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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May 03. 2019

인생을 지금, 여기에서 다시

혹시, 변화를 위해 무언가를 시도하다가 중간에 포기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혹은, 어떻게 변화해 나갈지 계획을 세웠다가 시작을 앞둔 시점에서 마음을 돌린 적이 있으신가요. 아니면, 계획도 세우지 못한 채 방황하고 계신가요. 


지난 3년 동안 현실에서 해결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글로 옮겼어요. 글의 끝에는 저를 포함한 사람이나 상황이 어떻게 변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적었어요. 이렇게 글을 끝맺음으로써 변화가 시작되는 줄 알았어요. 그러나, 일시적인 위안을 얻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삶의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어요. 저는 반복했고, 또 다른 사람이나 상황에 마주하게 되면 '어서 글로써 표현해보고 싶다'라고 생각했어요.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믿었거든요.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제 마음껏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글이라는 도피처가 있었어요. 불만족스러운 일이 생기면 저는 줄곧 글을 쓰는 상상을 했어요. 어떠한 조건도 없이 묵묵히 받아주는 화면 속 빈 공간에 고민을 털어놓으면 행복했거든요. 보고 싶을 때 언제든지 꺼내어 볼 수 있고, 싫증이 나면 아무런 연락도 없이 들여다보지 않아도 되는, 오직 저만을 위한 존재였으니까요. 


이러한 나날들이 현실에서의 부적응을 강화한다는 걸 최근에야 깨닫게 되었어요. 극은 극으로 통한다는 말이 있지요. 현실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 예를 들어 아버지와 저의 관계에서 문제가 생겼다면 그건 아버지와 제가 대화로써 풀어야 해결되는 거지만, 저는 글로 표현하며 혼자 풀었어요. 당연히 상대방은 아무렇지 않게 저에게 상처 주는 행동을 반복했고, 저는 고통을 앓으면서도 컴퓨터를 켜고 빈 화면을 채워가며 독백했지요. 상대방은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제 표정이나 행동을 보고 답답하거나 어려워했을지도 몰라요. 그러나 혼자 고민하며 납득하는 게 익숙한 저의 습관은 당연한 것이라고 인식했지요. 


심한 우울감을 겪었어요. 누워만 있고 싶고, 어떤 일을 해도 오래 지속하기가 어렵고, 낯선 무언가에 도전해야 되면 심장이 두근거렸어요. 첫 번째 직장에서 퇴사하면서 겪게 된 이 증상은, 두 번째 직장을 퇴사하면서부터 다시 시작되었어요. 그동안의, 딱히 고민하거나 노력하지 않아도 주어지는 삶은 편했어요. 나이에 적합한 과정을 밟으면 되었지요. 의문이나 이의를 제기할 필요가 없었어요. 대부분 그렇게 살았고, 살고 있거든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한다는 막연한 과정은 순리로써 받아들여졌어요. 


사회가 이끄는 대로, 엄마와 아빠가 조언하는 대로, 친구들이 말하는 대로 행동하기만 하면 되었지요. 문제가 심화된 시점은 두 번째 직장에 입사할 때이지만, 일찍이 저는 문제를 경험하고 있었어요. 저를 아낀다는 명목으로 위험해 보이는 그 어떤 행동도 용납하지 않았던, 궁극적으로는 제 생각을 존중해주지 않았던 아버지와 결혼을 하고 누나를 포함하여 6명의 식구를 보살펴야 했던 어머니는 저에게만 관심과 애정을 쏟을 겨를이 없었어요. 아마도 어린 시절의 저는 사랑받는 위해서는 남들이 좋아할 만한 표현을 하거나, 그런 표현을 찾지 못했을 경우 자제하며 상대방을 최대한 맞춰가는 게 유일하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초등학교 때는 친구들과 친해지기 위해 사소한 것이라도 도와주려고 했어요. 친구들이 먼저 도움을 요청한 것도 아니었지만, 도와주어야만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필통에서 새로 산 지우개를 꺼내어 놓고, 친구들이 지우개를 빌려달라고 요청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눈에 잘 띄는 곳에 두었던 기억이 나요. 중학교 3학년 때는 이상한 경험을 하기도 했어요. 1학기 때까지는 게임도 같이 하고 장난도 치며 친하게 지내던 무리가 있었는데, 2학기 때 멀어진 적이 있어요. 오해가 있거나 다툰 것은 아니었어요. 단지,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나 행동이 떠오르지 않아서 멀어졌거든요. 친구들은 평소처럼 대했지만 저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될지 고민하다가, 결국에는 침묵했거든요.


우울이라는 감정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어요. 저는 저를 표현할 수 있는 여러 감정들을 상대방이 실망하거나 불편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로 억눌러왔어요. 용기가 나지 않았어요. 솔직한 내 모습을 보이면 떠나갈 것만 같고, 정말 떠나가는지 아닌지 시도해 보기에는 당장의 관계가 깨질까 두렵고, 저에게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어떤 것도 임의로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었어요. 


