 저희를 아쉬워했죠. 누군가 아빠에게 자녀들 대학을 어디갔느냐고 물으면 아빠는 명문대학교 이름을 둘러댔습니다. 그런 날에는 저희를 꿇어앉히고 몇 시간씩 설교를 빙자한 화를 내곤 했고 그 앞에서 오빠와 저는 죄인이 될수밖 없었죠. 부모를 거짓말하게 만드는 자식이 무슨 할 말이 있겠어요. 


둘째, 끊임없이 자책을 합니다. 내가 못났으니까, 내가 부족하니까.. 부모에게 무시당하고 비난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가끔 억울하고 화도 나지만 부모 앞에서는 절대로 감정을 드러내지 못합니다.  


셋째, 스스로를 믿지 못합니다. 저는 자기 확신이 평범한 사람에 비해 현저히 떨어집니다. 생각해보면 당연합니다. 나를 낳아준 부모에게 조차 한 번도 인정받지 못한 사람이 스스로의 생각, 판단과 결정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요? 자기 확신이 없다는 건 늘 불안함을 안고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의 시선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고, 누군가 나를 좋지 않게 평가할까봐 전전긍긍하죠. 어렸을때는 그나마 밝은 성격을 연기하며 나름대로 친구들과 잘 어울렸지만 성인이 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점차 폐쇄적으로 변하게 된 건 바닥이 드러나 쩍쩍 갈라진 자존감을 들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넷째, 부모에게 인정받기 위해 절대적으로 복종하고 칭잔을 갈구합니다. 저는 부모의 인정을 받기 위해 몸부림을 쳤던 것 같습니다. 더 좋은 회사에 가기 위해 열 번에 가까운 이직을 하고, 아빠가 무언가 요구하면 그 이상을 해내기 위해 아득바득 기를 썼습니다. 그런데 정말 웃긴건 그들에게는 절대로 제가 성에 차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언젠가 엄마가 이런말을 하더군요. "이제 엄마는 너네한테 아무 기대도 안해. 그러니까 그냥 마음대로 살아." 그렇게 인정받으려고 기를 썼는데 엄마는 저를 포기했다니 저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몰라서 웃을 수밖에 없었지만 속으로는 눈물을 삼켰습니다.     


제 감정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죄책감은 큰 돌을 발에 묶어놓고 수영을 하는 것처럼 무겁고 버거웠습니다. 늘 가슴에 답답함을 안고 살아야 했어요. 무기력해지는 단계를 지나 내 삶에 아무런 기대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어른이 되면 자연스럽게 이 감정도 내려놓을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점점 더 깊은 늪으로 빠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제가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첫 번째 계기는 친구였습니다. 믿을 수 있는 오래된 친구에게 조심스럽게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하자 마음이 조금씩 후련해졌습니다. 그러나 이 방법은 근본적인 방법이 되지는 못합니다. 단발적으로 위로를 받을 수는 있지만 아무리 친해도 그들이 내가 아닌 이상 내 감정의 끝까지 이해를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가슴 밑바닥에 있는 진짜 상처를 꺼내기는 쉽지 않고 막상 털어놓는다고 해도 결국 그것이 내 얼굴에 침뱉기와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상대 역시 한 두번 진심으로 들어줄 수는 있지만 계속되다보면 지치고 불편해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단계가 필요한 이유는 상황을 조금씩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혼자서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 깨닫는데까지도 오래걸릴 뿐만 아니라 깨닫는다고 해도 그 상황에 혼자 매몰되어있는 상태에서는 여전히 무기력하게 휩쓸려갈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털어놓을 만한 가까운 사람이 없다면 상담을 받는 것도 좋습니다. 내 상황을 털어놓고 이야기를 하다보면 무엇이 잘못된 부분인지를 더 빨리 깨달을 수 있고, 나를 괴롭게 하는 원인을 의외로 빠르게 알아챌 수 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시원해지고 숨통이 트이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최종적으로 제가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데 가장 큰 계기가 된 것은 제가 처한 이 상황에 대해 글을 쓰면서부터였습니다. 이 또한 쉽지는 않았습니다. 가족 이야기를 쓰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글을 쓰다보면 감정이 격해지기도 하고 눈물이 나는 경우도 허다해서 쓰다가 멈추기를 반복해야 했습니다. 도저히 못 쓸 것 같아서 포기하기도 여러번이었지만 한 꼭지 한 꼭지 써내려갈수록 마음이 차분해지고 억울함과 분한 감정도 점차 안정이 되었습니다. 화가 날 땐 그대로 표현했고, 증오했고, 분노하기도 하고요. 아픈 기억에 대해 쓸 때는 눈물을 흘리면서 쓰기도 합니다. 그렇게 내 감정에 완전히 집중해서 쓰다보니 신기하게도 죄책감이 점차 옅어졌습니다.     

 

얼마 전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부모가 돌아가시면 어떡하냐고요. 후회하지 않겠냐는 물음이고, 죄책감을 느끼지 않겠냐는 말이기도 하겠죠. 정말 피하고 싶은 생각이지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예전 글에 남겼듯 "그래도 어쩔 수 없다"입니다. 후회 하겠지요. 사람인데 어떻게 후회가 없을 수 있을까요. 그러나 어떤 선택을 하든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님에게 복종하고 희생하며 사는 삶은 후회가 없을까요? 저는 서른 여덟에 부모님과 연락을 끊은 후 세상이 이렇게 평화로울 수 있음에 감탄했습니다. 동시에 제가 잃어버린 이십대와 삼십대가 너무 아까웠어요. 가장 예쁜 나이, 뭐든 할 수 있는 젊은 날을 부모님과 가족에 얽매여 강박증과 불안증에 시달리며 그 시간을 아무것도 도전하지 못한 채 무의미하게 흘려버렸으니까요. 세상에, 마흔 가까이 인생의 대부분을 그야말로 날려버린 것이죠. 그때의 허망함, 분노와 원망, 절망감은 제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후회를 합니다. 가지 않은 길은 늘 아쉽고 후회되는 법입니다. 나중에 후회할까봐 지금을 포기하는 선택지도 있겠죠. 저는 그 선택을 포기했을 뿐입니다. 대신 내 인생에 나를 중심에 두는 걸 선택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해야하는 분명한 단 한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지금 당장 행복할 것, 그것 뿐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의 생일에 내 자리는 없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