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바람이 부네요. 일기예보에 없던 가랑비가 쏟아지고 있어요. 거리에는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사람들 투성이에요. 당혹감이 서린 얼굴로 건물 내로 뛰어갈 법도 한데, 주위에는 표정을 찡그린 사람이 없어요. 단 한 명도요. 평일 낮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들뜬, 금요일은 빗소리와 함께 흐르고 있어요.
#1
저는 국민학교, 아니 초등학교에 다닐 때 곧잘 우산을 두고 갔어요. 아침부터 비가 오는 날이면 쓰고 등교했으므로 괜찮았지만, 오후부터 비가 내릴 때에는 속절없이 온몸을 적셔야 했어요. "수호야, 오늘 비 온다니까 우산 챙겨라"라고, 엄마는 거듭 말씀하셨지만, 지각할까 봐 급하게 뛰어나가던 제 손에는 대부분 실내화 가방만 들려있었어요.
때로는 친구의 우산에 머리만 밀어 넣기도 하고, 때로는 시장에 쳐진 천막들 아래로 뛰어다니고, 때로는 비를 피하는 걸 포기한 채 집으로 걸어가기도 했어요. 학교에서 집까지의 거리는 걸어서 20분이었고, 버스를 잘 타지 않던 시절이기도 했지만 젖은 몸으로 버스에 타는 게 영 불편했어요. 도처에는 요즘과 달리 우산을 파는 곳이 드물었고 우산 값을 감당할 돈 또한 초등학생인 저에게는 없었지요.
저 같은 학생들이 많았는지, 비가 오는 날이면 초등학교 정문에는 자녀를 기다리는 학부모들이 많았어요. 핸드폰이 상용화되기 전이라 우산이 없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습관처럼 두리번거리며 하교했어요.혹시 엄마가 오시지는 않았을까, 아빠가 오시지는 않았을까 기대하면서요. 엄마나 아빠를 발견한 학생들은 큰 외침과 함께 기쁨으로, 모여든 사람들 속을 우산 없이 빠져나가는 학생들은 슬픔을 느끼며 집으로 향했어요.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았던 우리 가족이었기에, 또는 저의 실수로 우산을 챙기지 못했기 때문에 비를 맞으며 집으로 갔어도 불평하지 않았어요. 비록, 우산을 건네기 위한 그 무리를 빠져나올 때면 주늑드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요. 그러다가 가끔씩, 아니 손에 꼽을 만큼 적었지만 엄마는 우산을 씌워주기 위해 초등학교 입구에 찾아온 적이 있었어요.
기대하지 않고 학부모와 학생들이 뒤엉킨 인파 속을 지나가던 저에게 "수호야"라는 외침이 들리면, 저는 실내화 가방을 흔들며 엄마에게 달려갔어요. 그럴 때면 비가 저를 위한 특별한 선물처럼 느껴졌어요. 기대를 실망으로 숱하게 바꾼 것 또한 비이지만, 이따금씩 우산을 든 엄마와 만났던 경험은 당시에 제가 알고 있던, 그 무엇보다 달콤했어요.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나 먹고 싶은 음식을 말하던, 싱글벙글 웃으며 엄마에게 재잘대던 저는 세상을 다 가진 듯한 마음이었어요.
#2
누나가 결혼하고 쌍둥이 조카들이 태어났어요. 이름은 우진이와 서진이에요. 조카들의 부모님, 그러니까 누나와 매형이 맞벌이를 하는 관계로 육아는 엄마의 몫이 되어버렸어요. 다행히 유치원에 다니고 있어서 등원과 하원을 도와주고, 누나 또는 매형 중 한 명이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돌봐주고 있어요.
5살 된 우진이와 서진이는 뛰어노는 걸 좋아해요. 엄마의 바람대로 점잖게 앉아서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읽으면 좋을 텐데, 놀이터에 데려달라고 조르는 조카들을 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운지, 엄마는 이전과 다르게 이른 저녁잠에 들기도 해요.
비가 오는 날이면 엄마는 고민하셨어요. 조카들이 덜 컸을 때는 유모차로 등 하원을 했지만, 어느새 15kg이 넘는 쌍둥이들의 유모차를 밀며 집으로 데려오기에는 버겁다고 했어요. 이 얘기를 듣고도 출근을 해야 되었기 때문에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했던 저는 죄송한 마음이 들었어요.
며칠 전이었어요. 그날도 비가 내렸어요. 퇴사를 했고, 대학원에도 가지 않는 날이어서 집에 있던 저에게 엄마는 "있다가 애들 하원 할 때 비가 오면 안 되는데"라고 혼잣말처럼 말했어요. 그 말을 듣고 "있다가 비 오면 나랑 같이 우진이랑 서진이 데리러 가자"라고 대답하자 엄마는 알겠다고 했어요.
하원 해야 될 시간이 다가왔지만 여전히 비가 내렸어요. 빗방울이 가늘게 내리고 있으므로 엄마는 각 자 한 명씩을 데리고 쓰자고 했어요. "우진이, 서진이 집에 갈 준비 할게요"라고 유치원 선생님이 말했어요. 그 말을 들으며 아이들을 기다리는데, 어릴 때의 제가 떠올랐어요. 그때는 엄마나 아빠가 오시지는 않았을까 기대하는 입장이었지만, 이 날은 기다리는 입장이 되었어요. 우산을 들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게, 이렇게 설렌 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어요.
"삼촌", "할머니" 하며 달려오는 조카들을 보며 미소가 지어졌어요. 신발을 신기고, 우산을 함께 쓰고 집으로 가는 길에 "삼촌도 우리 집에 갈 거야?", "우리 집에 가서 공룡 놀이하자" 하며 재잘대는 모습에서 엄마와 나란히 집으로 돌아가던 초등학교 시절의 저를 생각나게 했어요.
비에는 여러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있어요. 또한 그 이야기는 감정으로써 생생하게 기억되어요. 같은 하늘 아래에서 함께 맞는 비이지만 누군가는 기쁨을 느끼고, 누군가에는 슬픔을 느낄 수 있어요.
어린 시절의 저는 비를 맞는다는 사실보다 우산을 챙겨주러 오셨던, 다른 학생들의 환희의 섞인 목소리와 대조적으로 자주 슬펐지만, 한 번씩 예기치 않게 우산을 들고 찾아온 엄마 덕분에, 그 기억에 의한 기쁨 덕분에 저는 금요일 오후. 비에 온 몸이 젖어가면서도 기꺼이 미소를 지어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