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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May 09. 2019

마음의 문을 통해 관계를 맺자

우리는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고독에 익숙한 성향이라도 연락을 주고받거나 만나는 최소한의 관계는 있다. 이러한 관계는 자율성에 기초하지만, 필수적인 경우도 있다.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가 그것이다. 이웃보다 못한 사이가 되는 경우도 드물게 있지만, 우리는 가족 내에서 안정적인 관계를 경험하며 성장한다.


여기에 또 하나의 필수적인 관계가 있다. 직장 내에서의 관계이다. ‘일’을 한다는 요량으로 취업했지만, 수많은 ‘관계’의 문턱은 ‘일’보다도 마음을 어지럽힌다. 어렵게 취업한 직장에 나를 괴롭게 만드는 한 명의 상사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 한 명만 없다면 회사생활은 안정적이며, 미래를 꿈꾸어나갈 수 있을 텐데. 내일 출근할 걱정으로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쉬지는 않을 텐데.


친구 A에게서 상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어떤 노력을 기울여도 상사의 마음에 들기는 어렵다고 했다. 진행하는 일마다 지적을 받는 바람에 친구는 긴장하기 일쑤였다고 한다. 긴장한 사람은 부자연스럽다. 머릿속은 온통 '실수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친구는 가뜩이나 서툴렀던 업무에 익숙해지기 어려웠다고 한다. 아무리 직장에서 상급자와 하급자로 만났더라도 관계라는 건 기본적으로 주고받는 것인데. '단 한 번이라도 내가 왜 실수를 자주 하는지 먼저 물어봐 주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고 친구는 설명했다. 


어떻게 하면 자신을 괴롭게 만드는 직장 상사와의 관계에서 스스로를 지키며 근무할 수 있을까. 친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보이기.' 방법을 썼다고 한다. 납득하기 어려운 일로 상사가 트집을 잡아도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따르고 보았다고 설명했다. 사석에서도 직장에서의 관계를 잊고 상사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대학원 수업에서 '관계에는 문이 있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는 타인이나 세상과 벽을 쌓고 지내는 사람에게 가상의 문을 상상하게 함으로써 스스로에게 관계의 주도권이 있다는 걸 깨닫게 도와준다.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문을 열어주고,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문을 닫을 수 있다. 특히 위와 같은 상사에게는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센 힘으로 문을 쾅-하고 닫고, 도어락을 설치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을 완전히 닫아버리면 상사와의 관계를 유지해야 되는 직장생활이 곤란해지므로, 절충안을 사용해 보면 어떨까. 상사와 마주할 때면 문을 살짝만 열어놓는 거다. 열긴 열었지만 닫힌 것에 가까운, 봄이 되어 덥진 않지만 봄바람을 쐬기 위해 살짝 열어둔 문처럼. 합당하지 않은 이유로 이상한 소리를 하면 곧장 문을 닫아버릴 수 있도록.


퇴근 후에는 상사와의 관계의 문을 닫아보자. 잘 닫혔는지 손잡이를 두세 번 돌려가며 확인하자. 나와 맞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 사람과 내가 맞지 않다는 걸 한 번씩 느끼게 끔 해야 한다. 그래야 살짝 열린 관계의 문을 비집고 들어오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우리는 직장에서의 관계까지예요"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상사가 전적으로 옳다는 식으로 행동해서는 안된다.


우리에게도 생각이 있고, 가치관이 있다. 스스로를 거스르면서 까지 맞출 필요는 없다. 하고 싶

은 이야기가 있다면 꺼내 보자. 상사가 호통 치는 모습이 각인되어, 혹은 이전에 겪었던 비슷한 경험이 떠올라 우리를 제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관계에서 대화보다 중요한 건 없다. 움츠러들지 말고, 고개를 들고 마음속에 있던 그 한 마디를 꺼내 보자.

 

모든 관계에는 문이 있다. 그 문은 스스로만이 열 수 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활짝 열 수 있고,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굳게 닫을 수 있다. 하지만 때로는 열어야만 하는 관계가 있다. 그럴 경우에는 살짝만 열어두자. 지내고 보니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끼면 열고, 아니면 닫아버리자. 아니, 잠가버리자.


기어코 퇴사를 한 친구는 그때를 돌이켜보며 잘 그만두었다고 했다. 그는 관계에도 문이 있다는 걸 알지 못해, 상사의 언행으로부터 마음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했다. 애초에 삐뚤어진 마음을 품은 사람과는 관계가 맺어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호전될 가능성도 희박하다. 상대방의 생각이 바뀌어야 하는데, 친구의 상사가 바뀔 사람이었다면 다르게 살아가지는 않았을까.


스스로가 만든 관계의 문을 통해 우리를 지키며, 소중한 사람들을 마음으로 자주 초대하자. 어울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자. 점차 가벼운 발걸음으로 맞이할 내일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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