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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Aug 29. 2016

생각을 전달하기 어려운 그대에게

살아가면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여, 자신의 확고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생각 전달을 회피한 적이 있나요? 저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었어요. 밥을 먹으러 가거나 먹은 이후의 일정, 또는 헤어지는 시기를 정하는 것 까지 단 한 명이라도 곁에 있으면 좀처럼 입을 떼지 못했어요. 말하기에 앞서 상대방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거든요. '혹시, 이런 걸 싫어하면 어쩌지?' 라거나 '먼저 정해둔 게 있는데, 나 때문에 말 못 하는 거면 어쩌지?'와 같은 상상은 저를 우유부단한 사람으로 만들었어요. 물론 처음부터 이러진 않았겠지요. 하지만 기억조차 없는 첫 선택 이후에 꿰매어진 매듭이 여전히 단단한 걸 보니 익숙해져 버렸나 봐요. 이렇게나 괴로워할 거면서.


바꾸기 위해 노력했었어요. 저에게는 배려일 수 있지만, 받아들이는 상대에겐 부담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 그러나 바꿀 수 없었어요. 해소되지 않은 내적 갈등의 골이 깊어진 날에는 눈물도 많이 흘렸어요. 격하게 떨리는 속눈썹을 뒤로하고 생각했죠. '이 세상의 모든 일이 생각만으로 해결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습관이란 참으로 무서운 존재예요. 무의식에 기인하여 자연스레 행해지며, 어느샌가 나의 일부가 되어버리니까요. 말한 이후의 상황을 가정하지 않고, 당장 떠오르는 대로 표현하려 해봐도 옴짝달싹 않는 입이 원망스러웠어요. 또한 부러웠어요.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사람들이요. 스스로에게 확신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잖아요. 확신이 과하면 자만한다고 오해할 수 있는데 저는 그런 느낌을 받진 못했어요. 적어도 감정을 감추는 사람보단 낫게 보였거든요.


사람들은 이러한 저의 모습을 좋아했어요. 하긴, 무엇을 이야기해도 받아주는 상대가 싫은 사람이 있을까요? 때때로 저의 마음과 동떨어진 상황과 마주했을 때의 어색한 반응으로 인해 '가식적이다'는 표현을 듣긴 했지만, 대부분은 '친하다' 또는 '가깝다'의 개념으로 받아들였어요.


그렇다면, 우리는 친해지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일까요? 각 자가 친하다고 느끼는 기준은 다르지만, 저는 서로의 마음을 스스럼없이 털어놓을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필요에 의해 찾지 않으며, 때로는 다툴 수도 있고, 오랜 시간 떨어져 있을 수도 있지만 멀어지지 않는 사이. 1년에 고작 한두 번 만난다지만 마치 어제 만났던 것처럼 편한 사이. 이런 사이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에게 숨김이 없어야 해요. 만약 한 명이라도 숨김이 있다면 일방적인 관계가 되어버릴 거예요.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하는 사람에 의해 이끌리는 관계.


며칠 전 직접적으로 이 글을 쓰게 계기가 있었어요. 현재 근무하고 있는 직장에서의 일인데요. 같은 팀에 속한 선배는 매주 목요일이면 꼬박 하루가 걸리는 외근 업무를 담당하고 있어요. 특히 오전의 경우 외근을 나가기 위해 준비해야 될 업무가 있기 때문에 저와 동료 한 명이 돕고, 둘 중 한 명은 오전에만 외근업무를 지원하고 있어요. 그 날 선배는 저에게 먼저 물었어요.


"특별한 일 없으면 오전에 외근 함께 나갈래요?"

저는 대답했어요.

"나가도 괜찮고 안 나가도 괜찮습니다"

선배는 재차 물었어요.

"가고 싶으면 가고 싶다, 가기 싫으면 가기 싫다 명확하게 얘기해주세요"

저는 다시 대답했어요.

"저는 정말 둘 다 괜찮아서 편하신 대로 한 가지를 선택해주시면 안 될까요?"

이에 선배는 감정이 실린 목소리로 저에게 말했어요.

"아니, 괜찮다고만 말하지 말고, 둘 중에 조금이라도 더 끌리는 게 있을 거 아니야. 내가 하고 싶은 대로가 아니라 너의 생각을 묻는 거잖아"


감정이 실린 목소리는 본연의 의미를 퇴색시키곤 해요. 떨리는 음성에 담긴 그 의미를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데에는 잠시 생각에 잠길 여유가 필요했어요. 그리고 결심에 선 저는 말했죠.

"그냥 제 마음이 이끄는 대로 대답하면 되는데, 너무 복잡하게 생각한 것 같아요. 저를 위해 조언해주셔서 고마워요"


있어요. 잊고 있었지만, 또한 미약하지만 좋아하거나 선호하는 것들은 저의 내면에 깔려 있어요. 단지, 드러내지 못했던 이유는 두려웠기 때문이에요. 굳이 저의 속내를 밝히지 않고 누군가의 의견에 동의한다면, 지금의 관계를 굳건히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에. 하지만 저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네요. 제 마음은 그게 아니었는데. 괜찮다며, 좋다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던 저의 과거를 반성하고 싶어요.


억지로 의견을 만들 생각은 없지만, 앞으로는 좋아하는 것들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자 해요. 혹여라도 이로 인해 누군가와 갈등이 생긴다면, 회복할 수 없는 사이까지 이른다면 우리의 관계는 그 정도였던 거겠지요.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신뢰도 없었으니. 오늘 밤은, 혼자 산책을 나가 묻어 두었던 이야기들을 늘여 놓아볼까 해요. 하염없이 흘려보낸 나답게 살아가기 위한 순간들을 곱씹으려면 꽤 멀리 돌아가야 할 것 같은데. 과연, 저는 무엇을 좋아하던 아이 었을까요? 하나씩, 그리고 천천히 찾아 나갈 거예요. 제 마음이 이끄는 대로요.


이제는 알겠어요. 서른이 다 된 나이에 알아낸 게 서글프지만, 중요한 것은 저의 마음이라는 사실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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