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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Apr 22. 2018

신입직원 교육, 첫날

지난 주말에 급하게 맞춘 정장을 입었다. 몸에 꽉 끼는 게 불편하고 낯설었다. 면접 때는 매형의 정장을 빌려 입었었는데.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넥타이를 매고, 그간 고생했다며 차려주신 어머니의 아침상이 있는, 우리 집 풍경은 따스했다. 어렸을 적친구들과 밖에서 뛰어놀다가 아버지의 퇴근시간에 맞춰 집에 돌아와 함께 먹던, 저녁식사가 떠오를 정도로. 요 근래의 우리 집은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듯 조용했는데.

어떤 상사들을 만날지, 함께 일을 배우게 될 동기들은 누구인지, 내가 맡게 될 일은 무엇인지, 밤새 고민했던 흔적이 출근 직전 보았던 거울에 고스란히 쓰여 있었다. '잘 보여야 하는데' 하고 혼잣말을 하며출근길에 올랐다. 낯선 길을 간다는 건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설레어 보이는 사람들이 많은 6호선의 풍경, 기억해야지.

2번의 환승을 거쳐 출구 방향을 따라 걸으니 면접을 보았던, 기업의 건물이 보였다. 제 시간보다 30분 일찍 왔는데 너무 늦게 온 건 아닐까, 입구에 다다라서야 다급해졌다. 터질 것 같은 심장을 애써 억누르며, 들어간 사무실은 여유로웠다. "어서 오세요"라고 반기는 선배의 인사에, 봄에 눈이 녹듯 걱정이 사라졌다. "안녕하세요"라고 화답하며 신입직원을 위해 준비된 장소로 이동했다.

9시가 되자 관리자와의 차담으로 첫 번째 교육이 진행되었다. 내 앞에 놓여 있는 차를 한 모금씩 마시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곁에는 6명의 동기들이 앉아있었다. 이름도, 나이도 모르지만 어떤 꿈을 가지고 입사했는지가 더 궁금했다. 눈가에서 느껴지는 그들의 열정이 나를 그리 생각하게 만들었다. 한 가지씩 알아가기로 다짐했다. 기업의 분위기도, 내가 맡게 될 업무도, 나의 동기들과 그들의 소중한 꿈까지.

"나는 모 기업에서 인턴을 했었어"
"나는 어느 대학교를 졸업했어"
"나는...."

점심식사를 마치고 동기들끼리 모여 자기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소개는 주로 대학교 시절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어느 대학을 졸업했는지, 어느 대외활동을 했는지 하는, 쌓아온 이력들은 각 자의 이름을 크고 높게 꾸몄다. 서울 소재의 대학도 아닌, 그렇다고 특별하게 대외활동을 한 게 아닌 나는 움츠러드는 걸 느꼈다. '그까짓 게 뭐 중요해. 여기에서 동기로 만난 걸...'이라는 마음과 달리, 나는 우물쭈물하며 소개를 마쳤다. 이름, 졸업한 대학교와 나이, 잘 부탁한다는 인사와 함께.


오후 교육 일정은 기업을 둘러보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지하 1층부터 지상 2층으로 되어있는 기업은 좁은 공간을 잘 활용하고 있었다. 특히 내가 일하게 될 사무실은 내가 보았던 공간 중 단연 최고였다. 자리마다 칸막이가 놓여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옆 사람들과 자리가 붙어있는데 칸막이마저 없다니. 문 없는 방에서 어머니의 눈초리를 느끼며 공부하는 거와 다를 바 있을까 싶었다. 아직 교육일정이 이주가 남았으니 칸막이 문제는 자리에 앉게 될 때 생각하기로 했다.

기업을 모두 둘러보고 다시 교육장소로 돌아와 주요 사업에 대해 배웠다. 비영리기관인 만큼 후원자 모집이 중요하다고 했다. 왼발이 나간 후에 오른발이 나가듯 후원자 관리도 신경 써야 한다고도 했다. 오잉, 내가 생각했던 업무는 이런 게 아니었는데. 의아한 마음이 들었지만 동기들의 표정을 살피며 가만히 앉아있었다.

