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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May 06. 2019

나에게 머물러보는 것

사람의 성격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 타고난 성향과 어렸을 때의 환경이 성격을 형성되면 성인이 되어 수정하기 어렵다. 삶을 뒤흔드는 사건이 발생하면 변화가 쉽겠지만, 이러한 변화는 언제 이루어진다는 정확한 시기가 없을뿐더러 되려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불만족스러운 성격을 받아들이며 살아가야 되는 될까. 생각이나 감정의 표현이 어려워 괴로워했던 그동안의 삶을 되풀이하는 게, 나에게 옳은 걸까. 의구심이 들었다. 다행히도 그저께 나에게는 기적이 일어났고 못할 게 없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점차 구체적인 목표를 세워가며 달성해가겠지만, 그보다 앞서 지난 내 모습을 떠올려보고 당시의 생각, 감정, 행동에 충분히 머물러 보기로 했다.  


특정 상황에 대해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떤 감정을 가졌는지, 어떤 행동을 취했는지 머물러보며 스스로에 대해 깊이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변화는 이루어질 수 있다. 어제까지 길에서 아는 사람을 먼저 보게 되면 인사를 해야 될까, 말아야 될까 고민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큰 소리로 상대방의 이름을 외치며 손을 흔드는 것만이 변화가 아니다. 이러한 변화는 오히려 비현실적이다.


'내가 길에서 아는 사람을 먼저 보게 되었는데 얼굴만 아는 사이이고, 먼저 인사를 했을 때 어떻게 반응할지 몰라서 그냥 지나쳤다.'라고 되돌아보았다고 하자. 이때의 주된 감정이 '후회'라고 한다면, 다음번에 만나게 되었을 때는 상대방을 큰 소리로 부를 자신이 없으니 가까이 다가가서 인사를 시도해 볼 수 있다.


반면에 '내가 길에서 아는 사람을 먼저 보게 되었는데 어설프게 아는 사람에게 굳이 인사를 하며 아는 체하고 싶지 않다.'라고 되돌아보았고, 이때의 주된 감정이 '편안함'이라면 그냥 지나치는 게 옳다. 남들에게는 아는 체하는 게 건강한 모습으로 보일지라도 내가 만족한다면 괜찮다.


머물러보기 연습을 위해 어제의 내 하루를 되돌아보았다.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바로 머물러보는 게 좋겠지만, 아직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무심코 넘어갔던 상황들을 떠올려보며 하루를 음미해 보기로 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대중적이지 못한 생각이나 감정, 행동이지만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야만 되는 게 아니므로 진실되게 떠올려 보았다.  


#1 시큼쓸쓸하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 버스를 타고 이동하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뒷자리에 앉은 아저씨가 갑자기 가래를 끓는 소리를 냈다. 허공에 흥-하고 코를 푸는 소리도 냈다. 그보다도 진하게 풍겨오는 술냄새는 당장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게 만들었다. 짜증이 났다. 어떠한 사정이 있는지 모르니 이해해야 된다는 생각을 부수고, 짜증이라는 감정이 솟구쳤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소리에 민감했다. 시끄러운 소리를 잘 견디지 못했다. 늘 보면 조용한 장소를 선호한다. 카페, 도서관, 집이 나에게는 가장 익숙하고 편안한 곳이다. 한편으로는 상대방이 내 말에 집중하고 있지 않다가 얼굴을 찌푸리며 "뭐라고?' 하며 되물으면 무시받는다고 느꼈다. 지금은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스무 번이고 웃으며 다시 말하지만, 고등학교 시절까지만 해도 무시받는다는 느낌이 강했다.


이런 나에게 소리는 중요하고, 소음은 불편했으나, 누군가가 하는 말에 나부터 귀를 기울여야 상대방이 내 말에도 귀를 기울여준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므로 나는 어디에서든지 사람이 내는 소리를 허투루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 소리가 심장을 요동치게 만들 정도로 나를 괴롭혀도, 견뎌내는 것이 예의라고 믿었다.   


만약, 다시 그 버스로 돌아간다면 신맛처럼 나를 톡- 쏘는 그 상황에서 자리를 옮겼을 것이다. 그 아저씨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보다 당장의 내 감정이 우선이니까. 혹시라도 뒤의 아저씨가 내가 이동하는 것으로 싼 한 톨만큼의 의구심이라도 품을지언정, 짜증이 난 내 감정을 안전하고 조용한 자리로 옮겨서 달래는 게 더 중요하다.


