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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기부, 정다운 세상

by 두근거림

연말이 되었다. 거리에는 새해를 준비하는 이들로 분주하다. 옷차림은 두꺼워졌지만 마음은 가벼워진다. 올해 못다 이룬 목표들을 내년의 나에게 인계하는 이 시기에는 "너도 한 번 당해봐라" 하는 못난 심보가 드러나기도 한다.


온갖 조명들로 치장한 크리스마스 트리들이 들어서고, 사람들로 북적이는 번화가에서는 연말 분위기를 실감할 수 있다. 사람들의 표정은 소복이 쌓인 새벽녘 눈처럼 부드럽고, 걸음은 추위를 잊은 듯 여유 있다. 매서운 바람이 불면 온몸이 시리면서도 연말연시는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하기에 따뜻하다.


또 하나, 연말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기부이다. 빨간 점퍼를 입고 종을 두드리는 사람들이 거리에 나타난다. 구세군 자선냄비 활동을 돕는 이들이다. 일정한 간격으로 퍼지는 종소리를 듣고 있으면 절로 귀 기울이게 된다. 누군가 자선냄비에 기부를 하는 모습이라도 발견하면 미소가 베어 나온다.


과거에 한 모금단체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사람들에게 기부를 요청하는 일은 어려웠다. 손가락질을 받거나 욕설을 들은 적도 있다. 추운 날씨에도 방한도구들에 의지한 채 근무해야 되는 환경이었지만, 2년 이상 활동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사람들의 따스한 마음에 있었다.


"추운 날씨에 고생이 많아요" 라며 따뜻한 음료를 손에 쥐어주던 아주머니, "좋은 일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며 모금 활동을 격려해주던 학생, "저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이 있었네요" 라며 기부하면서도 적은 금액이라며 쑥스러워하던 아저씨가 생각난다. 우리는 모두 이웃이다. 이들이 '나'라는 이웃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베풀어준 덕분에 기부에 동참해달라는 메시지를 목청껏 전달할 수 있었다.


최근, 장선순 할머니의 기부 활동을 알게 되었다. 네파에서 진행하는 따뜻한 세상 캠페인에 소개된 글을 통해서였다. 올해로 79세가 된 할머니는 2015년부터 작년까지 64만원을 기부하셨다고 한다.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다. 할머니의 생활환경에 그 이유가 담겨있다.


출처: 네파 따뜻한 패딩을 드립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지하철 택배로 벌어오는 수입과 기초연금 40만원으로 생활을 유지하고 계시다. 이 금액으로는 기부 활동을 하기가 어려워 폐지, 알루미늄 캔, 플라스틱 등 온갖 고물을 모으고 팔아서 기부금을 모으신다고 한다. 기부에 대한 할머니의 마음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할머니의 생애에서 짐작해볼 수 있다.


어머니가 집을 나간 8살 때부터 할머니는 집안일을 도맡으셨다고 한다. 밥 해 먹을 여유가 없어 이웃집 밭에서 감자를 캐 먹으며 지냈으며, 21세에 결혼한 뒤에는 소쿠리와 돗자리를 떼다 노점 장사를 하셨다고 한다. 어렵게 모은 돈으로 월곡동에 도자기 가게를 차렸지만 IMF 외환 위기가 터지며 가게는 망했고, 남편은 심근경색으로 쓰러졌다고 한다.


할머니는 역경 속에서도 아들 셋을 키우고, 생활비를 아끼며 매년 기부를 실천하고 계시다. 만약 내가 할머니의 입장이라면 어떠했을까. 진작에 포기하고 말았을 것 같다. 경제적 어려움과 자녀들의 기대, 남편의 건강 악화는 한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무게임이 틀림없으니까. TV에서 배고픔에 떠는 아이들을 보며 기부를 결심했다는 장선순 할머니. 자라나는 아이들은 어린 시절 할머니께서 겪었던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은 아니었을까.


같은 돈이라도 나와 할머니가 갖는 느낌은 다를 것이다. 나는 그동안 나만 생각했지만, 할머니께서는 이웃을 먼저 생각했다. 10원짜리 동전을 발견해도 나는 상체를 숙여 줍지 않았다. 10원의 가치를 낮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할머니는 "입고 먹는 것 아껴 번 돈인 만큼 내 10원은 남들 10억 원만큼의 가치"라고 말씀하셨다. 물론 10억만큼의 가치가 실제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할머니께서 10원짜리 동전 한 개를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시는지 느낄 수 있다. 그 금액들이 모여 어려운 이웃들에게 따뜻한 한 끼, 두터운 외투, 방 안의 온기로 전해졌다고 생각하니 몹시 부끄러웠다.


네파에서는 할머니의 기부 소식을 듣고 할아버지 것까지 함께 패딩을 선물했다고 한다. '따뜻하게 겨울을 보내시지는 않을까?' 하는 안심보다 우려가 앞선다. 작년 여름에는 폐지를 줍다가 더위로 쓰러지신 적이 있다고 하던데. 괜찮으신 걸까. 기부도 좋지만 할머니의 건강을 먼저 생각해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출처: 네파 따뜻한 패딩을 드립니다


연말이 되면 유명인사들의 고액 기부 소식이 눈에 띈다. 어느 단체에 어떤 의미로 기부했는지보다 그 사람의 이름과 기부 금액이 화제가 된다. 기부는 옳다. 다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이면에는 알려지지 않은 기부자들의 선의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는 걸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이웃들의 나눔이 우리 세상을 밝히고 있다. 콩 한쪽도 나누어 먹기 어려운 시대이다. 불황은 지속되고, 경쟁은 언제나 치열하다. 주변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며 가진 것을 기꺼이 나누어 주는 이웃들 덕분에 우리나라는 여전히 맑다. 소중한 이름들을 일일이 확인할 수는 없지만, 스스로가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 네파에서는 매년 따뜻한 세상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선행을 한 미담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다는 의미로 따뜻한 패딩을 전달하는 캠페인이라고 합니다. 아래의 링크를 통해 들어가시면 더 많은 미담 사례와 캠페인의 취지를 확인하실 수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 참고 자료

1. 네파: 따뜻한 패딩을 드립니다

2. 세계일보: 고문 팔아 십시일반... 4년간 64만 원 기부한 할머니

3. 이데일리: 10억 부럽지 않은 64만 원... 폐지 할머니의 값진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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