애초에 나는 이 기업이 아닌 산하에 있는 시설에 지원했었다. 하지만 통합 채용으로 진행되는 바람에,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 곳의 직원이 되었다. 쉬는 시간마다 나를 보며 웃고 지나가는 선배들은 무언가 알고 있을 것 같은데. 혹시 내가 했던 발표면접 때문은 아닐까.




발표면접을 하루 앞두고 내가 만든 ppt가 평범해 보였다. 진부한 표현들과 부족한 이력이 다른 면접자들에 비해 눈에 띌 것 같지 않았다. 어떻게 만들어야 가장 나 다울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마지막 슬라이드에 자작시를 넣기로 했다. 시 쓰는 걸 좋아하는 나이니까, 내 감성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로 결심했다. 고민 끝에 '사랑은 교집합'이라는 시를 적고, 저장하며 나의 선택이 틀리지 않기를 바랐다.



사랑은 교집합

사랑은 교집합 인가 봐요
서로 다른 A와 B가 만나 공유 영역을 만들어요

한쪽으로 조금 치우칠 수는 있지만
합집합이 되지는 않아요

기쁜 것은 곱하고 슬픈 것은 나누어요
좋은 추억들은 더하고 나쁜 기억들은 빼요

그리고
우리만의 공통분모 안에서
사랑을 제곱해요


"이 시는 제가 직접 쓴 것인데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직접 읽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면접장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엉뚱해서였을까. 이런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었는데, 나도 덩달아 웃음이 터져 나왔다. 4분이라는 발표시간 동안 침착함을 유지하던 나는, 본의 아니게 관리자들과 직원, 면접자들에게 큰 웃음을 전하며 단상에서 내려왔다.




답을 찾지 못한 나는, 주요 업무를 설명하는 관리자의 말을 듣는 척하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아무렴 어때. 이제 이 곳이 내 직장인 걸 하는 생각으로 멍하니, 들리는 말에 따라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저녁 6시가 되자 수습일지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수습기간 동안 매일 수습일지를 쓰고, 아침이 되면 관리자가 일지 피드백을 준다고 했다. 머리가 아파오는 걸 느꼈지만 "네"라고 대답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끄덕였다.

집으로 가는 길, 2월이라 그런지 하늘에는 짙은 어둠이 깔려있었다. 내일은 어떤 하루가 기다리고 있을까. 계획표는 있었지만, 그 계획표에는 만나게 될 사람과 처할 상황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그래서일까. 평소보다 더 어둡게 느껴지는 세상이 두려웠다.

그때, 내가 걷던 길에 가로등 불빛이 하나씩 들어왔다. 어느새 밝아진 거리에는, 웅성웅성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쏟아져나왔다. 동기들이었다. 얼핏 듣기로는 맥주 한잔 먹고 가자 하는데. 술을 좋아하지 않고, 낯을 가리는 나이지만 함께 어울리기로 했다.

그냥, 어두운 길 위에 가로등 같은 존재가 되어줄 것 같다고 만나지 하루 만에 나는 생각했다. 아직은 어색하여 웃음이 잘 나오지 않지만,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해야지.

밤에 가린, 불빛이 새어 나오는 기업을 뒤로하고 동기들과 발걸음을 맞추어 나갔다.


2013.02.17


그렇게, 친해진 동기들은 5년이 지난 요즈음에도 가끔씩 연락하며 지내고 있다. 이제는 모두가 다른 직장에 다니고 있다. 내가 희망했던 산하 시설에 간 동기도 있고, 그 사이에 결혼을 한 동기들도 있다.


내가 경험한 직장생활 중에서 즐거웠던 시기를 뽑으라면, 단연 신입직원 때이다. 친해진 선배에게 직장 이야기를 역사강의처럼 듣기도 하고, 동기들과 자주 어울리며 각 자가 알아낸 기업의 정보를 나누기도 하며. 처음이니까 설레었고 즐거웠던 그때의 기억은, 상상하는 오늘의 나조차 기분 좋게 만든다.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러나 몸살 기운을 가지고도 조퇴할 수 없는, 두 번째 직장에서의 나는 생각하곤 한다. 그냥, 좋으니까.


2018.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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