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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Sep 29. 2015

[1] 퇴사 그 후,

일과 삶 사이의 공백을 바라보는 나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백수가 된 첫 날이다.



무엇을 해야 될지 정확히 정하지도 않은 채


덜컥 그만두고 보니 다가올 내일이 조금 두렵기도 하다.



먼저 사회경험을 했던 사람들이  이야기하기로는 


명확한 대안을 찾지 않는 이상 그만두지 말라고 했었다.



나도 동의하는 바이지만 뭐 내가 다니는 동안


그 외에 것들을 찾아 볼 노력을 하지 않으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어젠 어려움에 직면한 남 몰래 찾아갔던


남산을 올랐다.



버스를 타고 올라가는 거에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떻게 올라갈까 생각하다


충무로에서부터 남산까지 '등반'하는 길을 택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만만치 않았다.


첫 발을 뗄 때는 주변 경관이 평온하고 아름답게만 보였는데,


오르면 오를수록


'저건 담대한 남산이야. 절벽이 기가 막히는 군.'하며 숨이 턱 막혀왔다.



현실의 무게와 이상의 가치 사이에 퇴사를 고민하고,


고민을 반복하다 결정적 순간에 단호했던 


나의 모습을 되짚으며


오르고, 오르다 결국 버스를 타게 되었다.



버스 안에는 낮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로 북적였고,


올라가는 차도 옆 풍경은


한산했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멍하니 시선을 빼앗기며 '백수'에 대해 떠올려 보았다.


28년이라는 짧은 인생 안에 처음 백수가 되었다.



사회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고


삶과 삶 사이에 구멍이 되어버린 것 같은


지금의 나는 불운하고 가치 없게 느껴졌다.



운이 좋게도 부족한 '나' 였지만, 그때 보였던 젊은 가능성을 보고


뽑아 준 회사가 있었기에 일찍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기회였는지, un 기회였는지는 모르지만


덕분에 사회라는 곳을 짧게 경험할 수 있었고


지금의 내가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를 만들어 준 곳이라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백수(白手)'를 한자어로 찾아보았다.


네이버 사전에서는 '맨손'이라고 표현한다.


맨손? 맞지 뭐... 아무것도 가진 게 없으니...



그래도 나는 이왕이면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했다.


'백수(百手)'로 해석해보는 건 어떨까!?


손수 자에는 '수단, 방법'이라는 뜻도 있다.



해석하면


'백 가지의 수단 또는 방법'이다.


제법 그럴싸하여 연신 감탄하고 있는 나는


그래 봐야 백수(白手)이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냥 이런 현신을


굳이 긍정적으로 해석하려는 내가 얄미웠다.



남산 길을 지나며 풀들이 이래~ 저래 펼쳐진 곳을 보았다.


햇빛이 은은하게 비춰 특유의 아름다움을 더 했는데,


나뭇가지를 더 깊이 들여다보니 생기발랄한 초록 잎과


간신히 생명만 유지한 갈색 잎이 서로를 품고 있었다.



속으로 '힘든 오늘과 희망의 내일을 꿈꾸는 나와 조금 닮았으려나'


하고 푸념 아닌 푸념을 하기도 했다.



이때 내 귓가엔 '닿을락 말락'이라는 노래가 현실을 달래 주고 있었다.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회사를 다닐 때에는 주로 슬픈 발라드만을 들었다.


동료를 이해하기 위해 잠깐 힙합에 빠져든 적도 있지만,


카멜레온처럼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보호색 정도였던 것 같다.



그런데 처절한 풍의 노래가 아님에도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만들고,


마음이 가벼워지고 신이 난다는 것을 느꼈다.


'어떤 시기나 상황에 따라 선호하는 노래가 달라지기도 하는구나'라는 걸 깨달았다.



이러쿵, 저러쿵 떠들기는 하지만


사실 후회가 조금 남는다.



내 성향상 현실에 안주하는 편이고,


아무런 계획이 없는 상황에서 


위에 남긴 것처럼 어떤 대안이 짠~ 하고 나타나는 건 더욱 아니고.



좋은 사람과 좋은 환경


다시는 오지 않을 나의 26살부터 28살 7월까지의 여정.


그 안의 기억과 추억들은 평생 잊지 않을 수 있도록


가장 깊고 소중한 곳에 보관해야지.



이제 여러 고민들로 가득한 일기장을 덮고,


새롭게  출발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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