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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May 14. 2019

어린 나에게, 그 시절의 부모님께

지난 금요일이었다. 점심을 먹으면서 보기 위해 텔레비전을 틀었다.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유 퀴즈 온 더 블럭'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멈췄다. 챙겨서 보는 프로그램은 아니었지만, 이전에 재밌게 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거리를 돌아다니며 지역의 특색과 풍경을 소개하고, 인터뷰를 통해 사람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이 프로그램은 친근하고 진솔하다.


이번 회에서는 부산 영도의 깡깡이 마을을 찾았다. 평소처럼 여러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고, 나는 점심을 먹으며 부산에서 배 수리공으로 일하는 아저씨의 이야기를 보았다. 일찍이 어선에 오르며 경제적으로 독립했고, 현재는 배를 수리하는 일을 하고 계신 아저씨의 사연에서 인상 깊은 장면이 두 군데 있었다.


유퀴즈온더블럭 2 부산 영도 깡깡이마을편 인터뷰 중, 20대의 나에게 보내는 영상편지 장면


먼저, 20대 시절의 자신을 회상하며 그때의 나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을 묻는 장면이다. 아저씨는 남들처럼 놀지도 못하고 열심히 일하며 기술을 배웠던, 어려웠던 그 시절 덕분에 지금 잘 살고 있어서 아무런 미련이 없다고 이야기했다.


배를 타며 눈물을 많이 흘렸다던, 21살의 아저씨는 높은 파도와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분명 힘겨웠을 거다. 망망대해에서 가족들에게 연락할 방법은 없고,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에 뒷걸음질 칠 수도 없이 나아가야 했던 시절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보았다. 물론, 지금은 괜찮다고 말씀하셨지만.


최선을 다했던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지금의 아저씨가 되었다. 그리고, 추억에 잠기며 지나간 나에게 박수를 치는 당당한 가장이 되었다.


  

유퀴즈온더블럭 2 부산 영도 깡깡이마을편 인터뷰 중, 어린 두 아들들에게 보내는 영상편지 장면


두 번째는 함께 시간을 자주 보내지 못했던, 그 당시의 두 아들들에게 영상편지를 보내는 장면이다. 아저씨의 입장에서도 가족들이 보고 싶었겠지만, 남아있는 가족들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특히 어린 두 아들들에게 아버지의 잦은 부재는 큰 공허함으로 남아있을 테다.


그러나 방송의 끝 부분에서 아저씨의 인터뷰 영상을 본 아들은 소감을 이야기한다. 한 번도 아버지한테 "고생하셨습니다,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못 했던 것 같다고. 다시 태어나도 아버지의 아들이 되고 싶다고. 지금 이대로만 살아줘도 너무 고맙다는 아저씨의 말에 감사하다는 말로써 아들은 대답했다.


방송을 보고 난 뒤에 나에게도 적용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식은 조금 달리하여 어렸던 나와 그 시절의 부모님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적어보고자 한다.        


#1 어렸던 나에게 해 주고 싶은 말


안녕. 내성적이며 인정받기를 좋아했던 수호야. 어린 시절 꿈은 경찰, 군인, 소방관이었지. 누군가를 지켜준다는 사실에 매료되어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니?"라고 어른들이 물어보면 줄곧 대답했었지.


지금도 그 꿈을 버리지 못해 사회복지사가 되었었고, 이제는 상담심리사를 준비하고 있어. 어쩜 이렇게 한결같이 지내고 있을까. 신기하기도 하고, 어린 나이에 품기 어려운 꿈을 이야기했던 내가 대견해.


여전히 또렷하게 기억나는 경험이 하나 있어. 낮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집 안에 불은 모두 꺼져 있고, 아무도 없었지. 어두웠던 집을 배회하며 내내 울었던 게 생각이 나.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자주 상상을 하게 되었지. 주로 안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막연한 두려움이었어.


그때, 왜 어른들에게 이런 생각들을 털어놓지 않았을까. 부모님께서 이 이야기를 듣고 나에게 실망할까 봐 마음에 담아두었었나 봐. 칭찬도 듣고 인정도 받고 싶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으니 잘하는 게 없다며 스스로를 탓했었지. 집에서는 혼자 하는 놀이에 몰두했었어. 만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면서 말이야.