어떻게 해야 반복되어 온 저답지 못한 삶을 바꿀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시도하려다가, 시도했다가 이내 돌아섰어요. 그럴듯한 핑계를 대면서요. 이를테면 '어차피 이전으로 다시 돌아갈 거다', '나에게는 자격이 없다', '헛된 희망이다'처럼요. 


그러다가 우연히 한 문장을 발견했어요. 이 문장을 곱씹으면서 저는 희망을 발견했어요. 어둠으로 잠식되어 있던 마음에 환하게 빛이 비치는 걸 느꼈어요. 왜 이토록 쉽고 간단한 방법을 이제 깨달았을까요. 분명 이전에도 보았던 문장인데, 당시의 저는 이 문장을 통해 삶이 변화할 수도 있다는 울림을 받지 못했던 거 같아요. 그때보다 쌓인 경험이 희망을 부르는 문장을 달리 보았을 까닭이겠지요. 


만약, 당신의 삶에서 기적이 일어난다면?     


기적이 일어난 시점에서의 저를 보았어요. 표정은 자연스럽고 마음에는 걸림이 없으며 행동에는 자신감이 넘쳐 보여요. 이러한 모습이 단지 희망사항이 아니라는 것을, 마음먹기에 따라 지금부터 되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생각에 그쳤던 일들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만이 저를 바꾸어가는 유일한 방법일 거예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생각은 일시적인 위안을 주지만 변화까지는 이어지지 않거든요. 최근에 본 <해결중심 치료로 상처 치유하기>라는 책에는 저의 생각을 뒷받침하는 내용이 있어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그것이 왜 발생했는지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하고 있는 행동을 바꾸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자신이 반복하고 있는 행동을 찾아야 한다. 과거는 확실히 어떠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영향력을 행사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거가 우리 미래를 써나가도록 내버려 둘 필요는 없다. 또한 현재의 우리가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영향을 끼치게 두어서도 안 된다. 과거에 일어난 일을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지배당하지 않고 당당히 과거와 마주 볼 수 있다.


이제부터 저는 변화를 위해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드릴까 해요. 때로는 과거를 들춰보기도 하고, 때로는 우울한 감정을 토로하기도 하겠지만, 그럼에도 행동으로써 나아가는 모습을 통해 저뿐만 아니라 비슷한 어려움에 처한 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요. 


외출할 준비를 마치고 신발을 신기 전에, 전신 거울을 보는 습관이 있어요. 가끔은 급한 나머지 거울을 그냥 지나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거울 앞에 서서 꾸민 저를 살펴보아요. 마치 공항 검색대에 선 사람처럼 심각하기 그지없어요. 대다수의 검문을 통과한 날은 외출을 하지만, 일부의 검문을 통과하지 못한 날은 중요한 약속이 있더라도 취소하고 외출을 하지 않았어요. 


머리스타일이 이상한 것 같고, 옷차림도 마음에 안 들고, 피부에는 뭐가 이렇게 많이 난 것인지, 사람들 앞에 이 모습을 하고 설 자신이 없었거든요. 요즘에는 검색대를 통과하지 못하는 날들이 다수였어요. 전신 거울 앞을 서성이다가 우울한 표정을 짓고는 이내 돌아섰지요. 


하지만, 이제는 알아요. 저의 기우였다는 것을요. 저만이 제 모습을 예민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요. 아무도 저를 유심하게 쳐다보지 않을뿐더러, 외면에 다소 독특한 부분이 있더라도 저를 존중해주는 마음에 자그마한 흠집도 낼 수 없다는 소중한 사람들의 진심을요. 


어딘지 모르게 어리숙해 보이고, 부자연스럽고, 끝내 실패할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행동으로써 도전해 볼게요. 오늘부터 기적처럼 달라지는 저와 여러분의 하루를 함께 응원해 보아요. 


검색대를 거쳐 신발을 신는다. 이내 거울에서 보았던 마음에 안 드는 구석들이 솟구친다. 변화하기로 한 나는 이에 굴하지 않는다. 기우이다. 기우이다. 되돌아가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집에는 평안한 것들로 가득하지만, 또다시 우울해할 뿐이다. 내가 살아가는 곳은 문밖에 있다. 저곳에 진짜 세상이 있고, 삶이 있다. 


문을 여는 순간 기적은 일어난다. 그 무엇도 섣불리 판단하지 말고 경험하며 한 가지씩 마음속에 채워나가자. 아직까지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그저 상상일 뿐이다. 


더 이상 물러서지 않기로 결심한 나는 땀이 밴 손으로 문을 연다. 햇살이 두 눈으로 쏟아진다. 길을 걸으며 사람들을 만나고 상황들에 맞닥뜨리며 , 더 이상 집으로 처리해야 될 숙제를 가지고 오는 일에 전념하지 않고, 그때그때 해결하고자 다짐했다. 해 보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모르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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