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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포장해가는 그대에게

by 두근거림

외출을 할 때마다 발길이 머무는 곳이 있어요. 약속에 늦을 것 같아 서두르면서도 이 앞을 지나갈 때면 머뭇거리게 되어요. 그곳은 어느 동네에나 있을 법한 피자가게에요. 다른 가게들에 비해 저렴한 피자를 판매하는 이 가게에는, 유독 포장 손님이 많은 편이에요. 2인용 테이블이 4개밖에 없는 내부 환경도 영향을 주었을 거에요. 배달도 아니고 들고 가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사람들이 포장해가는 건, 저렴한 가격을 제외하고도 맛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피자 만드는 걸 구경한다거나, 치즈의 고소한 냄새를 맡기 위해 걸음이 느려지는 건 아니에요. 동물병원이 옆에 있어서 동물들을 살펴보기 위함은 더더욱 아니에요. 짝사랑하는 사람을 마주치듯 말없이 피자가게 주변을 서성이는 이유를, 포장을 하고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 때문이라는 것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어요.


시장에서 멀찍이 떨어진, 마을버스를 비롯한 차들이 가게 앞을 거침없이 지나가는, 이곳을 오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무표정이에요. 생기가 없어 보인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피자가게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보면 갓 구워낸 피자를 보듯 생기가 넘쳐요. 즐거워 보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들의 가뿐한 걸음걸이를 보고 있으면 덩달아 설레기까지 해요.


무엇이 그들을 기쁘게 할까요. 맛에 특별한 비법이 있는 건 아닐까요. 아니면, 사장님이 마법같은 멘트를 해서 손님을 기쁘게 만드는 걸까요. 그 이유에 대해 오래 고민했지만 알아내지 못했어요. 얼마 전, 어머니께서 포장해오신 피자를 받아 들기 전까지는요.


어머니가 집으로 들어오시는 소리를 듣고 현관으로 마중 나갔을 때, “수호야, 피자 사 왔다”라고 말하며 웃는 어머니의 표정을 보았어요. 사람의 발길이 끊긴 깊은 설산에 소복이 쌓인 눈처럼 새하얀 어머니의 얼굴을 보고서야, 피자를 포장해가던 사람들의 마음을 알 수 있었어요.


요즈음 들어 저는 집에 갈 때 먹을 걸 자주 사가는 편이에요. 부모님께 무엇을 드시고 싶으신지 여쭈어보면 사 오지 말라고 대답하실 게 선명하여, 몰래 사 들고 가요. 피자를 산 날에 “피자 사 왔어요”라고 말하며 현관에 들어서면, 어머니는 녹음된 음성을 틀 듯 “왜 이런 걸 사 왔어”라고 소리치셔요. 혼날 것이 두려운 저는 “제가 먹고 싶어서요”라고 말하며 피자를 식탁 위에 올려 놓아요. 그러면 왜 사 왔냐는 말이 무색하게 어머니께서는 피자를 덜어먹을 접시 3개를 식탁 위로 가져다주셔요. 피자를 먹으며 맛에 대해 품평하는 부모님을 보며, 피자 한 판으로 식탁에 모여 앉은 우리 가족을 보며, 저는 피자를 포장해가던 그 사람들을 생각했어요.


자녀를 생각하는 어머니, 아내를 생각하는 남편, 동생을 생각하는 누나, 언니를 생각하는 동생. 그동안 저는 피자가게를 나오는 사람들에게서 누군가를 생각하는 마음을 본 게 아닐까요. 저 또한 피자를 포장하던 날에, 그 길을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가족을 생각하는 아들로서 보이지는 않았을까요.


힘들고 괴로운 일이 가득한 세상. 고비 너머 고비가 기다리는 나날. 매 순간 맞닥뜨리는 어려움들을 지치지 않고 견딜 수 있게, 끝내 이겨낼 수 있게 하는 건 피자를 건넬 수 있는 소중한 누군가가 우리 곁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까닭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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