#2 달짝지근하다


일주일 중에 하루, 주말이면 여자 친구를 만난다. 이 시간만큼은 대학원 공부와 취업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해방된다. 누군가에게 온전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 서로의 세계에 빠져 함께 탐험하는 것은 어떠한 모험보다 설레는 경험을 준다.


한 주 동안의 일상을 대화하며 나누고, '고생 많았다'라는 눈빛을 주고받을 때 나는 달콤한 맛을 느꼈다. 설탕이 듬뿍 들어간 마카롱을 베어 먹듯, 머리가 환희로 가득 찼다. 어느 공연장에서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두 눈 살포시 감고 들었을 때의 전율처럼, 달콤함이 온몸으로 점차 퍼져나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고마워"라는 말을 건넸다. 불안하고도 막막한 내 하루를 따스하게 지휘해 준, 그럼으로써 안정적으로 제 자리를 찾아간 내 마음에 대한 감사의 뜻이었다.


만약, 이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나는 "요새 일도 안 하고 고민이 많은 나를 변함없이 대해줘서 고마워"라는 말을 건네고 싶다. 내가 말한 "고마워"는 어떤 의미에서의 고마움인지 명확하지 않다. 추상적인 표현보다는 명확한 표현이 대화에서는 유익하니까. 진심이 더욱 잘 전달될 테니까.


#3 밍밍하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내일 해야 될 일을 생각했다. 고민 끝에, 임시 공유일이라서 도서관이 문을 닫으니 집에서 공부하자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는 잠이 들었는데, 돌이켜보면 다 큰 성인의 계획이라고 하기에는 간단하고 막연했다. 하지만 계획을 세우는 거에 미숙한 나는 어떤 공부를 어떻게, 얼마만큼 해 나갈 것인지 구체화하는 게 어렵다고 느껴졌다.


그동안의 나. 대충 넘어가고, 때우다가 위기가 생겨야 모면하기 위해 노력하는 내 모습에 싫증이 났다. 계획하에 모든 일들이 척척 해결되면 좋을 텐데. 언제나 내 일상은 뒤죽박죽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이면에는 감정이 있었다. 그때그때 떠오르는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혼자 있을 때마다 그 감정에 압도되어 마비되었다. 위로받기 위해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글을 썼다. 그 감정을 충분히 느끼지 않고 해결해야 되는 것으로만 여겼다.


감정의 노예처럼 끌려다니는 삶을 살았다. 들끓어 오르는 감정이 있는데, 그게 어디서부터 어떻게 생겨난지도 모르고 무작정 풀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 허망하게 지나간 좋았던 시절들을 회상하며 간이 되지 않은, 밍밍한 맛을 느꼈다.


어젯밤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나는 추상적인 계획을 세우기 위해 고민하기 않을 거다.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과 만나 한주 동안의 괴로웠던 마음을 털어낸지 얼마나 되었다고, 느끼는 게 고작 불안함이라니. 내일의 일은 내일의 나에게 과감히 맡기고, 나는 오늘을 되뇌며 충분히 머무를 필요가 있었다.


애초에 완벽한 계획이란 없다. 끊임없이 수정하게 되는 게 계획이다. 또한 계획에는 목표가 있다. 목표가 지점이라면 계획은 나아가는 길이다. 아무런 목표가 없는데 이런저런 계획을 세워봤자 달성되지 않는 게 당연했다. '나는 왜 이럴까' 하고 자책해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지 않은 게 옳다. 목표 세우기는 점차 연습하기로 스스로와 약속했다. 또한, 격려한다는 마음으로 나에게 소금 반 스푼을 넣어주었다.   


그리고


습관이라며, 나는 원래 그렇다며 무심코 지나치는 생각, 감정, 행동에는 진실된 내가 담겨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넘어가기에는 만족스럽지 않고 변화하고 싶다면 다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유체이탈을 하듯, 영혼으로 빠져나온 내가 눈 앞에 놓여있는 육체를 바라본다고 상상해보자. 천천히,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 곳곳을 모두 살펴보자. 그곳에는 하루를 충실하게 보낸 진짜 내가 있다.


우리는 각 자가 스스로에 대한 박사이다. 의사이고, 선생이다. 내가 했던 생각, 감정, 행동들에 충분히 머물러보고, 되돌아봄으로써 스스로에 대한 존엄을 갖고 긍지 있는 하루를 보낼 수 있다. 희망고문이 아니다. 기적은 이미 일어났고, 내일 마주하게 될 하루는 오늘과는 분명 다를 테니까.    


심호흡을 하며, 나에게 머물러보자. 자신감 넘치는 새로운 하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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