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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Jan 04. 2019

변함없이 반겨주는 그대에게

불안할 때, 나는 살아있다는 저릿한 감정이 들었다. 해결되지 않는 고민을 끌어안고 살다가, 머리를 탁-하고 한 대 맞은 듯 깨우치는 순간이 있다. '아, 나는 지금 살아가고 있구나'라고. 느껴진다. 살아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심장이 조여 오고, 숨이 멎을 듯 쉬어지며, 두 눈이 흔들리고 있다는 게. 요즈음의 나는 늘 불안했으므로 낯설지 않은 반응이 되고 말았다.


과거에 집착하고,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며, 미래를 두려워하는 나에게 행복이란 단어가 내려앉을 곳은 내 몸 어디에도 없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제법 밝고 쾌활하게 생활했던 것 같은데, 그때의 내 모습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 날들의 나는 어떠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었을까. 어렴풋하게나마, 행복이란 단어에 애써 집착하지 않을 정도로 웃음이 잦았던 게 기억난다. 웃음이 자연스러운 나. 그게 정말 나였을까. 의심이 든다.


어제 점심에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동료들과 차를 마시러 갔다. 얼이 나간 것 같은 내 얼굴을 보며 동료들은 무슨 일 있나고 물어보았다. 업무에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고 얼버무리던 나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 말이 떠올랐고 곧장 동료들에게 물어보았다.


"제가 환하게 웃는 걸 보신 적이 있나요?"


함께 일한 지 3년이 되어가는 동료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저었다. 언제부터 나는 웃음을 잃고 지냈을까. 회사를 벗어나도 웃음이 나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다. 혼자 있을 때도, 소중한 사람들과 어울릴 때도 나는 그 순간에 몰입하지 못하고 불안한 현실을 되새겼다. '이 시간이 지나면 결국 회사로 돌아가겠지'라는 생각은 어디에서나 나를 괴롭혔다. 감정이라는 망치를 쥐고, 불안이라는 못을 가슴에 박아대던 나는 어느새 상처투성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얼마만이었을까. 오후 6시가 되자마자 퇴근을 한 나는 전 직장 동기들을 만나러 갔다. 평소 같으면 집으로 가서 침대에 눕기 바빴을 텐데. 동기들을 만난다는 생각에 나답지 않게 서류더미를 책상에 올려두고 도망치듯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같은 공간에 있다는 상상만으로 입가에 미소를 번지게 하는 이들. 서툴렀던 사회초년생 시절은 많은 상처를 안겨 주었지만, 평생을 나누고 싶은 우정 또한 안겨주었다.


즐거운 마음으로 퇴근길 지하철에 올랐다. 많은 사람들 틈에 한 번씩 까치발을 들어야 했지만, 내 인상을 찡그리게 만들기엔 역부족이었다. 무엇을 이야기할까. 못 만난 지 3개월밖에 되지 않았는데, 하고 싶은 이야기가 사무실에 두고 온 서류더미처럼 쌓였다. 아직 대학원 진학 이야기도 못했고, 회사생활에서의 부조리함도 말하고 싶고. 숱한 말풍선들을 떠올리고, 또 지우며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발견하자마자 반갑게 인사했던 나. 그런 나를 잘 지냈냐는 인사와 함께 반겨주는 이들. 우리는 서로의 근황을 털어놓으며 저녁식사를 하러 이동하였다. 끊임없이 말하느라 익숙한 길조차 헷갈려 잘못 들어서기도 하고, 호흡이 부족하여 가쁜 숨을 내쉬기도 하며 우리는 식당에 들어섰다. 곱창을 가운데에 두고 열띤 대화를 나누던 우리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 공통점은 바로 미소 띤 얼굴이었다.


미소를 짓고 있는 자연스러운 얼굴은 바라보는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우리의 얼굴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며 뛰어놀던 어린아이처럼 해맑았다. 약속 장소에서 처음 보았을 때 얼굴에 남아있던 긴장이 모두 사라진, 자연스러운 동기들의 얼굴은 나를 덩달아 무장해제시켰다. 비록 그때의 내 얼굴을 못 보았지만 알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거울을 통해 본 내 얼굴이 평소와는 달랐기 때문이다.


거울을 통해 본 내 얼굴은 잊고 있었던 나를 떠올리게 했다.


어제는 유독 말이 길었다. 이야기할까 떠올렸던 말 풍선 중에 지웠던 내용까지 모두 털어놓았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내 이야기를 듣는 게 재미없어서 실증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변함없이 나로서 바라봐 주었던 이들이 참 좋다. 언제였던가. 동기들이 나에게 항상 웃는 얼굴로 세세한 것들까지 배려해주어서 고맙다며,  '수호천사'라는 별명까지 지어주었다. 그랬던 나인데. 심드렁한 얼굴과 타인에게 무관심한 모습이 익숙해졌다.


하지만 동기들과의 시간을 통해 오늘을 긍정적으로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 마음에서는 그 무엇이라도 나눌 수 있겠다는 기쁨이 솟아올랐다. 어제의 만남을 생각하며, 나는 살아있음을 느꼈다. 저릿했던 불안의 감정이 아닌, 두근거리는 행복의 감정으로.


생기가 돌던 거울 속 내 얼굴이 눈 앞에서 마주한 것처럼 생생하다. 살아있다는 게 행복해진 나는 가뿐한 걸음으로 출근길에 오른다. 피곤한 탓에 흐리멍덩해진 눈이 조금 흠이지만.  


또 어떤 만남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까. 설레는 마음으로 카카오톡 프로필을 살피다가 이내 닫는다. 어제의 여운 때문이다. 애써 새로운 누군가를 찾기보다는 지금의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해야지. 동기들과 그룹으로 만들어진 카카오톡 대화방을 보며 끊겼던 대화를 이어 본다. 곧이어 달리는 답장을 확인하며, 얼굴에 긴장이 풀리는 걸 느낀다. 어제의 내 얼굴과 비슷할까. 궁금해진 나는 핸드폰을 켜서 쳐다볼까 하다가 다시 주머니에 넣는다. 아무렴 어때. 지금 나는 충분히 행복해하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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