외로웠었을 거야. 알아. 내 이야기를 하면 아무도 귀 기울여 주지 않을까 봐 겁이 나서 참으며, 사람들의 이야기에 웃으며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던 모습은 어린 내가 감당하기 어려웠어. 이런 걸 나는 어른의 모습을 따라 한다고 생각했지. 흉내 냈을 뿐인데. 조금 더 그 나이 때에 맞게 지냈으면 어땠을까. 행복했을 텐데.


하지만, 어린 나를 탓하고 싶지 않아. 최선을 다했으니까. 독립심이 강한 누나와 비교되면서도, 내 일상을 묻지 않았던 부모님과 지내면서도, 뚜렷이 하고 싶은 게 없으면서도 여전히 잘 지내고 있는 건 그때 터득한 살아가는 방식이니까.


이제는 내 나이와 상황에 맞는 적합한 방식을 배우고 싶어. 어른이 된 지금도 그때의 방식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아. 어렸을 때와 비슷하게 고민들을 해결하고 있거든. 언젠가는 누군가 알아주겠지 하며, 묵묵히 생활하는 것도 이제는 버겁게 느껴지거든.  


슈퍼마리오의 점프 버튼을 누르며 찾으려 했던 건, 쿠파에게 붙잡힌 피치 공주가 아니라 현실에서의 온기라는 걸 이제는 알아. 생각이나 감정, 행동을 과하게 억누르거나 과장되게 표현했던 그때의 상황들을 이해해. 서툴렀고, 그 서투름으로 인해 실수를 저지르면 괴로워했지.


그러나, 과거에 저지른 실수들이 그 나이에 경험할 수 있는 축복들이었다고 생각해. 나는 더욱 자신 있게 내 삶에 주어진 과제들을 맞닥뜨리고 실수해야 될 필요가 있었어. 사실 이제 와서 이런 얘기를 하는 건 반칙이야. 그때의 나는 분명 최선을 다했으니까. 물러서지 않았으니까.


그 누구도 나를 존재 자체로서 인정해주지 않았지만, 성인이 된 나는 어린 나를 기억해. 몇 번이고 이야기해 주고 싶어. 괜찮다고. 무언가를 해도 괜찮다고.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저 나로서 충분히 괜찮다고.


#2 나의 어린 시절, 부모님에게 전하는 말   


아버지, 어머니. 늘 가정을 먼저 생각하시던 두 분을 떠올리면 항상 죄송한 마음이 들어요. 최근에 대화하는 시간이 늘어나며 제가 어렸을 때의 두 분이 어떻게 지내셨는지 듣게 되었어요. 많이 힘드셨지요. 그러나 저는 제가 괴로운 것만 생각하느라 두 분의 하루가 어땠는지 깊이 관심을 갖지 않았었어요.


아버지, 저를 아끼는 마음이었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제한하고 통제하던 그 방식이 저를 괴롭게 만들었어요. 새로운 걸 시도했을 때 제가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지요. 그건 저에게 맞지 않거나, 끈기가 부족한 제 잘못이라는 걸 알고 있어요.


"안돼"라고 큰소리를 치며 안 된다고 하셨지요. 울어도 완강하게 표현하셨지요. 위험하다는 이유로 거절하셨어요. 아버지는 알고 계셨겠지만, 저는 그게 왜 위험한지 몰랐어요. 경험보다 좋은 공부는 없다고 하던데. 그때의 좌절들이 저를 의존적이고 도전을 두려워하는 성향으로 만든 것 같아요.


그런데, 얼마 전에 들려주셨지요. 아버지를 무시하던 할아버지 밑에서 성장하셨다고요. 학교가 끝나기 무섭게 집안일을 도와야 했고, 그럼으로써 모든 꿈을 포기하셨다고요. 좋은 대학을 졸업한 두 동생들에게는 관대하면서 아버지께만 모질게 대하셨다고요.


성인이 되지도 않았던 그 어린 나이에 얼마나 큰 좌절을 경험하셨을까요. 얼마나 자주 반감을 가지셨을까요. 이제는 알 것 같아요. 조금 더 이해해보려고 노력할게요. 그때의 받았던 상처들을, 남아있는 흉터들을 없앨 수는 없지만 이 흔적들이 결코 악의는 아니었다는 것을 받아들일게요.


무엇이 아버지로 하여금 오늘을 살게 하는 원동력이었을까요. 아버지에게는 가족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20년 동안 근속했던 직장에서 정년퇴직을 하시고, 두 번의 요식업을 경험했던 아버지. 이제는 아버지의 그 행동이 저를 사랑하기 때문이었던 걸 알아요. 마음이 앞선 탓이었을 거예요.


