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들에게 숨기는 부분이 많다. 물론, 감추려고 의도한 건 아니다. 사람들이 묻지 않았고, 말할 기회가 없었으며, 부끄러운 면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 한 가지를 서른아홉이 되어 독자들을 위해 최초로 고백해 보고자 한다. 제목을 달아보자면 아래와 같을 것이다.
'스스로 끊임없이 의식해 오던 콤플렉스 한 가지를 39세 인생 최초로 공개하다'
최근, 직장 동료와 점심을 먹었다. 멸치 육수로 우려낸 칼국수를 '맛있다. 그것도 겁나' 생각하며 흡입하고 있던 때였다. 동료가 물어왔다.
"선생님. 혹시 동물 닮았다는 얘기 들어보신 적 있으세요?"
그날따라 컨디션이 좋았던 나는 질문의 의도를 단번에 파악했다.
"저를 보며 닮았다고 생각되는 동물이 떠오른 걸까요?"
동료는 어떻게 알았냐고 말했다. 나는 그런 것 같았다고 대답했다. 칼국수를 두세 젓가락 다시 먹은 나는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오가는 이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보기로 결심했다.
"제가 어떤 동물을 닮았다고 들은 적은 없지만, 스스로 여물류를 닮았다고 생각해요"
내 대답을 들은 동료는 "여물류요?" 되물었고, 소나 사슴처럼 초원에서 풀을 잘 뜯어먹게 생긴 동물과 닮은 것 같다고 나는 설명했다. 동료와 나는 한바탕 웃음을 주고받았다. 동료가 웃은 이유는 모르지만, 나의 웃음에는 마흔을 앞둔 사람치고는 입담이 제법이라고 자뻑하는 의미가 조미료처럼 첨가되어 있었다. 동료는 낙타를 생각했다고 말했다. '오! 낙타도 닮은 것 같다' 생각하면서도 현장의 재미를 위해 고개를 떨구며 좌절했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동료는 회사로 돌아가는 길에 사과했다. 본의 아니게 외모를 평가하는 듯 말한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동료의 말이 기분 나쁘게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근무시간 동안 '낙타 닮은 사람'을 검색해 보았다. 별다른 소득이 없어서 '낙타상'을 검색해 보고, '낙타상 연예인'을 쳐보았다. 인터넷 창을 연신 오르내렸다. 마우스 휠 소리가 유난스럽게 들렸다. 드르륵거리는 소리가 사무실로, 방안으로, 마음으로 퍼져나갔다.
고등학생 때 고열로 동네 의원에 간 적이 있었다. 병원에서는 아데노이드 제거 수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코 뒤쪽과 목 사이의 위치하는 편도의 일종인 아데노이드는 일반적으로 성장하면서 퇴화된다고 한다. 그러나 나의 경우에는 아데노이드가 퇴화하지 않아서 코로 호흡하는 걸 방해하고 있고, 목으로 숨을 쉬다 보니 편도가 크게 부어있다고 했다. 의사는 소견서를 써줄 테니 대학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아보라고 권유했다.
어릴 때부터 입을 벌리고 잠을 잤다고 엄마는 말했다. 자는 도중에 코를 골거나 침을 흘렸고, 왜 그러나 싶었지만 그냥 두었다고 했다. 의사는 아데노이드 비대증의 특징을 거울로 설명했다. 거울에 비친 건 광대가 발달하지 못했고, 입이 돌출되어 있고, 부정교합이 있으며, 긴 얼굴과 무턱인 상태의 나였다. 의사는 얼굴 부위를 요목조목 가리키며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아데노이드와 편도염 제거 수술을 받았다. 몇 달 뒤에는 누나가 치아 교정을 시켜주었다. 그럼에도 없던 턱이 생기지 않았다. 광대가 나오지 않았다. 길어진 얼굴이 줄어들지 않았다. 돌출된 입이 조화롭게 들어가지 않았다.
대학생이 되면서부터 외모를 신경 쓰지 시작했다. '기왕이면 사람들이 호감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한 외모를 가지고 사람들 앞에서 반응하기는 어려웠다. '이상하게 생겨가지고 꼴사납게 행동한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생각 밖으로 행동이 곧잘 일어나지 않았다. 거울을 보다가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선택을 하는 경우도 늘어갔다. 사람들과 어울릴 기회가 줄어들었다. 이윽고 만나게 된 순간마다 괜찮은 척, 좋은 척, 웃는 척을 하며 대상에게 속하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외모도 못생긴 게 꾸민다고 평가받는 상황도 두려워했다. 좀처럼 가구지 않았다. 머리카락을 손질하지 않았다. 검은색 옷을 주로 입었다. 외모에서 인위적인 느낌이 나지 않도록 애를 썼다. 그러면서도 화장실에 수시로 들러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보고, 또 보았다. 위축되는 느낌을 볼수록 받았다.
군대를 전역하고 엄마와 성형외과 두 곳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한 곳에서는 턱에 보형물을 넣는 수술을 설명했다. 다만, 보형물을 넣게 될 경우 턱이 생기면서 얼굴이 더 길어 보일 수 있다고 했다. 다른 한 곳에서는 양악 수술에 대해서도 안내해 주었다. 수술이 위험할 수 있고, 재활 기간이 필요하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엄마는 뭐라도 시켜주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수술을 받고 싶지 않다고 했다. 비용이 비싸기도 했고, 무서울 따름이었다.
초원을 누벼야 할 얼굴이라고 스스로 인식하던 나는 최근에 일어난 변화를 실감한다. 무려, 선크림을 바른다. 세안을 하다가 턱을 마사지한다. 헤어드라이를 할 때 돌돌이 빗을 사용하거나 스프레이를 뿌린다.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스쿼트, 윗몸일으키기, 팔 굽혀 펴기를 한다. 러닝도 틈틈이 한다.
거울 속 나를 마주하기 시작했다. 모난 구석이 밀집한 얼굴을 내가 먼저 들여다볼 수는 없었다. 사람들을 만나 왔다. 대학교에서, 회사에서, 대학원에서 많은 사람과 조우했다. 그대로 스쳐 지나간 사람도 있었다. 학업이나 일적으로 교류하다가 헤어진 사람도 있었다. 그중에서 일부는, 몇몇 사람은 꾸준히 만났다.
관계를 이어가며 친밀해지는 데 외모가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히려, 자신을 얼마나 관리하는가에 사람들은 주목했다. 청결함을 유지하고, 가꾸고, 꾸미는 부분에 사람들은 관심을 보였다. 특히, 외모나 관리보다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 같았다. 내가 어떤 말과 행동을 하는지, 가치관은 무엇이고, 삶을 살아가는 자세와 태도는 어떠한지가 관계의 향방을 결정하는 듯했다.
낙타를 닮았다고 말한 직장 동료가 나와 대화하며 느낀 부분을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자리가 있었다. 동료는 나를 떠올리면 '아름답다'는 표현이 생각난다고 했다. 이 표현이 왜 떠올랐는지는 모른다고 했다. 나는 다만 아름답다는 말을 두고두고 회상했다.
내가 사람들과 있을 때 하는 대부분의 말과 행동은 타인을 전제한다. 나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한 말과 행동으로 영향을 받을 타인을 먼저 생각한다. 그로부터 파생될 수 있는 또 다른 영향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그래서 주저하거나 머뭇거릴 때가 많다. 말하는 속도도 느리고, 행동도 어색하다. 타인을 포함하기 위해서이다. 나와 마주한 사람을 존중하기 위해서이다. 그 너머로 내가 당장 떠올릴 수 없는 누군가를 소중하게 여기기 위해서이다.
나는 사랑받고 싶은 욕구로부터 사랑받을 만한 전략을 선택했지만, 나를 드러내지 않고 타인을 비추기 위해 행동했지만, 외모 너머로 존재하는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들을 통해서, 사람들이 주는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느낌을 통해서, 거울 속 나와 눈을 맞추고, 얼굴 부위를 하나씩 살펴보고, 전체를 둘러보고,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외모에 대해 의식하는 정도가 줄어들자,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 것인지 신경 쓰는 정도도 줄어들었다. 외모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니,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줄었다. 나는 알고 있다. 알고 있었다. 다만 받아들이지 못했을 뿐이다. 외모보다, 마음이다. 생김새보다 중요한 건 마음씨이다. 적어도 한 사람의 마음속에서 나는 마음씨가 아름다운 말기 청년이자, 초원을 사랑하는 아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