어린 시절 나의 아버지. 만약 지금의 제가 그때로 가서 아버지께 말을 건넬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감사한다고. 사랑한다고. 가족이라는 무게를 굽은 어깨에 짊어지고 다니던 아버지를 안아주면서.


어머니. 괴로우셨던, 혹은 여전히 괴로우실 어머니. 자기중심적인 할아버지와 좌절을 경험하고 있던 아버지 사이에서, 아버지의 세 동생과 우리 누나를 함께 돌보았던 어머니. 할머니를 일찍 여의시고 나이차가 많이 나던, 일찍이 스스로 살길을 찾아간 두 언니를 둔 어머니.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꺼낼 곳이 없어서 괴로워했던, 나의 어머니.


할아버지께서 시골로 내려가시고, 고모와 삼촌들이 결혼을 하며 집에는 평화가 찾아왔지요. 아버지와 어머니, 누나와 나 이렇게 네 식구만 함께 살았으니까요. 하지만 그때의 경험이 어머니를 늘 괴롭혔던 것 같아요. 표현에 서투른 나는 어머니를 빼다 닮았으니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시절, 저는 이기적이었지요.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구시렁 거리기 일쑤였지요. 만약, 어머니에게도 마음이 있어서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어땠을까요. 저는 함부로 행동하지 않았을 거예요.


저를 묵묵히 도와주는 게 어머니의 당연한 역할인 줄 알았어요. 아니었지요. 어머니께서도 좋아하는 게 있고, 싫어하는 게 있으며, 때로는 아프기도 하셨지요.


만약 지금의 제가 그때의 어머니를 만났다면 꼭 이야기하고 싶어요. 충분하다고. 괜찮으니까 어머니의 마음도 좀 살폈으면 좋겠다고. 괴로우실 때는 괴롭다고 말한 다음에 어머니를 위한 시간을 보내도 된다고.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그저 처음이라 어려웠던 거다. 부모님의 투박하지만 선한 마음을 멋대로 받아들였던 까닭이다. 단 하루도 나에게 관심을 주지 않으신 적이 없다. 단지 조금 바빴고 여유가 없었으며 그럴 때마다 나는 불행하다고 습관적으로 되뇌었다.


상상에 불과했다. 부모님께서는 줄곧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계셨다. 다만 내가 이야기하고 싶을 때와 부모님이 들어주실 수 있을 때가 잘 맞지 않았을 따름이다.   


내가 태어났을 때의 부모님 나이와 비슷해졌다. 세상살이가 만만치 않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부모님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때의 상황은 더욱 열악했다. 생계를 부양해야 되는 사람이 8명이나 되었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내 생각만 하고 있는데.


만약, 지금의 내가 그때의 부모님의 역할은 한다면 어떨까. 포기하고 말았을 것 같다. 챙겨야 될 가족보다 내가 너무 괴로워서 도망쳤을 것 같다. 하지만 나의 부모님께서는 늘 곁을 지켜주셨다. 맞벌이로 바쁜 시간을 보내면서도 정성스레 나를 돌봐주셨다.


어렸던 나와 그 시절 부모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다시 건넨다. 어느 한 명도 포기하지 않았기에, 꿋꿋하게 지냈기에 지금의 우리 가족이 있다. 이제 나는 과거의 경험에서 자유로워질 거다. 표현이 어찌 되었든 본질은 같으니까. 서투른 사랑이었으니까.   


아무리 내가 두 눈을 가리며 못 본 척을 해도, 태양은 매일 새롭게 떠오른다. 나는 오늘보다 내일 더 새로워질 거다. 더욱 당당하고 도전하는 사람으로서, 새로운 운명을 개척해 나갈 테다. 망설이기에는, 지금 이 시간이 정말 소중하니까.


단 한 번, 1분만이라도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말하고 싶다. 아니, 오늘 용기내어 고백하고자 한다. 감사하다고. 사랑한다고. 다시 태어나도 부모님의 자녀가 되고 싶다고.


+


즐거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 우리 동네에는 느티나무집이라는 유명한 고깃집이 있었다. 아버지가 일찍 퇴근할 때면 어머니와 함께 고기를 사 먹곤 했는데, 그날도 맛있게 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어머니께서 사주신 아이스크림을 몇 입 먹고 배부르다며 아버지께 드렸다. 아버지는 아무런 말씀 없이 아이스크림을 받아 들고 드시려던 참에 지나가던 새가 아이스크림에 똥을 쌌다. 그때 아버지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어머니와 나는 깔깔대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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